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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10. 2023

Potsdam und Literatur

베를린에서 지낼 날이 별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전에 가보고 싶던 곳들을 구상하고 하나둘씩 행동으로 옮겼다. 포츠담은 베를린에서 S-Bahn을 타고도 갈 수 있는 근교 도시였다. 사실 이곳은 2010년, 친구와 둘이 독일에 와서 베를린에 머물 때도 당일치기로 갔었다. 베를린은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였고, (그 친구의 생각은 알지 못하겠지만)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불만이 쌓인 시기기도 했다. 그리고 포츠담에서 결국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궁전을 보려면 티켓을 사야 했는데, 나는 빨리 오는 버스를 타고 공원 쪽에서 내리자고 주장했고 넓은 공원을 둘러 간 매표소에는 궁전으로 들어가는 티켓이 없으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친구는 그것에 화를 냈고, 30분마다 버스가 오는 한적한 공원 옆의 버스 정류장에서 어색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다행히 다시 관계회복을 했긴 했지만, 웬만해서 갈등 상황을 일으키지 않는 나와 그 친구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거의 3주간의 여행도 친구 간의 우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었다. 



어쨌든, 13년 만에 나는 이곳을 다시 찾았다. 나 말고도 동행을 3명이나 구했는데, 일정은 조금씩 달라서 한 명과는 궁전을 같이 구경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 다른 두 명과는 포츠담 시내구경과 함께 그날 저녁까지 같이 먹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과는 또 달라서, 포츠담 중앙역은 전보다 훨씬 커진 느낌이었고 실제로 전에는 없던 쇼핑센터가 생기기도 했다. 정류장도 훨씬 커지고... 버스도 좋아지고. 점심을 먹고 나서 저녁을 베를린에 와서 다시 먹을 때까진 시내와 거리 구경도 찬찬히 했다. 독일의 소도시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인구가 별로 없고 건물도 낮은 편이라 산책하기 좋았다. 



동행으로 만난 사람 중 한 명은 한국에서 국문학 석사를 하고 있다고 해서 반가웠다. 나는 대학교 때 소설 관련 모임을 하다 보니 대부분의 대학교 친구들이 국문과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놀란 것이 있었다면, 그가 다니는 국문과 석사과정은 창작도 해당되어 있어서 동기들과 함께 서로의 것을 보여주고 합평도 진행한다고 했다. 그는 베를린에 2주 정도 머문다고 했고, 며칠 뒤에 베를린 동쪽 Treptowerpark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석사를 앞두고 있었고, 한국에 갔을 때 이미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이나 진행하고 있는 지인들을 만나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쉽지 않은 미래가 내 앞에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도 그랬다. 학기마다 주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이용해 평론을 쓰는 연습을 하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창작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니 그가 나중에 좋은 글을 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순문학이나 예전부터 대두된 웹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나와 그 둘 다 웹소설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을 쓰는 것 성향차이가 있고 재능의 영역에 있는 것이니까. 



그가 약간은 멋쩍게 물어본 것은 '무슨 작가를 좋아하냐'였다. 자기는 그 질문을 받는 게 너무 싫다고 했는데,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아이러니가 재밌었다. 요새는 정지돈의 글들이 좋다고 답했다. 정지돈 작가 같은 경우는, 이전에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작품으로 처음 접했었다. 회사 입사 후엔 한국소설 쪽은 거의 손 놓고 있었는데 3년 전쯤 한남동에서 뮤지컬을 보기 전에 블루스퀘어 2층에 있는 서점에서 그의 연작소설집 <모든 것은 영원했다>를 보고 그의 글을 좋아하게 됐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되면서도, 한국에 대한 것을 다루면서도... 소설의 부분이 그리 길지 않은 두세 페이지의 것들로 지속적으로 쌓이는... 마치 짧은 소설을 계속해서 단편처럼 이어 붙여 완성된 그 소설이 너무 재밌어서, 이태원에 예약한 저녁식사 웨이팅 줄을 기다리면서 한 시간도 안돼서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저번 여름 한국에 들어가서는 그의 다른 소설집도 하나 샀다.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이라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괴상한 책/영화 제목보다 100배는 더 혼란스러운 제목을 접하면서 변태적인(?) 궁금증이 들어서 사게 됐다. 그의 소설은 마치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와 평론 내지는 논문을 읽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해당 소설에서는 챕터마다 그가 이것을 쓸 때 참고한 레퍼런스들을 나열해 놓아서 더 그랬다. 한편, 다른 친구가 <... 스크롤!>이라는 책도 알려줬는데, 책 시작 문구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감독인 페촐트의 글귀를 인용해서 끌렸다. 미리 보기로 본 부분도 내 마음에 쏙 들어서 구매했다. 아참, 위의 긴 제목을 가진 곳에서도 페촐트와 하로키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사석에서 정지돈 작가를 만난다면 어쩌면 대화가 잘 될지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창 회사를 다닐 때 그는 인터넷 페이지 '주간 문학 동네'에서 에세이를 연재한 적도 있었다. 그와 그의 문학(?) 동지들과 유럽을 다니면서 거기에서 나눈 말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 벌써 그것은 단행본으로 나온 지 오래인 것도 알게 됐다. 포츠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오늘은 조금 튀어 정지돈까지 흘러 들어갔다. 아, 동행에서 만난 사람 덕분에 두 번째 그를 만난 날에는 '아이스크림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했다. 5유로를 내고 들어가서, 갖가지 맛들을 맛볼 수 있었다. 다양함을 맛볼 때 나는 기쁜 것 같다. 아참, 부스 중에는 실험적인 맛들을 선보인 곳들로 있었는데 차마 딸기/김치 맛은 시도해보지 못했다. 김치피자탕수육은 먹어도 김치 아이스크림은 아직 나에게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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