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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Dec 12. 2022

인류애


올해 '지구의 날'에 본 국립극단의 연극 <기후비상사태:리허설>이 온라인 극장에 올라왔다. 독일에 오기 전 감명 깊게 보았었던 연극이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것을 연극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과거의 나는 기대했었고, 현장에서 그것을 본 이후에는 한참이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연극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의 인류세. 연극에서는 자본주의의 성장에 빠져버린 현재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 높고 더 빨리 더 많이. 어느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사에 있는 'more and more'를, 후렴구에서뿐만 아니라 간주부터 끝날 때까지 부르고 있는 우리의 사회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이, 그리고 미국을 무척이나 빼닮은 한국의 사회의 한 면이 싫었다. 끊임없이 '지속발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린워싱을 통해 투자를 받고 어떻게든 Profit을 남기려는 회사들. 집을 다가 집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듣고 보는 수많은 광고들. 그리고 그것을 사는 사람들(끊임없이). 오늘은 또 어디에 돈을 써야할까 고민하는 사람들. (연극의 대사에서처럼) 코로나 테마주가 무엇이 있을까요? 유투브에서 큼지막한 고기를 굽고 그것을 끊임없이 입안으로 가져가는 사람들. 


하지만 나도 그 사회의 일부였고, 이런 소비지상적인 나라에서 소비를 저지르고 살아왔었다. 먹는 것에는 돈을 덜 쓰는 편이었지만, 나는 옷을 많이 샀다. 털도 동물에서 나오고, 화학섬유는 죽은 동물에게서 나왔다. 내가 물건을 사면 회사는 소비자의 패턴을 인식하여 그가 또 살만한 물건을 보여준다. 한편, 생활용품이 조금이라도 고장나거나 못쓰게 되면 (거의)바로 버리고 새것을 샀었다. 고쳐쓸 줄 모르니까. 다시 세척하려면 시간이 들고 내가 귀찮으니까. 


유학을 생각했을 때 미국 대신 독일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다. 그나마 여기는 미국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미국에 가보지 않았지만, 확실히 사람들의 인식은 한국(정확히는 평균치가)보다 나은 것 같다. 한국이라면, 어쩌면 유별나다고 느껴질지 모를 채식이나 에어컨 사용하지 않기 등이 여기에서는 보편까지는 아니지만 그 비중이 훨씬 더 높았다. 물론, 유럽이 오래전에 전세계를 상대로 나쁜짓을 했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래서 지금의 그들의 행동을 보고 과거의 행위들을 세탁하는 거라며 손가락 질 할 수도 있는것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그런 생각과 행동이 (누군가는 겉으로만 행동하는 것일지라도) 본받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연극에서는 지구 종말까지 1분, 그러니까 60초가 남았다고 한다. 이것은 연극의 대본을 쓴 작가의 생각이 아니라, 수년 동안 연구 데이터를 쌓아온 과학자들이 인류의 남은 시간을 24시간에 대입하여 발표한 사실이다. 이제 실제로 남은 시간은 7년, 어쩌면 더 조금쯤. 


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지 못했다. '즐기지 못했다.'라는 건 조금 우울하려나? 미래에 생길 일을 대비하여 저축을 했고, 학생때는 공부를 했다. 미래를 위해서. 당연히 과거에 이루어졌던 투자가 나에게 돌아와 도움이 된 일도 많다. 하지만 현재를 즐기지 못해 뒤돌아 봤을 때 느끼는 후회도 있다. 


유학을 생각하고 실현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과거 회사에서 나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미래'라는 것은, 나의 자아실현에 대한 소망, 그러니까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내가 무언가를 해낼 거라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큰 회사에서 이렇게 작은 개인으로서는 그것을 이루어내기가 힘들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 이유는 미래지향적인 것이다. 나는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몇 년 후면 기후위기로 인류가 위기에 놓일 지도 모르는데, 그냥 이렇게 매일 회사에 출근해서 남이 시키는 것만 하고 남이 주는 돈을 따박따박 받고, 그 돈으로 또 다른 소비를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늦기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싶었다. 대략 초등학교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독일에서의 유학과 거기에 더 덧붙일 수 있다면 일 그리고 혹은 나머지 인생에 대한 체류까지. 


지인은 나를 보고 인류애가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퇴사를 했는데도 회사 얘기가 나오면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내 회사도 아닌데 왜 그렇게 걱정을 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타고난 사람이다. 각자도생해서 나 혼자 살아남는 것보단 모두가 살아남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무 착해만 빠진 생각일까? 한국 사회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자본주의를 위해서도 인류애는 필요하다. 각자에 손에 피를 뭍혀서 살아남은 자만 남는다면, 더 이상 성장을 할 수가 없지 않나. 이 또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은 요새 '알빠노'라는 말이 유행인 것 같다. 남이 어떻게 되던 말건, 나만 살아남으면 돼. 마치 십 년 전 <1박 2일>에서 강호동이 매일 외치면 '나만 아니면 돼.'의 확장판처럼. 물론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방송이었고, 복불복 게임에서 야외숙박을 피하는 의도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현재는, 자기 자신 (혹은 자기 가족, 자기의 공동체)만이 중요하고 그 외의 상황은 구명보트를 타면 무시해도 된다는 태도처럼 보인다. 혹은, 내가 한다는데, 니가 상관할 바야? 


모르겠다. 이제 독일에 온 지 6개월이 지났다. 나의 인류애는 어떻게 됐을까? 당뇨병을 위해 혈중 당 농도를 체크하는 것 처럼 인류애를 체크할 수 있었다면 그것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장치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나는 하루하루 그것을 가늠할 뿐이다. 나도 점점 미래에 대한 준비 대신 현재를 즐기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걸지로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20년 후면 나의 생존을 장담 할 수 없는 시대가 올텐데'라고 생각하며 어떤 일들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곤 한다.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2차 3차 까지 바에 가서 술을 먹고 온다거나, 친구가 갑자기 제안한 미국여행에 대한 수락과 같은 것들. 이 모든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고민하게 된다. 


비상사태가 1분이 남은 남은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에 대한 리허설을 해야할까. 미래에 해보지 못할, 미래에 가서 후회하지 않을 것들을 가열차게 해야하나? 그렇다면 내가 가장 후회했고, 후회되는 것은 사랑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들에 대한 사랑, 흠모하는 대상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역시나 인류애도 사랑이겠지. 이제 2022년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고, 독일에서는 한창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 사람들은 하나둘 혹은 단체로 모여 추운 날씨에 서로를 부둥쳐 앉고 따뜻한 글뤼바인을 마신다. 나는 12월 24일 부터 1월 2일까지는 뉴욕에, 그리고 1월 3일 부터 1월 8일까지는 비엔나로 떠난다. 기후위기를 걱정한다는 사람인데, 비행기표 3개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던 미국에도 간다. 뉴욕의 크리스마스와 연말. 거기서 또 어떤 장면들을 마주할 것인지. 아마도 기쁨과 동시에 염세적인 시선을 확인 하고 올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기분이 좋은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비엔나에서도 마찬가지다. 거의 8년 만에 가는 비엔나는 또 어떨까. 8년 전의 여름에선 <비포 선 라이즈>를 알게 됐다. 비엔나의 겨울을 다룬 영화도 돌아와서 찾아봐야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제발, 나의 인류애가 보존되길,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인류애도 올라올 수 있길. 나는 앞으로 7년 뿐 만 아니라 내가 죽어서 눈을 감을 때 까지 행복한 상태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다. 올해는 유독 주변 인들의 결혼이 많았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서 다시 식장이 열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미 결혼한 이들에게서도 새 생명이 태어나곤 했다. 그 아기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지금 이미 조금은 커버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인류애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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