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주 간의 TestDaF 준비반 일정이 끝났다. 월요일 날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는 날 맥주 한 잔을 하자고 제안했었고, 나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수강생이 적어서 (4명) 부담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와 동시에 브라질에서 온 친구는 당일날 폴란드로 놀러간다고 했고, 터키인 친구는 올 지 안 올 지 모른다고 했다. 결국에 같이 보는 건 나와 다른 한국인 한명 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약속장소는 학원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의 1층 바였고, 그는 그 호텔이 어학원의 소유기도 해서, 선생인 자신이 모든 주류를 절반으로 할인 받을 수 있다고 했다. 10유로가 넘는 칵테일로 할인받으면 5유로 쯤에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초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이간이었던 저녁 여덟 시 까지는 아직 다섯 시간이 남아있었고, 나는 발걸음을 돌려 중심가로 향했다. 겨울에 속에 껴입을 목티를 사기 위해서였다. 옷을 사고, 중간에 커피도 사마시고 (사실, 안에 들어가서 마시고 싶었는데 네시 반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강제 테이크 아웃이 되어버렸다.) 케밥까지 저녁으로 먹고 알차게 돌아왔다. 중간에는 오랜만에 회사 동기와 영상통화를 했다. 원래는 집에서 반주 한 잔 하면서 할 계획이었는데, 그친구만 자기 방에서 맥주와 과자를 먹었다. (한국은 그때 밤 11~12시였을 것이다.)
어쨌든, 흡족하게 구매를 마치고 집에서 쉬다가 다시 나갔다. 선생은 독일사람 답지 않게 (사실 독일인들이 시간 약속이랑 법을 잘 지킨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내가 어렸을 적 읽은 '먼나라 이웃나라-독일 편'에 가스라이팅 당한 것 때문인 것 같다.) 15분 쯤 늦게 왔고 그와 나를 비롯하며 다른 한국인 이렇게 셋이서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했다.
원래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선생은 자신이 70년생이라고 했고, 독일어 강사는 5년 쯤 했다고 한다. 이전에 자세히 무슨 일을 했는지는 따로 물어보지 않았지만 (거의) 늘 자신이 재밌어하는 일을 하면서 산 것 같았다. 자신은 창의적인 사람인 것 같다면서, 올해 12월에 자신이 쓰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외국인 들을 위한, 처음에는 영어로 시작하면서 끝은 독일어로 끝나는, 한 400~500페이지 정도 되는 실험적인 학습용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소설 얘기가 나와서, 나도 대학시절에 동아리에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고 하니 매우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독일의 등단이나 작가가 되는 법에서도 물어봤다. 여기는 1) 글을 쓰면 작가다 2) (조금 더 엄격한) 그 책을 팔아서 돈을 벌면 작가다, 라고 말해줬다. 그러면 나는 독일에서는 작가가 맞았다.(ㅎㅎ!) 독일에 오기전 친구들과 함께 만든 나의 시집 이야기도 조금 했더니, 영어나 독일어 번역은 없냐고 물어봤다. 아직...은 없지만 나중에 내가 실력이 더 늘면 번역을 해보겠다고 했다.
거의 세 시간 동안 계속된 얘기는 끝날 줄 몰랐다. 확실히, 유럽사람들은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모든 한국인들의 문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술자리에 가면 할 말이 없어서 술을 들이키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여기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화수분 처럼 대화주제가 끊기지 않았다. 어쩌면, 여기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스몰 토크도 잘하고, 이사람이 이런것도 안다고?하는 지점도 많았다. 예를들면, 오늘의 대화에서도 주기율표에 대한 얘기나 (왜 나온건지 기억이 도저히 안난다) 겨울에 훌륭한 칵테일을 만드는 방법 (돼지고기 기름을 얼려놓은 다음 그 위에 알콜을 부어서 잘 섞으면 기름의 풍미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80년대 중반 부터 90년대 초반의 베를린 거리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 참고로 그는 3대가 베를린에 살아서 자신이 waschen Berliner (이게 맞는지.. 대충 echte Berliner[진정한 베를린사람]를 더 강조한 뜻이라고 한 것 같다...) 라고 했다.
맥주 한 병, 조금 센 칵테일 한 잔을 마신 뒤 그는 다시 일을 하러 가야된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더 쓰고싶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 건너편에 있는 술집도 괜찮다며 알려줬는데, 거기는 사실 내가 자주 갔었던 코인세탁소 옆에 있던 바였다. 아침에만 가서 그냥 잘 몰랐는데 저녁의 분위기는 더 좋았다. 다음에 가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다.
이제 목요일날 시험이다. 시험삼아 보는 시험이지만 성적이 잘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남은 기간 때는 시험에 대한 압박 없이 수업도 재밌게 들을 수 있고, 이제 남은 행정일이야 석사 지원 밖에 안남는 거니까. 원래 이번 시험이 붙으면 내년 봄학기 (4월)도 지원해보려고 했는데 그 생각은 버렸다. 독일은 시작학기가 10월이기도 하고, 굳이 반학기 들었다가 진도도 안맞는 것도 귀찮고, 내년 10월 전까지 좀 더 사람도 사귀고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기에 들어가면 여행을 많이 가기가 힘드니, 내년 봄에 여행을 많이 다닐 생각이다. 원래 올해 가려고 했다가 비자때문에 계획을 접었던 그리스와 터키고 그렇고, 북유럽도 가보고 싶다. 7월달에 시작한 독일어 공부의 1차적인 성적표는 다음달 초 쯤 나오겠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계속 생각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