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월요일
오후 12시 30분에 짧막한 오리엔테이션 세션하나, 그리고 점심을 멘자에서 먹었다. 멘자는 싸다. 이 날은 학생증을 받았고, 드디어 학생들을 위한 가격으로 점심을 먹었다. 베를린에서 눈물을 흘리며 훔볼트대학에서 한 끼에 7~9유로를 주고 먹던 학생식당을 드디어 4~5유로에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또 다시 눈물을 훔쳤다. (마음속으로만) 확실히, 작은 도시에 오니까 방세가 거의 1/3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물론 오래된 기숙사 + 시내와 학교와는 멀다는 사실이 있지만) 그래서 요새는 밥에 좀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베를린에서는 거의 매끼 혼자 해먹었어야 했고, 그래서 시간도 없었고, 요리는 점점 지겨워지고... 그래서 요새는 아침은 간단하게 기숙사에서 과일 하나를 먹거나 시리얼을 먹고, 점심을 멘자에서 든든하게 먹는다. 그러면 배가 고프지 않아서 저녁때는 굶거나 간단히 빵 하나를 사먹는다. 그래도 하루에 식비로 나가는 돈은 10유로 이하. 베를린의 집세와 이곳의 집세의 차이가 450유로 정도 되는데, 매일 이렇게 먹어도 300유로란 사실이 즐겁다.
한편, 영어 수업을 듣기 위해서 필요한 반편성 테스트를 식사 후에 쳤다. C-Test라고 하는 시험을 쳤는데, 빈칸과 시작단어가 주어지면, 글자수에 따라서 단어를 완성시키는 방식이었다. 별로 기대를 안했었는데, 읽기만 보는 시험이라 그런지 C1이 나와버렸고... 그래서 학교에서 제공되는 모든 영어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실제 말하기와 쓰기는 그것과는 한참 멀다는걸 알기에, 대략 B1후반~B2정도에 해당되는 수업을 들을 것 같다. 이 날은 입학환영행사가 있었지만, 비도오고 피곤해서 그냥 집에 들어갔다.
10월 17일 화요일
드디어 같은 배터리학과, 정확히 말하자면 배터리기술(독어과정, 내가 포함된)과 배터리재료(영어과정)과정의 오리엔테이션이 이날 오전에 있었다. 그 전까지 내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교수의 얼굴이나, 각 과정의 학생수라던지에 대한...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도착했고, 그 수는 15명 남짓이었다. 사실 깜짝 놀랐다. 석사과정을 진행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학생수가 그렇게 많지 않을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로 적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도 배터리가 유망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직 이 과가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닥 석사로 이것을 택하지 않는 것인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배터리를 박사로 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석사과정으로 직접적으로 배터리를 다루는 학과는 여기가 유일한데... 여기서 더욱 더 놀랐던 것은 독어과정으로 진행되는 나의 Batterietechnik은 나를 포함하여 단 3명이었다는 것. 그마저도 2명은 다 독일인이었고 나 혼자 외국인이었다. 반대로, 영어과정은 12명 중 한 명이 독일인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인도인이었다. 중국/한국/러시아 국적이 한 명씩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아시아인의 비중이 거의 전부였고, 다시 한 번 아시아의 인구수에 감탄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어쨌든, 약 두 시간에 걸쳐서 두 배터리과정의 책임자과 각 학과의 책임자들의 발표가 이어졌고, 질문답변 시간도 이어졌다.
그렇게 오티가 끝나고, 건물 앞에서 나와 다른 학생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이름과 출신 등을 머리속에 우겨넣고 헤어졌다. 학교 헬스장에 잠시 들려서 시설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 글쓰기를 도와주는 학교 기관의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집으로 들어갔다.
10월 18일 수요일
드디어 첫 번째 수업이 시작되는 날. 아침 10시의 첫 수업은 Grundlage Signale und Systeme라는 것이고, 이것은 배터리학과의 필수 모듈이었다. 필수 모듈이란, 학생 각자가 학사에서 배우지 않았거나, 배웠어도 모자란다고 판단되는 것을 학교에서 지정해주고, 그것을 1년 이내에 이수해야하는 과목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위의 수업과 전기공학, 그리고 물리가 배정됐다. 왜 물리가 배정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대학교때 일반물리학1만 들어서 일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그렇게 따진다면 유기화학도 1만 들었는데, 그것은 왜 포함이 안됐는지 모르겠다.
여튼, 첫 수업은 독어과정의 학과장이기도 했던 슈미트교수가 진행했는데, 다행히 그의 말은 그리 빠르지 않아서 (당연히 중간중간 모르는 단어가 있었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데에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가 다른 두 명의 독일인학생과 질문답변을 주고받을 때에는 완전히 구어체로 하는 바람에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다. 독일어 C1을 따도 첫 학기는 헤맬것이고,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쉽지 않았다. 뭣보다 힘든건, 이 수업후에도 그날은 독일어로 진행되는 전기화학과 영어로 진행되는 배터리 소재 수업이 있었는데, 그들과 같이 다니면서 나는 거의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화의 주제는 알겠으나 세부적인 디테일을 들을 수가 없고, 또 그들이 관심가지는 주제를 내가 알지 못하니 그냥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래도 애들은 착해서, 중간중간 나에게 질문도 하고, 설명도 해주었지만 정말 이런 실전독일어는 처음이라 몸이 굳기 일쑤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배터리학과의 교수들은 모두 실력도 좋고 강의도 마음에 들었다. 소재 수업의 경우 이탈리아 출신의 교수가 영어로 했는데, 수업에서 힘이 넘친다는 느낌을 아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나이도 젋고,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열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나도 의욕이 덩달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