22.07.09-10 한

by soripza

수업 후 첫 주말이다. 일주일 동안 나는 기력이 빠진 것 같다. 쉬는 시간을 합하여 하루에 다섯시간 반씩 어학원에 있어야 하고, 선생님 말을 알아듣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어렵다. 한국에서만 독일어 수업을 들은 탓에, 그래도 독일문화원으로 다녀서 (수업을 다 독일어로 진행한다.) 독일에서 독일어로만 진행되는 수업이 낯설진 않지만 문제는 역시 발화다. 생활로서의 독일어는 경험해본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언어적 뿌리가 비슷한 영어나 북유럽 언어들 혹은 이웃에서 살아서 독일 친구가 있거나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프랑스같은 곳에 살지도 않았기 때문에 발화가 이루어지는 건 어렵다. 수업이 끝난 후 B2코스가 몇 개로 이루어져 있냐고 선생님에게 물어봤는데, 이상적으로는 (ideal) 두 달에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내가 느꼈던 것을 선생님이 대신 말해줬다 : 동석은 읽기와 쓰기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말하기가 부족해요. 속도도 느리고, 수업시간에 말이 많은 편도 아닌데 이 수업엔 14명이나 있으니 내가 따로 그것을 봐줄 수가 없어요. 따로 1:1 수업을 추가로 수업 전에 들어보는 건 어때요?


예상했던 말이지만 막상 현실로 나타나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베를린 괴테의 1:1수업을 찾아봤다. 일대일 맞춤으로 선생님이 회화/쓰기/읽기 까지 모든 부분을 케어해주는 프로그램. 하지만 가격은 45분 수업 1회에 75유로...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였다. 지금 수업도 2주에 750유로를 내고 듣는데, 일대일 수업 10회로 같은 돈을 내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시간은 1/5이지만 수업료가 같은. 반대로 말하면 같은 시간에 수업료를 5배나 더 주고 듣는 것이다. 고민을 하다가 우선은, 내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주로 듣는 편이었고, 일상생활 대화를 많이 하기보단 어떤 주제에 대해서 정돈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입으로 말하기보단 손으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는 빨래를 하러 가면서 독일어 과외를 알아봤다. 다행히, 몇 명을 컨택해서 독일인과 직접 말할 수 있는 베를린 대면 과외를 찾았다. 화요일날 시범으로 한 시간 정도 해보고, 아마도 오전 수업 전에 정기적으로 입을 푸는 시간을 갖지 않을 까 싶다.


사실 토요일 오전에는 슈타지 감옥에 갔다왔다. 어학원에서 주말 프로그램으로 열린 것이었는데, 2차세계대전과 동독시절 사람들을 가두고 취조하던 곳이었다. 여기에서는 수많은 죽음이 일어났지만 아직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왜냐면, 소련이 정보 공개를 하지 않고 있고, 동독에서도 이 일에 관련된 이들이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수천에서 수만 명이 죽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하다. 게다가, 투어를 진행하며 설명을 맡은 이가 60대 노인이었는데, 그 역시 80년대 초반 이곳에서 취조를 당하고 1년 정도 옥살이를 했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십여차례의 취조로 끝나서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다고 했고, 그 후엔 서독으로 망명한 뒤에 장벽이 무너진 후 다시 이곳에서 와서 비극을 알리는 일들을 하고 싶어 지금까지 주말에 자원하여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요일엔 카페 탐방을 하러 나갔다. 집에 와이파이가 아직도 안되는 탓에 WLAN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주변 카페를 골라놓고 찾아가서 감도를 확인하고..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살핀다. 일요일은 노는 날이라 어딜 가도 사람이 너무 많다. 오늘 간 곳도 그랬었고, 음식값도 비쌌다. 여긴 영상통화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중간에 집 바로 옆에 있는 장벽공원에서 벌어지는 벼룩시장도 갔는데, 그냥 훑고만 왔다. 다음에 누군가와 같이 올 수 있다면 그때 좀 더 재밌지 않을까.


집에와서는 토요일 저녁에 갑자기 영감이 들어 쓴 소설의 뻐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사실 퇴직 후에는 단펴 소설 분량의 지어낸 이야기를 못 쓸줄 알았는데 이렇게 쓰게될 줄이야. 아무래도 글을 쓰는 직업을 하려면 역시나 여행많이 다니고 경험을 쌓는게 가장 좋은 길인 것 같다. 회사에만 있으니 집 - 회사의 루틴에 가끔 친구 만나고 운동하고가 끝이었는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니 글이 써진다. 아참, 팟캐스트도 녹음했다. 같이 하던 친구들과 하던 것이 너무 밀려서, 연습도 할겸 혼자 대본을 쓰고 그것을 읽는 식으로 했다. 독일에 와서도 창작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아직 나에게 이런 감이 살아있구나를 느꼈다. 다만, 이것이 허접한 것이 되지않으려면 계속 정신 차려야 한다. 독일어도 열심히 하고, 내일 부터는 다시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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