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 2
서울 도심 한복판의 어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십 년 동안 연락이 없던 누군가를 다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서울 인구가 천만 명쯤 되니까 천만 분의 일? 나와 그녀의 눈이 서로 마주쳤을 때 우리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알아봤고 어어…라고 감탄사인지 탄식일지 모를 소리를 뱉었다. 나는 그녀에게 지상에 머무르라고 했고, 내가 지하에서 다시 반대방향으로 다다랐을 때 그제야 우린 정상적인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
되게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럼. 너는 어땠어?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급히 갈 데가 있어서 그런데 번호는 똑같니?
아니 바꿨지. 벌써 십 년이나 지났는데.
그래? 그럼 다시 알려줘.
그렇게 인사를 한 후 우린 헤어졌다. 사실 그녀의 번호는 예전에 지웠다. 지속되지 못할 관계는 남겨도 쓸모없다고 생각해 왔던 나였기에 아마도 8년 전쯤? 그때의 일이 조금은 후회가 들었지만 다시 만났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그녀와 문자로 대화를 조금 더 나눴고, 곧 만날 약속도 잡았다.
정류장에서 내린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가로등 아래에 벌레들이 불빛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불빛에 정신이 팔렸는지 몇 분을 그 앞에 서있었는데,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나방이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영상이 생각났다. 애벌레가 어떻게 성충이 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나방과 같은 곤충들은 번데기 상태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몸을 소화액으로 완전히 녹인 후 수프가 되었다가 다시 몸의 각 부분이 조립되는 과정을 거쳐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붕괴됐다가 재조립되는 곤충의 생애주기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 가지 제품으로 세 가지 형태를 조립할 수 있는 유아용 조립블록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방 한 마리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것을 피해 급히 집 쪽으로 뛰었다.
그녀를 간단히 말할 것 같으면, 대학교 때 잠깐 알던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교양수업에서 만났고, 첫날 옆자리에 앉았다. 과제를 같이 하며 무임승차를 했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같이 나누면서 친해졌고, 알고 보니 같은 인디밴드를 좋아했다. 중간고사 즈음엔 같이 공연장에도 갔었고, 과는 달랐지만 자주 보고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그녀는 해외로 교환학생을 떠났고, 나도 군대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왕래가 없어졌다. 국내에 있는 사람과도 연락이 어려웠는데, 그 시절 해외는 오죽했을까.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땐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같은 과 사람에게 물어봐도 행적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녀를 좋아했었다. 튀지 않는 단정한 옷차림이었지만, 늘 양말이나 모자 같은 것으로 포인트를 주었고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밥도 천천히 먹었고, 걸음걸이도 느긋했다. 나는 그 호흡에 맞춰서 걷거나 무엇을 먹었고,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넌 그때랑 바뀐 게 없는 거 같아. 내가 말했다. 그래? 칭찬이라고 생각해도 되나? 음. 좋을 대로. 바뀐 게 없으니 알아본 거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녀가 답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주로 이야기를 말한 건 그녀 쪽이었고, 나는 들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시점으로부터 약 십 년 정도의 시간공백에서 그녀는 몇 가지 이야기를 꺼내서 들려줬다. 예를 들면 그녀가 교환학생 시절 겪은 일이라던가, 편입으로 다른 학교에 들어갔다가 졸업 후 고시를 준비했던 일이라던가. 그리고 크지 않은 회사에 들어갔다가 머지않아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일 년 전에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과 헤어졌다는 이야기까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도통 핵심을 짚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표면적임에 동시에 그것을 그녀가 너무 빠르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저녁식사 장소였던 삼겹살 집에서의 그녀도 그랬다. 그녀는 고기가 다 익기도 전에 고기를 쌈을 싸거나 기름장에 찍어 먹었다. 더 이질적으로 느꼈던 것은 이야기의 주인공의 그녀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십 년은 당연히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공백 사이에 그녀에게 무슨 큰일이 있었나? 저번 주에 에스컬레이터에 마주치고 연락처를 교환하기 전까지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주말의 저녁식사로 이어진 만남은 그렇게 끝났고, 그녀는 멀지 않은 날에 또 보자고 했다. 그리고 이미 아홉 시가 다 됐을 시간인데도 다른 약속이 있다며 나와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갔다.
그날 나는 집에 오면서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에 잠시 들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지만, 그 안에서도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맞닥뜨렸기 때문이었을까? 아이스크림을 사서 그네에 앉아 몸을 흔들며 생각했다. 그네 옆의 작은 나무에서 번데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손으로 집었다. 말라비틀어진 번데기에 내용물은 이미 없었다. 어딘가로 벌써 날아갔거나, 내가 며칠 전에 본 가로등 아래의 그 나방이 남긴 것이었을 수도 있다. 손가락의 힘을 조금만 주었음에도 그것은 부서져버렸고, 손에는 기분 나쁜 가루가 묻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손을 씻었다.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운 나는 핸드폰을 켜고 다시 곤충에 대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간 영상들에서는 누군가가 변태의 과정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것 들도 있었다. 현실에선 며칠이나 걸릴 일이었지만, 영상에서 그 과정은 몇 분 남짓한 시간 안에 끝났다. 벌레는 실을 뱉어 자신의 몸을 감싸고 고치가 생성된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눈으로 보기 힘들다. 조금씩 고치의 껍질이 열리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나방이 나오고 날개를 말린다. 고치를 만들기 전의 애벌레와 고치에서 나온 나방을 같은 개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어느 날 방문을 잠갔다가 일주일 후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고, 팔다리는 하나씩 없어져있고, 얼굴도 변해버렸다면 내 가족은 그런 나를 이전의 나로 인식할 수 있을까? 한편, 다른 영상에서의 누군가는 고치를 반으로 자른다. 절반만 나방이 되고 나머지 절반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방은 죽는다.
그녀를 두 번째로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저번 만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단정한 정장차림과 올백으로 넘긴 머리의 그녀는 깔끔해 보였지만 그것은 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내가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질 수 있었던 그녀의 모습(이었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딘가에서 찍어낸 공산품 같은, 신입사원 면접날 비슷한 양복을 입고 온 사람들 중 한 명을 내 앞에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듣는 척하다가 이야기를 끊었다. 대신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팔고 있는 생활용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궁금해했던 것이 아니었고,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충분히 생각해 보라며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마치 온라인 게임의 어떤 등급처럼 보이는 직함과 한 사람의 이름이 써져 있었다. 얘 이름이 이게 맞았었나? 나는 남은 커피를 빨대로 후루룩 마시고 자리를 나왔다. 그녀의 번호를 다시 지웠고, 그 지하철 역에서는 다시 내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