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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l 03. 2016

알파와 오메가

- 다시 찾아본 멋진 프라하, 그리고 여행의 종료


오스트리아를 떠난 나는 뮌헨과 뉘른베르크를 거쳐 프라하로 다시 돌아왔다. 평소 독일을 좋아했던 나지만, 뮌헨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실망했던 곳이기도 하다. 님프 성과 영국정원을 걸으며 산책하는 건 좋았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은 탓이었는지, 다른 소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방인(관광객)’에 대한 뮌헨人들의 홀대를 느꼈다. 마치 ‘네, 다음 손님’처럼 느껴지는, 굳이 네가 아니어도 관광객은 차고 넘쳐, 라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숙소 건너편의 술집이 그나마 가장 나았을 뿐. 6년 전 갔었던 독일의 다른 소도시나 오스트리아보다 뮌헨은 나에게 차가웠다.


크리스마스에 갔었다면 더 좋았을 뉘른베르크(크리스마스 마켓이 매년 열린다.). 전범재판소의 방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지만 나치 전당대회장이 공사로 문을 닫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뉘른베르크에서는 다섯 시간 정도를 있다가 독일과 슬로바키아의 유로컵 16강전 시간에 맞춰 뮌헨으로 왔다. 경기는 독일이 슬로바키아를 3:0으로 이겼다.


그리고 나는 다시 프라하로 왔다. 마치 예전 집에 돌아온 것처럼 도시가 반가웠다. 낯익은 거리와 낯익은 풍경들. 방학과 휴가시즌이 시작돼서인지 거리는 사람들로 넘쳤다. 까를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각자의 포즈를 취하여 기억을 써 내려가고 있던 사람들. 나는 마지막 식사로 체코式 굴라쉬와 코젤 다크 1.5리터를 마셨다. 내게 메뉴를 주며 my friend라 말하고, 1리터 맥주를 시키자 엄지를 시켜 세웠던 유쾌한 종업원이 기억에 남는다. 


6년 전의 여행처럼(인 아웃 모두 프랑크푸르트) 이번에도 인 아웃이 모두 프라하, 나는 이번에도 처음과 끝의 도시가 같았다. 마치 연어가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오는 여정. 어찌 보면 런던 in, 로마 out 같은 여행과 비교를 해보자면 보수적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번에도 14일의 여행 중 단 6일만 슬라브권인 프라하에 있었을 뿐, 나머지 8일은 독일어권 국가에서 머물렀다. 다른 이가 런던, 로마, 핀란드, 파리에 대한 여행 이야기를 할 때 그곳에 가보고 싶으면서도, 가지 못했다. 두 번째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2주라는 시간의 촉박함이 나를 몰아세웠던 건 아닐까. 좀 더 길게 가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유럽에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매력적인 곳들이 너무나도 많다. 


‘프라하’라는 같은 공간으로 다시 돌아온 나, 하지만 범 우주적 세계관으로 접근을 해볼 때 유월 십오일의 프라하와 유월 이십구일의 프라하는 다르다. 지구는 공전을 하고, 태양은 우리 은하 주위를 돌고, 우리 은하는 우주의 중심을 돈다. 지구 상의 같은 장소라도 시점時點이 달라지는 순간 이미 그곳은 다른 곳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14일의 기억이 모두 소중하다. 기쁨, 분노, 즐거움 - 이 모두가 혼합되어있는 복합적 기억, 소금의 짠맛과 맥주의 달콤함 혹은 막걸리의 구수함이 섞인 것 같은. 아마 한국에 도착하면 그 숙취로 인해 비몽사몽 한 날의 연속이 될 것 같다. 이제 내 앞에 놓인 건 2학기 복학과 취업,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다. 홀로 간 여행, 좋은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는지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제 인천공항까지의 여정도 절반이 채 남지 않았다. 저녁 기내식으로 먹은 불고기와 레드와인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며 식곤증을 불어 일으킨다. 아마 곧 글을 다 쓰면 한 숨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유럽은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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