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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12. 2023

230411

시험이 끝나고 난 뒤

시험은 요상하다. 마치 소개팅 같은 느낌이다. 시험을 보기 며칠 전까지는 내가 이것을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설레이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이삼일, 코앞으로 다가오면 내가 이걸 지금 왜 하고 있지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물음이 들기 시작한다. 당일날 아침에는 별 생각이 없고, 그냥 원래 하던대로 아침을 먹고, 씻고 밖으로 나선다. 


시험을 보면서는 거기에 집중한다.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대부분은 알 수 없고, 엄청 잘 봤다는 것과 개망했다는 결과정도만 예측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게 힘이 빠지고 공허한 느낌이 든다. 


시험은 요상하다. (한국에서 봤던 거의 대부분의)시험은 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5지선다에서 답을 고르는 객관식이 많았고, 주관식도 논술시험이 아닌이상 간단하게 답을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수능같은 거의 모든 고3이 보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빠른 채점을 위해 모든 답안이 OMR카드에 작성된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시험을 보고 OMR카드에 답에 해당하는 숫자 칸을 검은색 싸인펜으로 칠한순간, 내 성적은 그때 이미 정해진다.


이것은 OMR카드가 기계에 들어가서 답이 인식되기 전까지 내가 적은 것이 정답일지 오답일지 가려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아니다. 이미 내가 적는 순간에 확정되는 데이터일 뿐이다. 그것은 오직 누군가를 통해 '확인'됨으로써 O와 X로 표현되고 이후 성적표라는 데이터의 집합 형태로 산출된다. 


시험은 요상하다. 그러니까, 이미 내가 시험시간에 적는 것으로 미래는 이미 정해졌는데, 그것이 나올때까지 우리는 그것에 대해 엄청나게 생각한다. 내가 붙었을까? 떨어졌을까? 잘 봤을까? 혹시 한 번 더 봐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고민은 앞서서 말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감정적이라는 면을 빼면 소용없다. 그런 기대는 나의 오답을 정답으로 고쳐주지도 않고,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 


내가 오늘 본 시험도 마찬가지다. 여기와서 세번째보는 TestDaF시험. 사실, 이 시험은 말하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녹음된 나의 음성을 여러 '인간'이 나중에 채점을 하고 교차 확인 하는 식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내가 오늘 시험을 마쳤을 때 정확한 결과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시험마다 어떠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대로 채점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유의미한 점수의 이동만이 있을 뿐, 그것의 결과도 (거의) 달라지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시험은 요상하다. 소개팅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않다. 시험이야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가정하게 감이 오지만, 소개팅의 경우에는 그것 조차 알 수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마음과 어떤 것이 정답일까?라고 생각하는 선택의 순간이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그저, 결과가 잘 나오기를 바라며 자신의 노력을 믿으면서 중간의 시간을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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