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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Dec 17. 2022

Flughafen

6개월 만에 공항에 왔다. 그동안은 다른 도시를 갈 때 기차만을 사용해서 올 일이 없었다. 아, 지금은 철거된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터에 몇 번 가긴 했었다. 여름의 초입, 해질녘에 맥주를 한 병 마셨고 여름이 끝나갈 때쯤엔 연날리기 행사를 보러간 뒤 맥주 한 잔과 소시지를 먹었다. 이제 베를린의 공항은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남짓 가면 나오는 브란덴브루그 공항이다. 나는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공항 답게 깔끔했고, 공항 곳곳에 적힌 글씨체는 확실히 이 공간이 21세기에 지어진 것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탑승 수속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간단한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투시당하는 짐과 사람의 몸.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Taxfree의 세상이 펼쳐진다. 나는 면세점에서 쇼핑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가까운 일본에 갔을 때 1+1로 파는 마스크팩을 사서 가족들과 나눠쓴 기억이 있을 뿐, 그리고 언젠가 친구들과 단체로 여행에 갔을 때 술 한병을 산 기억만이 남아있다. 


공항이라는 공간을 생각한다. 비행기가 뜨고 내려와야 하니 필여적으로 소음과 안전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공항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이것은 철도역의 위치와 비슷한 현상인데,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과거에는 마을의 중심에 오래된 교회와 돌길로 된 옛 구시가지가 있었기 때문에 기차역은 거기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독일의 경우 전형적인 도시의 거리 이름은 중앙역도로(Bahnhofstraße)와 교회(Kirche/Dom-Straße)가 있는 도로가 교차된다. 


이곳도 정류장이기 때문에 터미널과 거기에 각각 속한 게이트로 모듈이 전개된다. 그래서 통로가 긴 길쭉한 모양으로 건축이 이루어지고, 이를 위에서 봤을 때는 인천공항처럼 토끼만화케릭터 모양이 나오기도 하고, 마치 표면적을 최대로 늘린 자연의 모습과도 닮아있기도 하다. 


이륙전, 비행기에 대해 생각한다. 2차원의 도로를 벗어나는 대신 비행기는 중력을 이겨내야 한다. 오래전에는 전쟁을 할 때 지형지물이 중요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서 중간에 강이나 바다 혹은 높은 산맥이 있는 곳은 자연요새화가 되어 침략을 막기에 용이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나오면서 '폭격'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이것은 3차원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리 없이 한 인간이 강을 건너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다. 유속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깊거나.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느꼈던 황홀감과 마치 새가 된 듯한 느낌이 대해서는 서술하고 싶지 않다. 대신 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오랫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하철보다 더 비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앉은 사람들. 누군가가 화장실에 가려면 옆자리 사람이 전부다 일어나야 되는 기형적인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가 생긴 이래로 이코노미 석의 좌석 배치는 그닥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전용기가 있다. 그들은 일년에 일반인의 수십, 수백배에 이르는 탄소를 배출한다. 거기에 개인용 비행기도 한 몫을 한다. 


3차원은 자유롭지만 한편으론 위험하다, 라고 내가 생각한다. 나는 매일 비행기를 타면서 추락에 대한 상상을 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면서 사고나는 걸 걱정하는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전에 내가 스스로 운전을 하면서 출퇴근을 할 때 사고나는 확률이 더 크고, 사망확률도 훨씬 높다. 대신, 비행기는 한 번 사고가 나면 그냥 죽는다는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래서 아주 이기적이게도 뉴스에서 비행기 사고를 접하게 되면 앞으로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은 그정도 규모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한다. 수학적 사고는 가끔 사람을 너무나 차갑게 만든다. 


공항으로 떠난 비행기는 반드시 다른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고가 났거나, 당신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거나, 군인일 것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 오히려 출발과 도착은 구속된다는 점에서 비행기는 폐곡선을 날아다니는 장치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어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독일어도 그렇고 공항/Airport/Flughafen은 항구 앞에 공기 혹은 비행이란 뜻이 붙은 일종의 합성어처럼도 보인다. 구성성분의 물리적 상태만 다를 뿐, 사실 배는 액체 위에서, 비행기는 기체 내부에서 움직인다. 그것만으로도 둘의 유사성은 충분하다. 


로마에서는 콜로세움에서부터 중앙역까지 걸었다. 여기를 걷고있노라면 내가 21세기가 아니라 고대시대에 있는 느낌이 든다. 이 건축물들을 보기 전 내가 탔었던, 20세기의 발명품과 기원전 혹은 기원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파사드를 머릿속에 교차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Ryanair는 착륙하기전 승객들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위해 갖가지 노력을 한다. 복권을 판매한다던가, 약간은 노골적으로 타겟을 정해 물건을 판매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탈리아에서 독일을 가는 항공편이면 독일어 안내방송도 나올 법 한다. 여긴 줄기차게 영어로만 얘기를 한다. 브렉시트의 망령이 비행기에서도 느껴졌다. 


로마로의 출발과 베를린으로의 도착 모두 한 시간 씩 밀렸다. 저가항공을 이용한 탓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보다 더 적은 값을 주고 두 나라를 넘나드니 여행에 중독될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도 부산에 24시간 정도를 머물다 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쓴 돈이 비슷한 것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이상하다. 브란덴부르그 공항에 도착한 건 12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마침 Regional Express가 있었고 나는 그것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주에도 또 공항에 갈 생각을 하니 힘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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