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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Feb 15. 2023

Ich bin ledig

오늘은 독일에 와서 두 번째 보는 시험날이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나름대로 세웠던 계획에서, 나는 나의 마음속 마지노선을 올해 봄으로 잡았었다. 시간은 금새 빠르게 흘러갔고 이제 내 마음속 한계는 세 달 앞으로 바짝다가왔다. 오늘 본 시험은 그 중간에 해당하는 단계였고, 나는 이제 4월에 있는 시험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물론, 이건 올해 10월 학기에 내가 석사를 시작한다는 전제 하다. 막상 독일에 넘어와서 언어공부를 해보니, 일 년도 안되는 시간에 C1단계에 해당하는 성적을 따겠다는 목표가 넉넉한 건 아님을 알게됐다.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공부에 대한 자세와 연관시키면 더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시험은, 어느정도는 테크닉으로 극복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데 이러한 언어시험의 경우 자주 쓰이는 표현들을 달달외워서 그것을 써먹는다던지, 아니면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단어를 외운다던지. 하지만 나는 이런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논리가 동반되지 않은 암기를 싫어하고 잘 못한다는 것에 있고,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단기적으로 외운 것들은 실제 나의 실력을 대변하지 못하고, 금방 잊어버린 다는 것이다. 10년 전 쯤, 나는 지금의 Goethe B1에 해당하는 ZD(Zertifikat Deutsch)를 봤었고, 말하기 파트너로 어느 사람과 시험을 같이 쳤었다. 나는 계속 독일문화원에서 수업을 들어서, 그 단계의 회화에서는 한국인들이 느끼는 회화에 대한 부담이 없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하는 과제에서 그는 내가 묻는 질문에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문장으로 보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완벽한 것이었지만 그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나중에 어떤 성적을 받았을런지는 모르겠다. 그의 합격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어진 시간안에 무엇을 어떻게든 완수하려면 그런 방법또한 가끔은 필요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마음속의 갈등이 발생한다. 내 마음의 한 쪽 : 이런 공부법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옳지 않아. 꾸준히 실력을 늘리는게 중요한거야 vs 다른 한 쪽 : 10월에 당장 계획을 완수하려면 어떻게든 시험을 잘 볼 생각을 해야지. 나는 여전히 전자가 좋다고 믿는다. 

어쨌든, 오늘 시험에 대한 소감을 남기자면, 저번 시험(11월)보다는 잘 봤다는 느낌이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점수를 가져다줄 지는 의문이다. 읽기는 저번보다 어려웠던 것 같고, 뭣보다 독일어공부를 하면서 난생처음 보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당황그러웠다. 물론 나의 단어암기가 부족할 탓일 수도 있는데, TestDaF라는 시험의 특성상 과학 관련된 텍스르를 많이 다뤄서 어느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정도로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 다음에 이어진 듣기와 쓰기는 모두 3개월 간 나의 단어가 늘어서 저번 보다 한결 나았다. 사실 저번 시험에서 나는 읽기에서는 합격점수를 받았지만 듣기와 쓰기에서는 점수가 좀 부족했었기 때문에, 이번 시험에서의 합격 당락을 이 부분이 가른다고 생각했다. 내용으로만 보면 듣기가 읽기보다 훨씬 텍스트의 난이도는 낮았던 것 같고, 쓰기도 저번보단 내용파악을 해서 잘 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하기. 전반적으로 보면 횡설수설한 것도 있지만, 저번 회차보다 발전된 고급문법을 사용했고, (저번보다는) 과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몇몇 분야에서는 시간제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나의 주장에 논리를 세우는 것에 부족했지만... 내가 시험에 약한 이유는, 이런 말하기 과제에서 제한된 시간내에 무언가를 빨리 생각해내고 말해야되기 때문도 있다. '시험'이니까 논리에 맞던 안맞던 대략적으로 논리에 맞는 간단한 이유를 생각하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나는 도대체 그게 잘 안된다. 과제를 받으면 1분 밖에 시간이 없는데, 머리속에서는 20분 분량의 발표내용이 지나가니깐 말이다. 어찌됐던 그것들을 자르고 오려붙여 얼기설기 붙이다보니 내 머릿속으로는 내가 말도 안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다보니 답하기가 어렵다. 뭐, 오늘 시험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나는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추가적으로 오늘 있었던 해프닝을 말하자면, 시험을 주관하는 어학원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시험이 30분 정도 더 늦춰졌다. 시험은 노트북으로 보는 탓에 마우스가 제공되지 않았고, 그래서 몇몇 과제에서 커서 움직이는 것이 느려서 답을 충붆이 고민하고 고르지 못했다. 말하기 시험에서는 한 수험생의 컴퓨터가 이상한 바람에 혼자 너무 빠르게 시작했고, 모두가 조용한 시각에 그 사람이 혼자 말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도 부담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불안요소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두 번째 시험이 끝났다. 해이해지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유럽에 오고나서 여유가 는 것 같다. 모든 것을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유럽에서 살기가 힘들다. 언제까지 뭘 해야돼, 너는 이걸 해내야해. 이런 마음들은 나를 채찍질 해주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의 남은 부분을 갉아먹는 것들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늦었다고 생각하는건, 그것이 일반적인 삶과 일치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한국의 병폐다. 모든 인간을 기준치에 맞춰놓고 모난 부분을 잘라낸다. 그러니 살아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올해든 내년이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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