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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an 31. 2017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

자, 초록색 불꽃입니다. 희망의 색이지요.

*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약간은 생소할 수 있는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애니메이션이다. 정교한 그림체는 아니지만 꼭 만화의 그림체가 예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내용이 좋고 작가의 특성만 있다면 그것이 훌륭한 만화라고 생각한다. 심슨, 퓨처라마, 쥐, 기생수, 사우스 파크 그리고 도라에몽 같은.) 거부감 없이 영화에 몰두할 수 있었다. 



#1 비틀기


조작된 세계는 ‘역사 비틀기’로 시작된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전날, 나폴레옹 3세가 '귀스타브'라는 한 과학자의 연구실을 찾았다가 그가 아직 불사의 약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낸다. 그가 만든 것은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두 마리의 도마뱀뿐. 총성과 함께 동물은 도망가고 그날 밤의 난동으로 과학자와 나폴레옹 3세는 죽는다. 결국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프랑스는 계속해서 나폴레옹가의 지배를 받는다.(실제 역사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프로이센이 승리하면서 나폴레옹 왕가가 무너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역사, 과학사가 비틀어진다. 그 이후 세계 곳곳의 석학들이 납치되고 과학이 퇴보한다.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이 발명되지 못한다. 그리고 석유와 원자력을 개발하지 못해 석탄을 과도하게 씀으로써 에너지 위기와 환경문제가 도래한다. 

SF의 기본적인 틀은 이것이다. 현재와 다른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가 택한 것은 석탄으로 돌아가는 ‘스팀 펑크’의 세계다. 이 기본적인 틀에 현재에 우리의 문제인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담았다. 전형적인 ‘비유하기’ 작법이다. 



#2 두 개의 에펠탑


이후 70년, 1931년의 파리에는 두 개의 에펠탑이 세워지고, 석탄을 동력으로 쓰는 케이블카가 베를린까지 이어진다. 앞서 말했던 과학자의 후손들이 계속에서 불사의 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마침내 약이 만들어지지만, 경찰이 들이닥쳐 그들은 또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증손녀 ‘아브릴’은 고양이 ‘다윗’과 함께 겨우겨우 그곳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케이블카에서 부모가 정체불명의 먹구름에 번개를 맞아 쓰러지고, 그녀 혼자 살아남아 파리에서 홀로 자라게 된다. ‘아브릴’의 캐릭터는 여성이지만 프랑스의 68 혁명 세대의 여성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 스스로 해내겠다는 행동들이 아직까지 남자 주인공에게 의지하는 국내 지상파 드라마의 여성상보다 훨씬 성숙하다.



#3 용이 사는 세상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과 대비되는 ‘판타지’ 물에 단골손님으로 나오는 용이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에서는 과학자들을 납치해 전기를 발명하게 하고 진보된 기술을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최초에 도망쳤던 두 마리의 동물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석학들이 그들의 시중을 들고 전기발전소로 돌아가는 유토피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전기가 발명되는 족족 그 신호를 잡아 과학자를 납치하고 장치를 파괴해버린다.(태양전지에 막대한 세금을 매기는 거대전력회사의 횡포가 떠오른다.) 이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전기의 발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보통 과학기술은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는 발명된다는 인과성을 가지고 있다. 에디슨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전구를 발명하고, 아인슈타인이 세계대전에서 죽었더라도 누군가는 상대성이론을 발견했을 거라는 말이다. ‘스팀 펑크’를 그리고 있는 이 조작된 세계에서는 세상이 계속 석탄밖에 쓰지 못했다는 이유를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4 자, 초록색 불꽃입니다. 희망의 색이지요.


SF텍스트는 꼭 필요한 문학 장르이자 미디어 장르다. 기술진보 인해 사회상이 바뀌면서 미래에 생길 수 있는 일들을 미리 예측하고 그것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것이 SF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역시 그랬다. 우리도 태양, 풍력, 조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개발, 이용하지 않고 지금처럼 석탄, 석유 그리고 원자력만 고집한다면? 머지않아 자원을 둘러싼 다툼이 일어날 것이고 환경문제는 더욱 심해져 지구는 살 수 없을 곳이 될 것이다. 또, 과학기술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핵’과 관련된 기술이 그렇다. 핵으로는 수십만 가구의 빛을 밝혀줄 발전소도 지을 수 있지만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무기도 만들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는 밝은 미래를 써나 갔다. 생물의 씨앗을 담고 있는 로켓이 날아가 달과 화성을 지구처럼 녹색지대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달로 갈 기술을 발명하고 달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그곳에는 흙이 있었다. 




+Plus

-고양이는 9개의 목숨을 버리고 영원한 한 개의 영생을 얻었다.

-서양에서 용은 흔히 악으로 표현된다. <아브릴과 조작된 세계>의 용도 서사에서 악역을 맡음과 동시에 현재 인류의 추악한 모습을 담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이 즐겁다. 특히 ‘아브릴’ 역은 마리옹 꼬띠아르가 목소리를 연기했다. 그녀의 불어 연기를 <러브 미 이프 유 캔>이후 처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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