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mKart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ipza Aug 21. 2016

<최악의 하루>

개인의 우주 속, 다른 세계들의 중첩에 관해 

*글을 읽는 사람에 따라 스포일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최악의 하루>는 오후 2시부터 저녁때까지, 주인공 은희와 일본에서 날아온 소설가 료헤이의 하루를 다룬다. 배경은 철저하게 서촌과 남산을 떠나지 않고, 주인공들은 한없이 걷고, 중간중간 커피와 차로 휴식(아닌 휴식)을 보낸다. 카메라는 두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다 잠시 멈추어서 배경에 머무른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주인공들의 지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고, 나 역시 하루 종일 걸은 것처럼 어느 순간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영화가 시종일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보편적인 우리들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과 있을 때의 나, 저 사람과 있을 때의 나. 극 중에서 연기자 지망생―혹은 단역배우―이었던 은희. 은희는 료헤이―그 역시 직업이 소설가이다―와의 첫 만남에서 료헤이는 자신을 ‘거짓말’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그녀 역시 ‘거짓’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바람부니깐 더 예뻐보여.



영화 속의 대사에서처럼, 그녀는 각각의 상대들에게 ‘나는 그들에게 진실로 대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연기실력이 좋지 못해 아직 지망생에 머무르고 있는 은희가 자신의 연애 상대인(혹은 였던)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기처럼 보인다. 그래서 상반된 그녀의 두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그 두 가지가 모두 ‘거짓’ 말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습도 그녀와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집에서의 나의 모습,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이 다르고, 어떠한 ‘개인’과 있느냐에 따라서도 모습이 다 다르다. 그렇다면 남들에게 대하는 나의 모습이 다 거짓일까?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바라는 모습에 따라 상대방에 나를 맞추고 있는 것이지, 그 모습은 거짓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편 료헤이는 자신이 쓴 단편소설집과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좇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각각 다른 자신의 모습들 속에서 자기모순을 발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희는 그녀의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순간 멘붕에 빠져버리고 만다. 모순은 아무리 변명을 하려고 해도 풀어질 수 없다. 그래서 은희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극의 갈등은 그렇게 최고조에 올랐다가 그녀처럼 주저앉아 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느낀 것 - 남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그녀의 갈등도 같이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이렇게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이상의 세계가 중첩되어 버리는 순간, 나 역시 그녀처럼 모든 세계에서 탈출해 나만의 우주 속에 나 자신을 던져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 만나는 기계에요?



그와 동시에, 료헤이 역시 실패한 출판기념회를 뒤로한 채 잡지사 직원과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당신 소설의 모습들에서 나를 발견했어요...’라고 말하는 부분, 아마도 그 직원은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역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한 컷 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료헤이는 어둠이 깔리는 남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후부터 반나절을 커피로 보낸 그들은, 피곤한 하루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카페인의 힘으로 각성이 된 모습이다. 곰방와, 로 저녁 인사를 나누고 어색한 영어로 대화를 해나가며 어둑한 남산 길을 내려가면서 그들의 하루치 연극을 끝낸다.     




영화의 제목은 ‘최악의 하루’지만, 정말로 최악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곤란하게 하는 일들이 한순간에 다가올 때, 우리는 “아, 최악이야.”라는 말을 붙이곤 한다. 제목은 딱 이 정도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함께하는 GV가 진행됐었는데, 감독은 끝 장면을 마치 ‘연극 무대’처럼 꾸몄다고 했다. 삶이 곧 무대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언젠가부터인가 우리의 삶이 곧 무대고 소설처럼 변해가고 무대와 소설 역시 우리의 삶을 닮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말.

영화 시작 전.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들어가는데 특별 포스터도 받을 수 있었다. 개이득인 부분이다. 영화는 잔잔하면서 동시에 역동적이기도 하다. 감독의 다음 작품을 위해 흥행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