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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6 한

by soripza

금요일에 지쳐버린 상태는 다음날 아침까지 지속됐다. 대학교를 다닐 때 한시간 반 진행되는 수업이 일주일에 두 번있으면 3학점 짜리였는데, 이를 지금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나는 19학점 짜리 수업을 듣고 있는 거였음을 깨달았다. 학교도 졸업한 지 오래됐고, 또 막하기였던 추가학기때는 딸랑 9학점만 들으면서 학교를 다닌 것을 생각해보면, 2012년 이후로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무언가를 듣고 있는 시기가 지금이였고, 그걸 5주 연속으로 하고 있는 거였다. 그런 와중에 집에서 해먹는 것들은 끼니마다 달랐지만 아침에는 딸랑 시리얼이나 작은 토스트 두 조각을 먹고, 가끔 고기를 구워먹고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만 30이 넘었으니 힘이 들만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토요일도 아침만 먹고 다시 누워서 TV를 틀어놓은 채 12시까지 빈둥거렸다.


오후에 정신을 차리고는 빨래를 하러 나갔다. 아직도 은행은 계좌번호가 든 우편을 보내주지 않았고 (벌써 3주 째 소식이 없는 도이체방크) 코인세탁소로 또 터벅터벅 걸어갔다. 가는길에 장벽공원 바로 앞의 맥주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유럽 축구가 개막했기 때문이었다. 그 맥주집(펍)은 아예 축구 경기를 보여주는 곳이라, 내가 세탁소 앞을 지나갔을 때는 잉글랜드PL 풀럼vs리버풀 전을 하고 있었고 독일 내의 리버풀 팬과 영국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빨래가 물에 적셔지고 다시 열풍에 마를 때 까지는 가족과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했다. 저번주에는 B2시험 일정 및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는 탓에 통화를 못했어서 2주만의 통화였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곧 겨울 옷과 전기장판을 보낼 채비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통화를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는 분데스리가 1라운드 경기가 한창이었다. 마침 베를린 더비 (헤르타 베를린[서독클럽] vs 우니온 베를린[동독클럽])의 경기가 후반전이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우니온이 3:0으로 이기도 있었다. 우니온 베를린은 아주 오래전 1부리그에 있다가 몇 년 전부터 1부리그로 올라온 팀이었는데,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온 팀이었다. (아마도) 시민 구단이라 재정상태도 넉넉하진 않지만, 끈기있는 축구로 1부리가 테이블의 상위권에 자주 이름을 올렸고, 제작년엔 컨퍼런스 리그 진출도 따냈고, 올해는 아마도 유로파 리그(아니었나.. 확인 필요)에도 나가는 걸로 알고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수도 축구 팀이 강세인 곳이 많은데, 독일은 예외라는 게 한편으로 재밌기도 하다.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너무나 큰 산이 2000년대 부터는 거의 독점하다 시피 해서 사실 1위를 누가 할 지 보는게 별로 재미없긴 하다. 그래도 매번 유럽에 올 땐 여름 휴가 기간에 와서 TV로 월드컵만 보던게 다였는데, 이번에는 아예 눌러앉았으니 바람이 선선해지면 우니온 베를린의 경기도 보러 갈 생각이다.


이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마치 수원 자취방에서의 시간들처럼, 이 동네에 적응도 되고 루틴도 잡혀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더 놓고(독일어자격증에 대한 강박과 무직이라는 것에 대한) 재미있는 것을 자꾸 찾아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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