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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16. 2024

2와 1

2002년 월드컵의 조별리그가 한참 진행되던 때, 나는 KBS 9시 뉴스의 스포츠 타임에서 독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이겼다는 뉴스를 보면서, (어린마음에) 순식간에 독일 축구에 매료됐다. 그 후 아이러니하게도 4강전에서는 대한민국이 독일에게 0:1로 패배하면서 아쉽게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독일 축구에 대한 관심은 그 때 (초등학교 6학년)부터 꽃피웠다. 많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나는 유니폼에 새겨진 이름이 꽤나 멋있어 보이는, 그리고 테크니컬한 움직임으로 내 눈을 끌었던 슈나이더 (Bernd Schneider)라는 선수가 마음에 들었고 곧 그 선수가 속한 팀인 바이엘 레버쿠젠(Bayer Leverkusen)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박지성이 EPL에 진출하면서 프리미어리그가 방송되는 일은 잦았지만, 분데스리가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해외 사이트를 전전하며 지금과 비교하면 아주 나쁜 화질로 경기를 찾아봤다. 축구게임을 할땐 늘 레버쿠젠을 고르기도 했고, 그 팀으로 가장 어려운 난이도로 리그 1등을 이루어냈을 땐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오갔고 (대략 그 라인업을 써본다면, 슈나이더 / 올리버 뇌빌 / 라멜로프 / 바르네타 / 키슬링 / 곤잘로 카스트로 / 지몬 롤페스 / 바바레즈 / 베르바토프 / 비달 / 크로스 / 마누엘 프리드리히 / 히피아 등등...) 팀은 챔피언스 리그를 나가기도 하고, 어떤 시즌엔 잠시 중간 시즌까지 1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준우승을 많이 해왔던 Vizekusen이라는 꼬리표는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흥민이 함부르크에서 레버쿠젠으로 이적을 하면서, 국내에서도 오직 그 때문에 그 팀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천천히 레버쿠젠을 '가장 좋아하는 팀'에서 '독일 리그내에서 관심있는 팀'정도로 바꾸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들이 은퇴하고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자리는 묀헨글라트바흐로 옮겨졌다. 

그러던 그 팀이 드디어 이번 시즌 우승을 했다. 분데스리가 출범 후 첫 우승, 그것도 무패로, 뮌헨보다 승점을 압도적으로 앞서면서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우승을 결정지어 버렸다. 스포츠 뉴스를 보다보면 어떤팀이 몇 년 만에 첫 우승을, 혹은 우승을 했다는 뉴스가 왕왕나오긴 했다. 그런 뉴스를 접하면 자연스럽게 레버쿠젠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리라 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디어 어제, 그것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미 열정적으로 타오르던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라,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경기가 우승을 결정짓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먹었고, 샤워를 한 후 눕기전 그것이 생각나 검색을 하면서 알았다. 오늘은 각종 독일 뉴스에서 나오는 영상들을 보며, 어제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았다. 나로서는 거진 20년의 기다림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30년 이상의 기다림이었으리라. 

오랜기다림 속에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아주 기쁜일이다. 오늘은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나 역시 내가 고대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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