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은 이렇다 : Unter den Linden역에서 U6을 타고 Naturkundenmuseum에서 내린 뒤에, 근처의 트램정류장에서 M10번을 타고 Bernauerstraße에서 내린다. 트램을 타면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을 본다. 오늘은 내 바로 옆자리에서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하는 가족을 보았고, 네살 쯤 되보이는 첫째 아이가 내 옆자리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신기했던건, 무료게임을 다운받으면서 할 때 잠깐잠깐 나오는 광고를 아이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반복적인 훈련으로 구분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조차도 처음에 그 아이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을 때 보였던 광고가 게임인 줄 알았으니까. 게임을 하면서 나오는 광고는 역시 다른 게임을 다룬 광고일 때가 많고, 완벽하진 않지만 게임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간단한 인식만으로는 힘들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둘을 구분할 수 있는 명시적인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 광고는 내가 아무리 눌러도 입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광고 배너를 누르면 그 게임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 화면으로 간다던가, 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높은 확률로 네 모서리 중 하나에 광고 종료때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며,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Skip으로 바뀌거나 시간이 다 지나가면 X표시로 바꾼다. 그리고 그것들을 누르면 다시 메인게임 화면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한편 사용자가 하고 있는 게임과 광고는 그림체나 그래픽도 다를 경우가 많기도 하다. 하지만 게임은 사용자에게 즉각적인 도파민 분비를 도와주는 한 편, 광고는 미래의 체험으로 인해 도파민을 분출 할 수 있다는 언지를 준다.
그리고 나는 이 게임과 광고의 관계가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언행과 외교언어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상생활에서 가족 혹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편하게 말하며,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잘 돌려말하지 않는다. 가령, 저녁으로 무얼 먹고 싶니?나 저 지금 나갔다 와요. 같은 말은 발화의 목적과 그 의미가 분명하다. 의미상으로 보았을 때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발화가 효율적이다. 하지만 외교의 말은 다르다. 다분히 수사학적이고 직접적인 말들을 삼간다.
이는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기분이나 예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말을 하는 입장으로서는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돌리면서 뒤에서는 첨예한 머리싸움을 해내가는 것이다. 외교적 수사는 공적인 언어이고, 발화자가 말을 뱆는 사람 자신이라기보다는 국가를 대변하고 있는 입장일 때가 많다. 그래서 조심해야 하고 정제되어야 한다.
확실히 이런 대화법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나 스킬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도 일상생활에서 해야될 말과, 외교적 자리에서 해야할 말을 구별해야 한다 쯤은 상식으로 알 수 있다. (비록 그런 방식으로 표현을 하진 못할지라도) 일상적인 회화와 외교적 수사는 발화라는 점에서는 같고, 그 구성은 비슷할지언정 목적은 아주 다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런 것들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자주 TV와 기사에 나온다. 내가 들은 말과 생각한 바를 합치면, 그의 행동은 굉장히 naiv해 보인다. 다른 나라 고위직이 하는 말들은 보통 외교적 수사일 경우나 많은데,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대응을 하는 것 처럼 보일 때가 많다. 칭찬으로 들릴 말이 사실은 칭찬이 아닌경우도 있고, 다음 수를 준비하기 위한 명분쌓기 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한편,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외교적 수사가 전혀 아니다. 직설적이며,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자연인으로서 뱉을 법한 말들이 대부분이다. 이것 또한 naiv하다. Naiv에는 순진하다는 뜻도 있지만 단순하고 어리석다는 뜻도 있다. 네 살 짜리 아이도 자신이 가지고 노는 스마트폰에서 게임과 광고를 구분할 줄 아는데, 일국의 대통령이 일상적인 발화와 외교적 수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타국에서 그를, 그리고 한국을 얼마나 깔보고 어떻게 구워삶을지 혹은 너무나 외교를 쉽게 본인들이 원하는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전략을 짜고 있을지 상상하면 너무다 원통하다.
시간이 점점 흐를 수록 점점 외교에서 한국이 설 자리가 줄어들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고 받기가 아닌 일방적인 퍼주기와, 자신의 팀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내뱉는 말들로 인해, 미래에 그것들이 무엇으로 돌아올지가 두렵다.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발화자의 말로 인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생활이 어려워지고 사회체계가 망가지고 있다. 아주 조금씩 늪으로 잠기는 물건처럼, 다시 지면위로 올리려면 얼마나 더 큰 힘이 필요할 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