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과 19일 (주말)
토요일엔 독일인 친구들과 스터디를 했다. 베를린에 사는 아나톨의 인도인 여자친구 마샤가 왔고, 코블렌츠에서 온, 그리고 우리들을 자신의 쉐어하우스로 초대한 막스의 여자친구 루디아도 만났다. 그녀는 뉘른베르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5명과 외부인 2명까지 합해서 7명이 되는 사람이 다같이 점심을 먹었고, 나는 그날 페스토 파스타를 그냥 면만 끓인 뒤에 소스에 비벼먹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은 푸리에 급수와 변환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팠다.
일요일에는 중국인인 이치가 점심식사에 나를 또 초대했고, 그 날은 핫팟(훠궈)를 먹었다. 그날엔 자매과의 러시아인인 블라디미르로 와있었다. 러시아 남자들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세르게이가 아니면 빅토르... 가 많은 것 같다. 그는 내가 학교에서 마주친 세 번째 블라디미르였다. 저번 초대때 먹었던 닭도리탕보다는 훠궈는 솔직히 맛이 없었지만 굳이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11월 21일 화요일
석사연구생 자리와 관련하여 미팅을 하러 BayBatt 건물로 아침에 향했다. 멋모르고 10시에 만나자고 했는데, 도시 북쪽으로 향하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씩만 있었고, 중앙버스정류장에서 매 정각마다 출발하는 바람에 9시 20분쯤 이미 근처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래도 근처에 쇼핑센터가 있어서 구경을 좀 하고, 커피와 빵을 사 먹었다. 연구실에 도착한 뒤에는 짤막하게 실험실 투어를 하고, 곧 교수와 두 명의 박사과정생과 언제부터 일을 할지, 어떤 연구를 도와서 할지에 대해 말했다.
교수는 나에게 실험실과 시뮬레이션 중 어떤 것을 위주로 하고 싶냐 물었고, 나는 둘다 괜찮지만 시뮬레이션을 좀 더 선호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침 잘 되었다고, 나 말고 다른 학생들은 배터리경험도 없고 툴을 다루기엔 아직 미숙해서 보통 실험실 일을 시켜서 같이 컴퓨터로 시뮬레이터를 돌릴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찌보면 나도 실험을 하는 것보단 컴퓨터로 하는 것이 회사에서 했었던 일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내가 발전시키고 싶은 프로그래밍언어 습득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윈윈과 같은 결과를 도출했고 12월 부터 한 달에 20시간씩 일을 하기로 했다. 다만, 독일의 늦은 일처리 때문에 정식 계약서는 1월에야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냥 12월부터 나와서 몇시간 일했는지 체크해놓고 나중에 정산하는 식으로 처리하게 됐다.
11월 24일 금요일
독일어 수업 전에 두 사람을 만났다. 한명은 한국인 교환학생, 다른 한 명은 저번에 우연찮게 알게된 독일인. 학과 사람들 말고도 나는 독일어를 사용해보고 싶었고, 교환학생분도 독일어를 배우고 있어서 자리를 만들었다. 독일인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서 서로에게 다 좋은 자리가 될거라고 생각했고,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매주 점심시간 쯤 만나 한 시간 쯤 대화를 하기로 했다.
11월 25일 토요일
다음주 금요일 (12월 1일)이 신호와 시스템의 Probetest(테스트시험?)이 있어서 막스에 집에 모여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시험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컨닝페이퍼?를 다같이 작성했다. 문과대학은 모르겠지만, 이과 수업들의 경우 교수에 따라 시험을 볼 때 이런 참고용지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공식들을 굳이 외울필요가 없다. 그리고 나는 이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무지성으로 공식을 외우고 그것과 관련된 지엽적인 문제를 내서 등수가 갈리는 이전의 교육방식은 머리에 남는 것도 적고(내용적으론) 그 과목에 대해 사고할 능력도 떨어뜨린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시험을 치루면, 학생들은 좀 더 수업시간에 배운 이론적인 것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어짜피 나중에 연구를 하거나 회사에 가면 공식을 외워서 쓰는 사람은 없다. 그냥 도움이 필요하면 책을 보고 하면 되는 건데. 어쨌든, 이날은 점심을 먹고 헤어져서 비교적 일찍 공부를 끝낼 수 있었다. 밥을 먹는 중간에는 여러가지 박람회...와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같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듣기평가에 가까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블랙 프라이데이가 얼마 안남았다는 것을 알고, 발걸음을 돌려 전자제품 매장으로 향했다. 곧 집에서도 작업을 하게 되면 모니터가 하나 더 필요하기도 하고, 평소에도 공부할때나 영화를 볼 때 큰 모니터가 있으면 했다고 생각했기에 오늘이 아니면 비싸게 주고 사야할 것 같았다. 다행히 거의 절반값으로 파는 삼성 25인치 모니터가 있었고, 나는 그렇게 애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독일에 넘어오고 나서는 15인치 노트북만 쓰는 바람에 (회사에 있을 때보단)작은 화면만을 봐왔는데, 25인치를 보니 그것이 객관적으로 엄청 큰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내 눈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아침에 첫 눈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