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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Feb 02. 2017

<컨택트, Arrival 2016> 리뷰 - 上

배경편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본 분이 읽는다면 더 좋습니다.


멀쩡한 Arrival이라는 제목을 국내배급사는 '컨택트'로 바꿔버렸다. 과거의 SF영화의 이름을 빌려 마케팅을 하려했을까.


1. 익숙하지만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


<Arrival>은 한 여자가 딸의 삶과 죽음까지의 기간을 훑으며 시작된다. 딸의 죽음을 오열하고 난 뒤 암전. 그리고 화면이 바뀌며 12대의 UFO가 전 세계 상공에 도착하는 것으로부터 본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부터 외계인을 다루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영화가 외계인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인식하고 대립각을 세웠다. 그것을 영웅담으로 다루던지(<인디펜던스 데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던지(<우주전쟁>) 혹은 유머로 승화시키던지(<화성침공>)말이다. 그러나 <Arrival>에서는 외계인을 대하는 태도가 각각 다르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교감하려는 태도는 <E.T.>와 <미지와의 조우>와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Arrival>의 차별점은 그들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나오게 된다.


 2. GV


<Arrival>의 정식 개봉일은 2월 2일이지만, 나는 이틀 앞선 1월 31일에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쓰고 있다. 특히 영화가 끝난 뒤 전국의 영화관에서는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GV를 실시간 생중계로 들을 수 있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헵타 포드와 체경을 사이에 두고 소통했던 것처럼 나는 압구정 ART3관에서 스크린을 두고 그와 소통할 수 있었다. 영화가 두 시간 가량, 그의 GV도 거의 영화의 러닝타임만큼 진행이 되었다. 나는 열심히 그의 말을 메모했다. 나는 영화의 원작 소설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The Story of Your Life)>를 읽은 탓에 나 또한 이 영화의 리뷰만큼은 신경써서 작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어리 4쪽을 할애하면서 그의 의견과 나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쓰는 리뷰는 나의 생각뿐만 아니라 이동진 평론가에게서 빌린,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던 측면의 이야기 또한 들어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가장 두려운것이다.


3. 슬로우, 슬로우


영화의 진행이 느린 편이다. 개인의 기호에 따라 이 영화는 ‘노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는 정말로 현실에서 우리가 ‘외계인’을 맞닥뜨렸을 때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최대한 표현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느린 박사로 영화를 전개하지 않았을까. 헵타포드라는 존재를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스크린을 통해 배우를 통해 천천히 조금씩 설득시킨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마주쳤을 때의 느낌.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숨을 쉬기조차 곤란한 상황. 헵타포드를 이해하기 위해 주인공이 갖는 이상한 경험과 신호들. 


영화는 꽤 긴 시간(혹은 카메라 무브)을 할애하여 헵타포드의 우주선에 들어가는 장면과 그들의 신체적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긴장감을 배로 더해주는 음악까지.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 클래식으로 우주의 광활함을 묘사하고 <인터스텔라>의 OST가 우주의 신비로움을 연주했다면 <Arrival>의 OST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표현한다. 여담으로, 처음 헵타포드의 웅장한 우주선이 등장했을 때에는 흡사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모노리스 같았다.



4. 루이스 뱅크스


여주인공 루이스 뱅크스는 언어학자다. 이것은 전체 영화 서사에서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장치다. 음성언어로만 대화를 시도했던 다른 이와 달리 그녀는 헵타포드의 문자언어를 알아내고 대화를 시도한다. 그들의 문자가 진정한 표의문자(문자 자체가 의미를 갖는)이자 비선형적(예를 들어 우리의 문장은 처음과 끝이 있다. 문장의 뜻을 알려면 한글의 경우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차례대로 읽어야 한다. 하지만 헵타포드의 문자는 원형으로 생겼고, 시제는 오로지 현재다.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는 비선형非線型문자인 것이다.) 문자 체계인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그녀 역시 헵타포드의 문자를 습득하면서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Arrival>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영화에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그녀가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헵타포드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고 그 때문에 ‘변화’ 하기 때문이다. 헵타포드에게 시간은 우리처럼 한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현재-미래는 있지만 그것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미래를 기억한다.’라고 말하지 않지만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한 루이스는 미래의 자신과 소통한다. 여기서 우리는 혼란을 맞는다.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한 '루이스 뱅크스'


5. 패러독스


우리가 혼란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열역학 제 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 때문이다. 시간의 화살은 언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확률’이 높은 쪽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흔히 타임슬립을 다룬 창작물에서는 엔트로피 법칙을 위배하는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미래의 박사가 과거의 박사에게 이미 만들어진 타임머신의 설계도를 주어 타임머신을 완성시키던지,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온 고장 난 기계의 팔로 그 미래의 로봇을 만든다던지. 우리는 여기에서 인과성에 의해 이 서사가'이론적으로는' 잘못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Arrival>의 헵타포드와 루이스는 이 주장에 정면으로 대치한다. 그들은 항상 미래, 과거와 교신하며 정보를 주고받고 서로를 보완시켜나간다. 여타 SF 창작물에서는 다른 시간대에서 온 ‘내’가 골칫덩어리지만 이 영화에서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와 협력관계다. 나도 처음 소설을 접할 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고정관념을 부수는 것. 이것이 <Arrival>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다. 영화 말미에서 한 헵타포드가 자신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언어를 지구에 전해주러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배경 편(상편) 끝. 의미 편(중편)에 계속


중편 : https://brunch.co.kr/@ods115/48

하편 : https://brunch.co.kr/@ods1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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