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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Nov 18. 2022

Verspätung

시험이 끝난 후 토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독일 내 여행을 다녀왔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DB (Deutsche Bahn/독일철도)은 Verspätung (기차가 늦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나는 이 전까진 기차가 별로 늦은 적이 없었고, 저번에 마르부르크를 다녀올 때 하노버에서 30분이 늦게 출발한 것이 거의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하노버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출발시간이 13시 24분이었는데 우선 첫째로 출발시간이 밀려서 14시 20분이 됐다. 하노버에서 볼프스부르크로 가는 철로의 고장으로 인해 앞서 오전에 출발한 열차들도 차례차례 시간이 늦춰진 결과였다. 어제부터 독일 북부에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혹시 그 여파는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큰 지연은 열차를 타고 가던 도중에 일어났다. 원래 하노버에서 베를린까지는 고속철로 1시간 30분이면 가지만, 철로가 바뀌어 중간 경유지가 바뀐것과 동시에 모종의 이유로 (내가 알 수 없는) 기차가 철로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네 시간이 걸렸다. 기차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있던 탓인지 온 몸이 피곤했다. 근데 집 앞에 바로 정차하는 M10번 트램마져도 도로 상황을 이유로 다른 노선이 두 세 개 지나갈 때 20분 만에 겨우 왔다. 사람은 또 왜 이렇게 많이 타는지. 

 

이번 여행은 도르트문트와 하노버를 다녀왔다. 이번의 컨셉은 지인투어였는데, 저 두 도시에 내가 작년에 다시 독일문화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 알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하노버에는 지인이 없었고 가까운 브레멘에서 만나긴 했다.) 도르트문트에 있던 J씨는 정규수업을 세 개 정도 같이 들었었고, 올해 2월에 독일로 왔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본 것이 1월 말이니까 거의 일 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는 보훔에서 어학수업을 듣다가 저번달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초콜릿 회사에 취업을 해서 아침마다 한 시간 정도 거리를 통근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곧 1월부터는 함부르크에 있는 스튜디엔콜렉 (독일에서 학사를 시작하시전에 준비하는 코스)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브레멘에서 만난 K씨는 회사를 막 그만 두고 들었던 B1준비반에서 만난 친구였다. 수업에서 말하기 시험 대비로 만나고 친해졌던 3명 중 한명이었는데, 이번에 교환학생으로 브레멘 근처의 작은 도시로 9월에 왔다. 대학이 있는 도시가 시골이라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브레멘으로 자주 놀러온다고 했고, 그 날은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미술관 구경도 알차게 했다. 

 

한국에서 원래 알던 사람들을 해외에서 보는 건 다른 느낌이 있다. 비유를 하자면 회사에서만 보던 사람을 회사가 아닌 곳에서 보는 느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안정감과, 그들은 보는 배경이 달라지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이번에 만난 사람들이 모두 독일문화원에서 알게된 인연들이라고 생각하니 10년도 더 전에 같은 곳에서 수업을 같이 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졸업을 앞두고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19살의 아이였고, 그 뒤로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까지 꾸준히 독일어를 배우러 갔었다. 한 강좌에 두 달 반정도였고, 저녁반 여섯개와 B1시험 준비반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수업에서 보고 스쳐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그땐 내가 거의 막내였고, 나보다 두세 살 많은 대학생 형누나들도 있었고, 서울 시내에서 퇴근을 하고 온 공무원 분들, 그리고 취미로 배우시는 분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날은 수업이 끝나고 그 근처 호프를 가기도 했고, 어떤 눈 오는 날은 남대문 시장까지 내려가 포장마차에 갔던 기억도 난다. B1시험을 준비할 즈음에는,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누나 둘과 한 살 어렸던 남자아이 하나와 꽤 친하게 지냈었다. 그들은 모두 시험에 합격하고 독일로 날라갔다. 그리고 나는 그 때 독일어를 접었다. 그리고 나선 연락이 거의 되지 않았고, 지금은 연락처조차 모른다. 매년 했던 나의 연락처 삭제 시즌 중 한 번에 그들은 모두 없어졌을 것이다. 독일어를 그렇게 그만두고 1년쯤 흘렀던 때였을 까, 위에서 말했던 누나 중 한 명에게 문자로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잘 지내냐고. 그 때 나는 학기로 한창 바쁠 때였고, 건강도 좋지 않아질 무렵이라 갑작스레 온 그의 연락에 신경을 잘 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비즈니스 적으로 답했었고, 반대쪽에서도 그런걸 느꼈는지 그 뒤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독일에 와있는 입장 그리고 6개월 정도가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때의 내 행동을 후회한다. 하나는 그가 느꼈을 사람에 대한 외로움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 유학생활 내지는 해외생활은 고독함이 따라오기 마련이고 그걸 나도 요새 부쩍 느끼고 있다. 그 시절엔 지금보다 인터넷 환경도 더 좋지 않고, 그렇게 문자 하나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두 번째는 그들과의 연락을 지속하지 않았던 것. 내가 만약 그들과 계속해서 교감을 가졌다면, 어쩌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행복하지 않았을 까. 

 

이건 재작년에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만을 꼬박꼬박 6개월 정도 들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B1수준의 반이 주말에는 만들어지지 않아서 결국 거기에서 배움은 중단됐고, 그들과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건 전적으로 내 성격탓이다. 나는 친구가 적은 편이고 (겉으로는 거의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정도 내가 마음을 줄 수 있는 명수가 한계란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인간관계를 스스로 좁히는 행동을 많이 하곤 했다. 메신저에서도 일정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숨김목록으로 들어가고, 일 년에 한 번씩 연락처를 정리하면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을 것 같거나, 죽을 때 까지 더 이상 볼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삭제하곤 했다. 그런 행동들은 그 해의 나에게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런 순간이 오면 후회를 하게 한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늦은’ 회한을 글로 남기는 거겠지. 늦었다고 생각해도 슬픈 건, 내가 늦었음에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장치마저 다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DB (독일철도) 나 BVG (베를린 지역 교통) 는 고장난 철로와 도로를 고친다. 언젠가는 다시 기차와 트램 혹은 버스와 지하철이 다닐 수 있도록. 나는 어떻게 보면 망가진 길을 그냥 치워버리고 노선을 취소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그렇게 노선을 없애도 새로 생기는 노선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노력 여하에 따른 일이겠지만. 한 십 년도 더 뒤에 컴퓨터 앞에 앉아 또 후회에 대한 후일담을 늘어두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의 노선을 약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 도착 후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밀린 빨래를 돌리고, 야채와 소시지가 상하기전에 냉장고에서 꺼내 요리를 하고, 이렇게 짦은 글 한 편을 썼다. 아마도 이번주는 여행 갔다 온 글을 더 정리하고, 11월 말부터 시작되는 독일어강좌에 대한 준비와, 앞으로의 내가 내년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 전에 마쳐야할 일들의 계획을 짤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올 겨울을 나면서 해야될 늦지 않아야 될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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