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
주식 매매법 중에는 우스갯소리로 '침팬지 매매법'이라고 불리는 방법이 있다. 여기에서 침팬지가 가지고 있는 지능에 대해 비하할 생각은 없다. 저 방법의 뜻은, 사람들은 주식 투자(혹은 투기에 가까운 방식으로)를 할 때 잃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복잡한 주식매매를 할 줄 모르는 침팬지에게 자산을 맡기면, 수익도 0이지만 손해도 0이기 때문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낫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내지는 '가만히 있을 뿐'이라는 것이 침팬지 매매법의 중요한 점이다. 몇 달 전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조용해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대표 선거가 진행되면서 자기 목소리를 조금 내나 싶더니 요새는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다. 한 때는 대통령감이다라고 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특별한 묘수가 없는 이상 그의 재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오늘은 이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말을 그에게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된 지 일 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 일 년 동안 끊임없는 쇠퇴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물론이고 외교/안보 문제도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내년 총선과 임기가 끝나는 앞으로의 4년 동안 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통 모르겠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한창 힘든 한국 영화시장에서 쏠쏠한 매출을 올린 것 중의 하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었다. 나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그 영화의 기본 설정과 주요 서사는 주인공인 스즈메가 어떤 위험한 사건들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속'을 해가는 것이라 들었다. 2D세계에서의 한 소녀가 문단속을 하고 다니는 것처럼, 나는 요새 심각하게 누군가의 입단속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적절한 언행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은 헌법기관으로까지 해석되기도 한다고 알고 있고, 본인만의 철학을 통하여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면) 국가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쪽으로 발전시킬지에 대해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국내는 물론 국외의 이익들을 고려해 가며 끊임없이 국가의 이익과 시민들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작년부터 내가 그로부터 들었던 언행을 보면, 이런 면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처음이라' 그렇다,라고 변명을 할 수도 있겠으나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는 은연중에 그 사람의 의도나 진심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에게 '선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취약계층이나 대부분의 시민들을 위한 선의가 없다는 뜻이다. 그의 측근들과 그가 받들거나 받는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선심 쓰듯이 베푸는 것만 보인다.
바로 이틀 전에는 워싱턴 포스트와 나눈 인터뷰가 문제가 됐다. WP에서 보도가 나가고, 야당이 이 발언을 문제 삼자 (당연히 나도 발언이 역사인식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어가 없다느니, 그의 뜻이 이런 것은 아닌데 오독이 됐다거니 하는 말들로 포장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가 원문을 공개했고, 그 후 대통령실과 여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행태는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조차 못하면서, 그것을 지적했을 때 진심 어린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리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거짓말과 거짓선동으로 행해진다.
그래서 부쩍 '자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자격은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뜻한다. 취업시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한다. 회사들은 사람들을 교육시키기보단 뽑아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이른바 그들 기준에서 '일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원한다. 기업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자격'을 얻기 위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그곳은 아주 중요한 자리이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운이 정해진다. 우리는 굳이 한국뿐만이 아니라 이웃나라와 전 세계, 그리고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이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난 대통령이 어떤 성과나 퍼포먼스가 낮을 때 '처음 해봐서...'라는 말을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22년의 한국은 정치경험 없고 30년 간 검사 생활만 한 사람을 뽑아버렸다. 난 그를 뽑은 사람들을 원망하고 싶지 않다. 그들보다는 사람들이 그 사람을 뽑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분위기를 몰아간 세력이 훨씬 나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수구/보수세력을 감싸주는 여러 언론의 형태라던지 정치적 목적이 있어 보이는 과한 수사 같은 것들을 진행한 세력. 그리고 우리는 그 세력의 수장을 대통령으로 맞이했고, 국내 정치에서는 대부분 내가 생각했던 거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준비되지 않았다. 사법 영역에서는 전문가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법으로 사람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법 기술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자신이 처단하고 싶은 사람이나 단체들을 압박한다. 그리고 그 이외의 분야에서는 지식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 대통령실 도서구매가 0원이라고 했으니, 과장이 아니라 이 정도면 국민 평균 독서량에도 미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이해하고 적절히 행동하는 방법도 있다. 자신이 잘 모르면 잘하는 사람을 앉히면 되고, 어려운 문제는 협의를 통해 좋은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 옆에 말 잘 듣고 자신과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을 등용하고, 심지어 그 사람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한 말들을 부정하거나 정정하는 행태까지 저지르곤 했다. 아이를 돌보는 문제와 69시간 노동과 관련된 문제가 대표적인 것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점에서 그의 평소 발화를 상상해 보자면, 유시민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냥 떠오르는 대로 '즉자적'인 방식으로 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한편 그의 반려자는 어떠한가? 그녀가 쓴 논문들은 조작과 표절논란에 쌓여있다. 석사학위 논문을 써보지 않은 나도 그녀의 논문을 보면 엉터리라는 것을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박사'타이틀을 받았고, 거짓된 '자격'을 가졌다. 이러한 '만들어진' 자격으로 그녀가 지금까지 부적절하게 얻은 기회와 자리들을 생각하면 순수하게 공부해서 자격을 얻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허탈감을 느낄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리고 난 이런 사람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사회부터 큰 회사까지. 본인의 노력이 아니라 그저 주변인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나 나쁜 행동으로 인하여 세를 불리고 거짓된 '자격'을 얻고, 그것으로 또다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고 실제 알맹이는 없으니 그런 자가 앉은자리는 서서히 침몰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가 엘리트주의와 기득권들의 세상이 되면서 이런 것들이 점점 많은 영역에서 침투됐고, 썩어가는 과정이 이미 많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심으로 미래가 걱정된다. 비록 나는 독일에 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있고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한국에 있어서 그렇다. 우리에게도 자격이 있다. 한 나라의 시민으로 태어나는 순간 이 나라의 '민주주의'시스템에서 자동적으로 얻게 되는 의무들이 있고, 그것을 쓸 자격이 있다. 투표만 하고 결과를 그냥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어 가는 것을 지적하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을 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난 자격 없는 대통령에게 내가 태어난 나라를 맡길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남은 임기 때까지는 그 대신 한 동물원의 침팬지가 대통령자리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