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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Nov 04. 2022

Sommerzeit, beendet*

써머타임, 종료됨

*글제목은 유디트 헤르만의 단편 소설 <Sommerhaus, später(여름별장, 그후)>에서 따왔습니다.


이번 달에는 석사지원에 필요한 독일어성적 취득을 위해 신청한 TestDaF시험 대비를 위해 독일문화원이 아닌 다른 어학원에서 시험준비반을 들었다. 4주 동안 수업을 듣고 있고, 내일이면 (한국시간으로는 이미 금요일이여서 오늘) 수업이 마무리된다. 3주 동안의 수업이 끝나고, 나는 기분 전환이 필요함을 느껴서 저번주 금요일 수업이 끝난 뒤 마르부르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토요일 저녁, 저녁을 먹기위해 구시가지(이곳은 Oberstadt라고 부른다. 구시가지가 약간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를 가던 도중 메신저 방의 알람을 봤다. 서울에서, 정확히는 이태원에서 무언가 사고가 일어났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동행이 있었고, 나중에 자세히 확인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은 숙소에 늦게 들어왔고 너무 졸렸던 나머지 샤워를 하고 바로 자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가족들과 통화를 위해 동생에게 시간을 물어봤는데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7시간 차이가 났던 시차가 8시간이었던 것이다. 핸드폰의 알람은 변한것이 없었는데... 라고 생각하고 손목을 보니, 기계식 시계는 핸드폰 시간보다 한 시간 뒤였다. 그렇다, 서머타임이 해제된 것이다. 그렇게 여름의 시간이 끝났음을 내가 알아차린 그때, 한국에서는 150명이 넘는 사람의 시간이 끝나있었다.  


좀 더 자세한 기사와 소식을 접한 건 그날 아침과 점심을 보내면서 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처음 수십 명이 죽었다고 했을 때, 나는 화재가 났거나 건물이 무너졌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압사사고였고-이제는 참사라고 불러야 하는-나는 그것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기가찬 건 윗선 공무원들, 정확히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이었다. "특별히 문제 될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라던가 "경찰이 있었어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화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연이어 나온 어처구니 없는 변명들, 예컨대 '주최자가 없었다'라던지 참사가 일어나기 전 광화문에 있었던 '시위'를 겨냥한 발언 그리고 어떻게든 책임 소재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했던 말들. 대통령은 애도의 시간을 가지자고 하고, 유족들에 대한 지원과 용산구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대우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나, 나는 정부의 대처야 말로 정치적인 도구라고 생각했다. 바로 전에 있었던 SPC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나, 조선소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증폭됐다. 총리라는 사람은 외신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농담을 건네며 웃음을 짓고, 그들이 묻는 질문에 '압사사고에 대한 메뉴얼이 부족했다.'라고 말했고 정부의 책임을 축소하려는 답변을 이어갔다.  자리에 걸렸던 현수막(?) 참사대신 '사고'라는 단어가 걸려있었고, 합동 분향소에는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는 단어가 있었다. 그리고 이틀 , 경찰신고 내역이 공개되는 순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과가 진심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니 그들 입장에서 '어쩔  없이'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들은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정부와 그리고 그들과 궤를 같이하는 조직을 '소시오패스'라고 칭하고 싶다.    수해현장에서 했던 사진을 위해 '비가 왔어야 한다'라는 . 퇴근길에 침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마치 자신을 목격자라고만 생각하고 신나게 떠드는 사람의 .


브런치에 되도록이면 정치 관련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의 행태는 이미 내 기준을 벗어났다. 박근혜정부가 시민들 뒤에서 비선 세력으로 정부를 운영했던 것이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최소한 그들은 그것이 '들키지 않도록'애썼던 것 처럼 보인다. 나중에 청문회에서는 그들은 계속 '무능했다.'라는 프레임을 사용했다. 무능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착복했던 이익과 그릇된 일들을 법적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도구였다. 어쨌든 만족하진 않지만 그들 중 일부는 심판을 받았고,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그 정부의 5년의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올해 초 새로 들어온 정부는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도 극우적이고 비정상적이다. 그들은 공감할 줄 모르고, 사과할 줄 모르며, 협치 또한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것을 할 줄 모른다.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사고방식은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1970~80년도의 공안정국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의 사고-시간은 거기에서 끝나버린 듯 하다.


나는 진심으로 한국의 앞날이, 정확하게는 앞으로의 4년하고도 몇개월이 걱정된다. 국제적인 정세는 급박하게 흐르고, 환경에 대한 중요성은 커지는데 지금 껏 정부가 보인 대다수의 행보에는 물음표가 뒤다른다. 부자감세와 낙세효과가 국제적인 추세라면, 왜 영국의 신임총리 '였던' 리즈 트러스는 45일만에 사퇴를 한 것일까? 그 다른 파이의 빈공간 때문에 생긴 '정말로 필요한 곳의 지원'은 연달아 끊겼다는 기사가 올라오고, 세금은 (아마도)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빼내오게 될 것이다. 이와중에 경제관련 지식이 전무해보이는 한 지방의 도지사의 말로 인해 채권 시장은 휘청였고, 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던 세금이 들어갈 일을 앞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위쪽에서 안보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매일매일, 매주매주가 정부의 시험대가 되가고 있고, 자칫 잘못해서 삐끗하면 결국 피해가 돌아오는 건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시민들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처음이라'는 같잖은 말을 하는 사람과 그 무리에게 거는 기대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다시 이태원으로 돌아오자. 정부는 애도를 '강요'하고 있다. 애도는 중요하지만 그들의 애도는 자신들의 '책임'을 지우는 시간을 버는 용도로 보인다. 불순한 의도라고 생각된다. 거짓말은 계속해서 밝혀질 것이며,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점점 정확한 원인에 다가가야 한다. 그들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언론을 잘 통제하고 시민들의 귀와 눈을 막으면 될 것이라고. 현 정부를 대표하는, '공화국'이라고 지칭되는 대한민국의 어떤 직업, 그들의 어두운 면이 계속해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없는 죄를 만들거나, 결론을 지어놓고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 따위의.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시간도 이제는 끝났다. 나는 사람들을 믿는다. 우리는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오래전 부터 이어져왔다. 굵직하게는 80년과 87년 그리고 2016년. 독일은 서머타임이 끝나고 겨울로 들어가고 있다. 해는 벌써 새벽 네시 반 쯤에 진다. 밤이 길어지고 있다. 날씨는 추워진다. 지금 한국의 상황도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해가 뜨기전의 시간이 가장 어둡다는 말도 있듯이, 지금의 시간은 나중에 다가올 시간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생각한다. 현재 운행되는 열차는 운행이 종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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