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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28. 2023

230327 한

이틀 전 일요일,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써머타임이 다시 시작됐단 걸 알았다. 시간은 내가 자는 사이 시침의 변화 없이 한 바퀴를 몰래 돌았다. 이제 이주 후에는 (마음의 마지노선으로 잡아둔) 시험이 나를 기다린다. 이주 전은, 2월 시험의 결과가 나오는 날임과 동시에 내가 퇴사를 한 지 꼭 일년이 된 날이기도 했다. 그날 합격점수을 받았다면 의미로 넘처 흐르는 날이 되었겠지만, 그러진 못했다. 이제 일을 하지 않은 지도 일년이 넘었다. 내가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기와서도 수십 번 느끼곤 한다. 나는 일로써 자아실현을 이루고 싶어하고, 일을 함으로써 내가 '쓸모'있다는 증명과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는 동기들과 주변 지인들이 부럽기도 했다. 지난 일년간 내가 일(Arbeit)을 하지 않는 동안 했던 일들(Sachen)에 대해 생각한다. 비록 돈을 벌지 않고 계속 쓰기만 했던, 소비로 충만한 날들이었지만, 덕분에 하고 싶고 보고 싶던 것들도 마음껏(아마도?) 했고, 새로운 경험도 많이 모았고, 미래의 일(Arbeit)를 위해 필요한 언어를 배우는 것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소화가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처럼, 짧은시간에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일(Activitäten)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밥을 하면 그것이 설익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래 엄청나게 급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삶의 속도를 낮추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올해 가을이 오기전에는 내가 (여유있게 설계했었던) 첫번째 단계를 끝내고 그 다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름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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