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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an 23. 2023

근본 없는 나라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나는 한국을 이렇게 묘사하고 싶다. 5000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나는 고려나 조선이 아닌 Republic of Korea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몇 달 전, 지인과 '한국'에 대해서 말을 나눈 적이 있었다. 영화 전반에 대한 얘기에서 대중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양식에 까지 다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건 역시나 자조섞인 나의 말들이었다. 나는 한국이 무색무취라고 생각해왔다. 창의성 없이 물건을 복제하여 가장 싸게 많이 찍어낼 수 있는 나라(여기에서 소모되는 노동력에 대한 이야기는 거론하지 않겠다.), 전통에 대한 가치를 보잘것 없이 여기는 나라(교과서에 묘사되거나 그저 지방에서 소규모로 진행되고 잊혀져가는 전통행사들),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유행만 좇는(~린이가 유행하고, 인스타 맛집이 며칠마다 생기고 없어지는) 나라. 물론 소수의 사람들이 일궈낸 대단한 성과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 열심히 K-를 붙인다. 하지만 이 'made in Korea'라는 인장을 새기는 것이야말고, Korea라는 국가를 떠올렸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에 살며 느끼는 건 중국이나 일본은 정치적인 이미지가 아닌 문화적 이미지가 확실히 구축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정부부처가 오래전부터 일궈올 수 있는 영역도 있고, 여기로 온 사람들이 일궈낸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한국정부는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문화적인 이미지를 다른 나라에 각인 시킬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이 싫어서'라는 이유를 가지고도 있기 때문에 굳이? 한국적인 것들, 그러니까 한국의 전통이나 가치 같은 것을 여기에서도 표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유럽과 일본을 여행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한국에 빠져있는 이런 전통들에 대한 보존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도시에 방문할 때 마다 정돈이 (상대적으로)잘 된 전통시장을 방문할 때 놀라곤 한다. 몇 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밥집이나 장인의 집들을 보면서 21세기가 이미 20년이 훌쩍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는 그 가게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내가 모르는 이면에는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런 것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대를 잇는 이유도 어느정도 돈벌이가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편 유럽은,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나쁜 짓들로 벌어들인 자본으로 이룩한 것들이 많긴 하지만, 도시 곳곳에 백년이 넘은 집들과 수백년된 교회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집 전체를 철거하는 대신 내부 인테리어를 고쳐서 쓴다. 그래서 겉에서 보면 근대에 지어진 것 처럼 보이는 (실제로도 그렇고) 건물들이 정부부처에서 사용되거나 우체국/경찰서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가 깊게 느껴진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끊임없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된다. 한국이었다면 진작에 건물을 전부 철거하고 다시 몇 번을 지었을 시간동안, 여기에서는 내부만을 고치는 일이 계속됐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얼마전 접한 영상에서 듣길,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내부만 고치는 리모델링 보다 건물 전체를 부수고 새로짓는 재개발이 돈이 더 적게 든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자본주의에 철저히 물든 한국은 더 적은 자본으로부터 더 큰 이익을 얻길 원한다. 그래서 가차없이 건물을 뿌셔서 먼지로 만들어버리고, 그것들을 버린다음 싹 새로 짓는다. 여기에서 발생되는 개발이익은 건설사와, 눈치 빠른 사람들의 몫으로 들어간다. 약간은 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이익에 대한 욕망들은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것 처럼 보인다. 몇 년 전 있었던 LH공사에서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당이익취득, 빌라왕이라 일컬여지는 사람들의 잇달은 사망과 공사기한을 맞추기 위한 날림공사 및 노동자 사망 사건들이 이를 대변해준다. 


회사도 똑같다.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야.' 이 말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돈만 버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미국을 필두로 이미 세계화가 진행되고 이미 자본주의에 잠식된 전세계 시장을 생각해보다면,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익을 남겨야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비록 한 곳 밖에 안되는 나의 회사경험이지만, 한국 기업들은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회사 홈페이지나 광고에서만 떠들어대는 지속가능성과 실제로는 별 생각도 없이 규제때문에 억지로 진행되는 환경경영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처우들. 여기에서는 인문학을 찾아볼 수 없다. 돈에 대한 가치만이 중요시되는 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고 일에 흥미를 잃는다. 그저 사람들 갈아서 쓰면 된다는 마인드 때문에 일 년에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여 다치고 죽어나간다. 하지만 현 정부의 행태를 보았을 때 한국의 이런 기형적인 '노동을 대하는 태도'가 선진국 만큼 정상화가 되는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저 바로 앞에 있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태도 때문에 따라가는 건 잘하지만 (소위 패스트팔로워라 칭해지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만드는 능력은 없다. 점점 기술은 고도화되가고, 이전의 한국이 잘했던 카피 후 생산을 잘 하는 나라들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혹은 이미 몇몇 분야에선 기술력도 추월했다.) 국가의 근본 산업이라고 일켤여지는 분야에 장및빛 미래가 있는 지는 의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 까? 그것은 20세기에 일어난 전쟁과 연관이 있어보인다. 전쟁을 거치면서 국토가 초토화 됐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타의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 땅에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우리는 다른 것을 모두 버리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만을 좇은 성장을 계속 해왔다. 그리고 그 사이의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은 얼마 남지 않았던 이전의 가치와 문화들을 스스로 버리는 쪽으로 진보를 이루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가치실종은 세대를 거듭해가며 점차 자리잡았고, 그렇기 때문에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실제로도 한국은 돈만 많으면 그 어느곳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버렸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도 사람들은 돈 많은 백수를 꿈꾼다. 가치를 잃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도 잃어버린다. 그래서 앞서 말했던 한국인들 특유의 유행을 따르는 문화도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돈 밖에는 없으니,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나 사치행동이 자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은 SNS 문화와 합쳐져 자신이 구매한 (혹은 구매한 것 처럼 보이는) 비싼 물품의 사진을 올린다던지, '난 이렇게 잘 살아, 잘 나가.'를 표방한 사진들을 우수수 올린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외형을 포장하여 '외모지상주의'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낸다. 몇 주 혹은 몇 개월하다 말 등산과 PT사진이 범람하고, 값비싼 장비와 경비가 필요한 골프가 한 때 유행이었던 것을 보면 내 머리는 어지러울 지경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빈 것, 이것이 내가 한국에 대해 가져왔던 이미지이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비극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들이 섞여있는 것 같다. 우린 근본이 있다. 5000년 동안 모아온 것들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뻔한 말이 몇 년 째 계속 지속되는 것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와닿는 말이 그것이란 것을 깨닫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이상 이런 기조가 쉽게 바뀌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말했던 일본와 유럽의 경우 비교적 한국보다 역사를 담고있는 실체가 없어지는 일이 적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 기초가 탄탄해서 위기가 오더라도 그것을 계속 지킬 수 있었을지로 모르겠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또 진지하다며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에 나라에서 돈이 최고지, 라는 말을 곁들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외칠것이다. 가끔씩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했을 때 돌아오는 말들은 '한국은 무슨 언어를 쓰냐?'라는 질문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좌절한다. 중국이 중국어를 쓰고, 일본이 일본어를 쓰는건 자연스러운 상식인데, 왜 아직도 한국이 한국어를 쓰는 것은 상식이 아닌지. 그렇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다시 다른 나라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가치를 내세우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생각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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