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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l 05. 2016

정글化 혹은 火

정글북을 본 뒤, 비판적 소고

*스포일러가(만?) 있습니다.



정글북은 보수적인 이야기다. 호랑이에게 위협을 받고 늑대 무리를 떠난 모글리가 인간사회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늑대 무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 물론 그 중간에 자신이 ‘늑대’가 아니라 ‘인간’ 임을 인지하며 도구를 사용하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종단에 정글에서 그가 사는 모습은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점. 정글의 “규율”이 곧이곧대로 지켜지며 모글리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이 호랑이와 대치하는 설정이 그랬다. 물론 이 영화에서 가장 꼰대스럽게 등장하는 호랑이를 보수적인 존재라고 본다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늑대 무리에 끼고, 정글에 사람을 들인다는 법칙을 깬 모글리와 늑대 무리가 그 대척점에 있는 진보적인 존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후에 모글리를 도와주는 곰도 마찬가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물론, 20세기에 쓰인 원작을 따라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편, 모글리는 인간 부락에서 ‘불’을 정글 안으로 가져온다. 그 사실 자체로 모글리를 ‘프로메테우스 적 존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횃불을 강가로 던지는 순간 또다시 스토리는 보수적인 프레임에 갇힌다. 그가 가져온 불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산불이라는 재앙으로 순식간에 전락해버린다. 또한 그 산불을 진압하는 존재가 정글 동물들이 섬기는 ‘코끼리’와 '불의 영원한 천적인 '물'(순수하게 물리적 성질에 기입한)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더.


이런 점을 볼 때, 오히려 가장 진보적인 생각을 했던 것은 원숭이 왕궁의 왕인 오랑우탄 ‘루이’였던 것 같다. 그는 오랑우탄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탐닉한다. 불을 얻게 됐을 때 자신도 인간과 동등한 존재가 되고, 곧 온 정글을 자신의 손안에 넣을 수 있다는 야심. 어찌 보면 그가 앉아있던 고대 인류 유적의 왕좌의 자리는 수천만 년 간 보존되어 있던 정글보다는 훨씬 최근의 것이라는 점이 재밌었다. 그리고 <Her>에 이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스칼렛 요한슨 역시 매력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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