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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04. 2023

극장, 끝장?

얼마 전부터 '한국 영화 시장'의 위기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사람들이 예전보다 극장을 찾지 않고 있고, 이 때문에 한국 영화 시장이 어려움에 쳐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관객들에게 호소했다. 제발 다시 영화를 보러 나와 달라고. 당신들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한국 영화가 존속되기 힘들 것 같다고. 


한 명의 영화팬이자 관객입장으로써 아주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먼저 변해야 할 것은 그들 스스로처럼 보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은 보통 이렇다 : OTT서비스에서도 K-드라마 붐이 불지만, 여기에서는 직접적인 이익을 보기 힘들다 / 코로나 상황으로 인하여 + 영화 제작비, 출연료 상승으로 인하여 영화 관람료 인상이 불가피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구조적인 문제와 인식적인 문제가 그들 내부에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영화의 질부터 생각을 해보자. 최근 개봉한 작품들을 보았을 때 (비록 난 보지 못했지만), 대중들의 평가를 보면 영화 자체가 만듦새가 떨어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10년 전부터 꾸준하게 명절시즌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소위 '대목'철이 오면 극장가에는 명절 용 영화나, 때로는 스타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블록버스터'라고 소개되는 영화들이 스크린을 차지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의 퀄리티는 좋지 못했다. K-신파로 대표되는 대표적인 주인공 캐릭터를 학대하는 설정과 장면들이 서사의 주를 이뤘던 적이 많았고, 대부분의 경우는 서사의 앞 뒤가 잘 맞지도 않았다. 이런 각본으로 어떻게 이런 정도의 돈이 투자되고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지? 에 대해 나는 의문을 품곤 했다. 


또 한편으론, 대형 영화관과 배급사는 손을 맞잡고 스크린을 '독점'하다 보니 일반 사람들이 영화관에 갔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메뉴의 수는 극히 한정적이었고, 사람들은 그냥 그것들을 봤다. 마치, 동네에 식당이 딱 하나밖에 없어서 거의 모두가 그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점심의 질이 그날 주방장에 따라 들쭉날쭉 한 상황인 것이다. 어쩔 때는 꽤나 재밌고, 성공적인 영화들(<극한직업>, <엑시트>가 생각난다.)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그 맛이 기억나지도 않은 채 '한 철 장사'를 마치고 퇴장한다. 


이런 부분들은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유지가 됐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고, OTT서비스는 막 시작을 하던 참이었고, 극장표값은 그래도 '봐줄 만한'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앞서 언급한 3가지가 불어닥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던 것 같다. 

먼저,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들이 타격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이유로 인하여 극장에 오기가 힘들어졌고, 이에 따라 표값과 매점에서 먹을거리를 팔아 얻는 수익이 현저히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OTT들의 출현. 나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극장에 자주 가서 돈을 쓰고 오는 사람들이긴 하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는 일이 많지 않다. 그들에겐 영화관 앱에 들어가서 무엇이 현재 상영되고 있는지, 어떤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지 혹은 GV를 보기 위해 일정을 확인하는 것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다. 그런 상황에서 OTT는 어떤 케이블의 한 프로그램 명처럼 '방구석'에서 영화를 즐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영화와 최신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영화'의 사회 속에서 같은 의미를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혹은 지금도?) 영화가 데이트 코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적당한 값을 지불하면 2시간 정도를 편안한 의자에 앉아 연인과 하하 호호 웃으며 팝콘을 먹고 나올 수 있었다. 대략 계산을 해본다면 3만 원에서 4만 원 정도면 해결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저렴한 문화생활이었다. 하지만 OTT가 나오면서 이것들이 큰 극장이 아닌,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 영화관에 가는 대신 편하게 입고 배달음식하나 시켜 먹으면서 재밌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표값 상승이 어우러지면서 이 현상이 더 심화됐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를 말한다. 한국 영화 시장의 위기는 이 합리적인 결정을 사람들이 하면서부터 나온 것처럼 보인다. 이전에는 영화가 그저 그래도 저렴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표값 상승 이후부터는 좀 더 영화 선택에 까다로워졌다. 그래서 소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서 '수작'이라고 인증된 영화들을 보러 가게 되거나, 좀 더 저렴한 OTT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아예 극장에 가는 것을 멈춰버린 것이다. 나는 그래서 극장이 살아남으려면 이전 과는 다른 경험을 사람들에게 부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4D나 잘 꾸며진 상영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엔터테인먼트 산업처럼 변해야 된다는 말이다. OTT가 나오면서는 사실 이런 것들을 미리 예상하긴 했다.

1) 대형 스크린에 어울리는 그래픽 요소를 가진 블록버스터 영화

2) 영화 마니아들은 위한 (그 다지 큰 스크린이 아닌 안락한 소규모 스크린에 적합한) 영화

3) 이제는 영화관에서 상영이 되지 않아도 무방한 OTT용 영화

나는 영화들이 이 세 가지로 나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한국 영화는 1이나 2에서 실패했고, 3에서도 그다지 자리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산업도 돈을 버는 것이니 매출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매출'에만 신경 쓰다 보니 영화의 전체적인 질과 다양성이 죽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지금도 독립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들은 많지만, 일반인들에게까지 그들의 영화가 소개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앞서 말했었던 스크린 독점 때문에 애초에 대형 영화관이 점령하고 있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다양성'은 이미 사장된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고, 그 자리는 복제품처럼 찍어진, 기준미달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비싼 배우들로 이루어진 상업 영화가 차지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본은 여기에 투자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영화계에서 관객들에게 '제발 영화 좀 봐주러 와주세요.'라는 호소가 아직 본인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본인들의 비워진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관객들에게 소위 말해 '삥'을 뜯으려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본인들이 정말로 한국 영화 산업이 잘 되기를 희망했다면, 스크린 독점도 하지 말아야 했을 것이고, 다양한 감독들이나 독립영화에도 적절한 투자를 진행하고, 영화 제작비가 너무 올라가지 않도록 여러 거품들도 해소했어야 한다. 그것은 보통의 관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할 문제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글로써 호소를 할 순 있겠지만)


코로나 대유행 이전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성공과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에 성공을 마치 한국 영화 산업 전체의 덕으로 포장하고 또다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때처럼 K딱지를 붙여 한 숟가락 얹어보겠다는 심보가 난 괘씸하게 보이기만 한다. 평소에 그들이 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영화계에서 사람들이 떠나게끔 만들었으면서. 사실 난 <오징어 게임>도 드라마 서사로서는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끼지만, 작품 외적으로 인터넷에서 퍼진 여러 가지 재미있는 '밈'이나, 아직 한국 드라마를 접해보지 않았던 외국인들의 '호기심'이 만나면서 드라마의 성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인하여 투자를 받아 만든 <종이의 집 : 한국판>이나 <정이>를 보면... 이러한 질 낮은 콘텐츠들이 넷플릭스에 소개되고 외국인들이 이것을 보게 되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한다. 기껏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올려놓고,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색다른 맛을 느끼게 했더니, 후발 주자들이 이것을 다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잇다 보니 두서없어진 것 같다. 정리하자면, 내가 현재 한국 영화 시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 구조적 문제

1) 오직 '수익성'을 목표로 한 영화 제작과 스크린 독점이 수준 낮은 각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나왔고, 생태계를 지배했다. 

2) 마케팅이나 소위 말하는 '흥행 보증 배우'를 꼭 써야 한다는 인식으로 인해 제작비가 상승했다. 

→ 이에 따라 여기에서 발생한 돈을 메꾸기 위하여 표값을 지속적으로 올려왔다. 

3) 상대적으로 독립영화, 신인 감독들에 대한 투자가 떨어졌을 것 같았고, 따라서 다양성이 하락했다. 


■ 인식적 문제

1) OTT의 출현 및 구독료를 극장에 가는 행위와 상승된 표값과 비교해 봤을 때, 전자가 더 매력적이라고 일반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했다. 

2) 따라서 사람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일본 애니메이션 같이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된 것이 아니라면 구조적 문제에서 나온 한국 영화의 질적 하락으로 인하여, 한국 영화 보러 가기를 꺼려하게 됐다. 


■ 영화를 좋아하는 일반관객이자 제삼자 입장으로의 (나름대로) 해결방안

1) 질 낮은 각본에서 나오는 완성도 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배우'를 사용하지 말 것

2) OTT가 아닌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 감동이 깊은' 영화를 고민해 볼 것 [무조건 CG를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영상미가 좋은 영화들을 말하는 것, 예컨대 포레스트 시리즈 같은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도 있다.]

3) 영화관을 단순이 '영화 보고 가는 장소'가 아닌 매력적인 장소로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볼 것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 숨어있고 제대로 된 투자나 교육을 받지 못하여 소개되지 못하거나 성장하고 있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무언가를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본인들의 구조적인 문제를 망각한 채 소위 말하는 '적자 메꾸기'에만 급급하여 영화 표 값을 올리고, 이로 인해 발을 끊은 관객들은 향하여 오히려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행태는 날림공사로 만든 아파트가 분양되지 않자 지금까지 일반 시민들의 은행빛으로 돈축제를 해온 건설사가 정부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사달라고 조른다거나, 최근의 0.78을 찍은 출생률 문제에 따른 책임을 2030에게 떠넘기려는 인식과 동일하다고 본다.) 제발, 눈앞에 있는 문제점만 미봉책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썩고 곯은 것이 있다면 도려내고 체질개선을 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최근에 한국에 잠시 들어가는 영화표를 끊었다. 독일에 오고 나서 내가 아쉬웠던 건 '극장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있었다. CGV의 아트하우스도 그립고, 종로의 에뮤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맞는 음료를 마신 추억들이 그립다. 나는 표 값이 올랐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보러 갈 용의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비단 내가 좋아하는 예술영화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재밌는 시도를 하는 한국영화에도 해당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말로 된 영화를 볼 때만큼 내가 대사 그대로를 이해하고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없다. 나는 그것을 저번 베를린 영화제에서 절절이 느꼈다. 영화계에서 그토록 원하는 거장과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지금의 문제들을 꼭 되돌아보고 의미 있는 행동으로 그것을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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