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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Dec 04. 2022

예기치 않은

수업의 매력 중에 하나는 가끔 예기치 않은 길로 이야기가 빠지고, 그것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깨달음이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저번 주 수요일이 그랬다. 교재에 있는 소설의 작은 부분을 읽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왜 이럴까,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선생님이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의 독일 사회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말해줬다. 


이 시기에는 68혁명이 일어난 시기였다고 했다. 이때 독일의 젊은 층들이 저항했던 것은 이전 세대에서 내려온 (거의) 모든 것이었다. 주인공이 엄마에게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 계속해서 이어졌던 독일의 수업 기조 때문이었다고 했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과 학생으로부터의 질문을 차단하는 것. 교사가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는 것. 그래서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이들은 요새 한국에서 알려진 다른 독일인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고 했다. (물론 68혁명이후 교육계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 교육의 방법이 나온 것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 2차 세계대전 무렵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이후 독일은 전범국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음은 물론 전쟁의 후유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로 전쟁으로 인한 장애를 얻은 남자들) 약에 빠져 살았다고 했다. 이미 전쟁중에는 군인들에게 마약이 지급됐다고 했다. 잠수함에서 며칠을 깨지않고 대기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영하 수십도가 되는 러시아로 향하는 동안 끊임없이 행군을 하기 위한 약물투입들. 그리고 전후에는 통증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도 수많은 약품들이 사용됐다. 그래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소설에 나오는 표현처럼 '반짝이는 하얀 가루의 방'에 사람들이 가득했다고 했다. 


한편 전쟁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온 남자들은 모두들 입을 닫았다. 그들이 폴란드에서, 러시아에서 혹은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것은 한 집에 살고있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어렸을 적 집을 나갔던 아버지의 귀환은 그들에게 혼란스러움이었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을 해소시켜줄 질문을 하지 못했다. 1900년대 초반의 유럽에서 육아의 몫은 여성에게 할당되었기 때문에 그 간극은 더 커졌다. 


이런상태에서 히틀러와 그의 변화는 독일사람들에게 그의 사상에 빠지는 기저가 되기에 충분했다. 잘 정돈되고 멋진 군복을 입고, 도시들은 정비되고 집들은 청소에 들어갔다. 이전의 혼란스러움이 정돈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파시즘에 젖어들어갔다. 그리고 앞서 말한 질문 없는 교육은, 상관의 말에 군말 없이, 질문 없이 24시간 움직일 수 있는 군인들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거의 20분에 달하는 선생님의 역사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내가 받았던 교육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더 넘은 상태라 현재의 교육 현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학교를 다녔었던 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의 교육은 거의 정확히 일치했다. 토론없이 이어지는 주입식 교육과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 오히려 질문을 하면 눈치를 주는 서로가 있었다. 


여기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나 또한 이런 것에 약하다. 수업시간에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나의 사고는 틀에 갇힌 느낌이었다. 어느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못 나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올해 초 봤었던 강연 중에 내용에는 이런것 이 있었다. '한국의 교육은 파시스트를 길러내는 교육.'이라고.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사이코패스처럼 폭주하는 소위 '전문직'들의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얼마전에도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상위권 대학들에 반도체나 배터리 관련 학과들이 신설되고 졸업 후 취업까지 연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이것에 반대한다. 큰 틀에서 보면 이런 것들이야 말로 대학을 교육과 연구의 현장보다 취업사관학교로서의 역할을 더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제적 불평등에서 나오는 교육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또다른 경제적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아직도 이 나라는 사람들 '인적 자원'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언론을 이용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목표 달성 만을 위한 법리적 해석'만으로 법을 이용하고 그것이 충분치 않으면 시행령을 꺼내든다. 그리고 이것과는 별개로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 스스로가 혁신해야 하는 것인데,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기업들은 놔두고, 그곳으로 들어가기 편한 길만을 만들어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장에 들어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저렇게 학과를 신설하고 그들이 졸업해서 기업에 가는 시점음 적어도 5년이상이 걸린다. 그리고 그들이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거쳐 진짜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또 4년이상이 소요된다. 하지만 10년동안 큰 틀에서 산업의 판도가 바뀌거나 기업들의 실책으로 산업규모가 축소된다면 지금 시행하는 것들은 쓸모가 없어진다. 


독일에서는 이런 위기를 68혁명을 통해 어느정도 해소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기득권들이 계속 자신들의 이익을 좇고, 오랫동안 이어진 교육으로 인하여 현장에서의, 정말 가까운곳에서의 소통과 토론과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수업이 끝난 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30분인데, 멍하니 걷다보니 금새 도착한 것 같았다. 물론 독일이 무조건 적으로 다 좋다는 건 아니다. 여기도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는건, 좀 더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 같고, 변화를 위한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어차피 안바뀌겠지.' 한국에서 너무나 많이 했던 생각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 다는 것이 더 쉬운일이기도 하고 자신이 다치지 않는 길이기도 하니까. 또한 '알빠노'로 대비되는, 각자도생의 사회적 분위기가 더 팽배해진 것 같다. 


글을 어떻게 마무리져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뭘 고쳐야 될지 모르겠는 이런 순간엔 정말 어떤 거대한 힘이 개입을 해서 변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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