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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Feb 02. 2017

<컨텍트 , Arrival 2016> 리뷰 - 下

해석 편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본 분이 읽는다면 더 좋습니다.


의미편(중편)에서 넘어옵니다.


중편(의미편) : https://brunch.co.kr/@ods115/48

상편(배경편) : https://brunch.co.kr/@ods115/47

HUMAN.. I'm HUMAN. Who are you?


10. 칠발이와 함께하는 언어학 개론


원작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The Story of Your Life)>를 읽으면서 감탄했던 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그것을 외계인 대상으로 했다는 점, 그리고 만약 외계인이 진짜로 영화에서처럼 방문했을 때 인간이 저런 방식으로 소통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가 처음 [HUMAN]이라는 글자로 ‘종’을 표현하고 같은 종이라도 [LOUISE]라는 자신이 이름을 알려주는 것. ‘나’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과도 이어진다. 초등 어휘부터 익혀가면서 점차 대화의 수준을 높여가는 것 역시 원작을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소설에서는 이 부분이 더 전문적으로 묘사되는데, 언어학을 모르는 나로서는 ‘표음문자’나 ‘표의문자’ 혹은 ‘격 표지’ ‘굴절어’ 같은 의미를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소설을 두세 번 읽고서야 이해가 됐었다. 


영화에서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표현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루어낸 것은 소설에서 ‘묘사’만 했던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미지화시켰다는 것. 그리고 서사의 구조도 헵타포드의 언어처럼 영화의 시작이 끝과 같고 ‘순환’시켰다는 점에서 훌륭한 “예술영화”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Arrival>은 영화의 서사 자체가 그 속의 주제의식을 닮은 ‘구조’ 자체가 예술인 영화다. 


소설과 달랐던 점 중에 인상적이었던 건 두 헵타포드에게 이안이 지어준 이름이다. 원작 소설은 ‘라즈베리’와 ‘플레퍼’였다면 영화에서는 ‘에봇’과 ‘코스텔로’로 개명된다. 에봇과 코스텔로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활동했던 스텐팅 코미디언들인데,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웃겼다고 한다. 서로의 언어를 몰라 오해가 생기는 인간과 헵타포드의 상황을 재치 있게 비유한 영화만의 매력 포인트다. 



11. 수행적 언어


헵타포드는 시간을 순차적, 인과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에는 현재형 밖에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을 두고 인과율에 의해 과거로 다시 돌아가거나 미래와 접속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언어 역시 시제를 가진 채 작성되고 발화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미래를 알게 된다면?’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나 드라마 <나인>과 같은 타임슬립 창작물들은 현재 나의 행동을 바꾸어 미래를 ‘조작’하거나 ‘더 나은 곳’으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헵타포드는 다르다. 그들은 미래를 이미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문자언어는 ‘수행적’인 특성을 지닌다. 


결혼식장에서 주례자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 이 남녀가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의 말은 미래에 부부가 ‘될’ 한 쌍의 커플의 행동을 ‘수행’하는 능력을 할 뿐이다. 햅타포드의 언어도 그렇다. 우리가 시제를 생각하며 골똘히 문장을 써 내려가거나 햅타포드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것을 ‘한방’에 다리로 마치 장풍을 쏘는 것처럼 써낸다. 이 행위는 현재 시점에서 이미 미래의 일을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발화다.(문장의 각 성분이 한 번에 완성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몇 번의 세션 후 루이스는 햅타포드의 언어를 전자기기를 이용해 사용한다.


12. <Arrival>의 숫자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뿐만이 아니다. 물리학자인 이안은 헵타포드를 이해하기 위해 우주의 언어인 ‘수학’을 사용한다. 영화가 갈등으로 치솟을 때 그들이 남긴 메시지가 12분의 1 이란 것을 알아낸 것도 그였다. 영화에서 12라는 숫자는 곳곳에 나온다. 우선 지구에 도착한 우주선의 개수가 12이며(원작 소설에선 112대), 루이스의 딸이 죽은 나이도 12이다. 이 밖에도 12라는 숫자는 완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이 <Arrival>이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사고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을 때 ‘12달’이나 ‘12시간’과의 연계성도 생각해봄직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어의 시제가 12가지라는 점도.


또 다른 숫자는 18이다. 18은 reset, 순환을 뜻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헵타포드의 우주선에 들어가는 시간 간격이 18시간이며, 외계인이 지구를 떠나고 나고 18개월 후 지구에서는 화합의 장이 열린다. 마지막은 20. 웨버 대령이 루이스를 헵타포드가 있는 캠프로 데려가려고 왔을 때 루이스는 ‘20분만 시간을 줘요.’라고 말하지만 그는 ‘10분’밖에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루이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을 때 이안은 ‘20초’를 벌어주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루이스가 누구를 택했는가? 그것은 작은 시간이더라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지켜주는 사람이었다. 



13. 마무리


내가 처음 원작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본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내용이 너무나 좋았고 참신해서 이 중편소설만 수십 번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영화화가 된다는 소식에 또 한 번 기대가 됐다. 몇 년의 기다림 끝에 <Arrival>을 볼 수 있었고, 오랜만의 예술영화라 머리가 지끈해지기도 했다. 영화에 이어진 GV시간 역시 알찼고, 이동진 평론가 역시 할 말이 매우 많았던 영화라고 끝맺음을 지었다. 아쉬웠던 것은 내가 원작 소설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영화의 반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 역시 주인공과 딸의 장면을 마치 플래시 백처럼 보여준 뒤 반전을 노렸던 것이라고 했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들의 소감을 빨리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영화는 과거의 나를 들추게 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몇 년 전 나는 학교 신문에 자그마한 사설을 쓴 적이 있었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거기에서 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글을 썼었다. 왜냐하면 ‘과거를 잊었다.’라는 말의 대우는 ‘미래를 기억한다.’이고, 이 ‘미래를 기억한다.’라는 말이 틀렸기 때문에 ‘과거를 잊었다.’라는 것도 틀린 것이라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Arrival>에서 강조한 것이 ‘미래를 기억한다.’라는 것 아니었던가.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GV까지 완료된 시간은 열한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추운 압구정 거리를 지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다이어리에 적었던 것을 정리하며 서사적 아름다움을 보여준 <Arrival>의 리뷰 역시 ‘서사적 아름다움’을 지닌 채 써 내려가고 싶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리뷰가 잘 써졌는지는 읽는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나의 이 보잘것 없는 리뷰가 <Arrival>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은 헵타포드처럼 이야기하며 리뷰를 끝낸다. 



나는 원작 소설을 읽는다. 영화의 재미가 반감된다. 원작 소설을 읽어 영화의 반전이 주는 재미를 다른 이보다 덜 느낀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영화가 이미 어떻게 시작되고 끝날 지를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본다. 



◈ 나머지 작은 조각들


*영화판에서 루이스의 딸의 이름이 나온다. 한나(Hannah). 앞으로 읽나 뒤로 읽나 똑같은 이름은 헵타포드의 문자,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담은 이름이다. 신비함을 주는 이름이지만, 이동진 평론가는 그 신비함이 우X우 때문에 깨졌다고 말했다. 일동 웃음.


*세션에 입장할 때 항상 같이 들어갔던 새는 카나리아다. ‘탄광의 카나리아’라는 말은 광산에 광부들이 들어갔을 때 산소의 감지를 미묘하게 더 잘 알아내는 카나리아를 같이 들여보내 위험을 미리 감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헵타포드를 경계하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이자 현실성 있는 장면이었다.


*극 중에서 매파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헵타포드가 위험하다는 근거를 ‘역사’를 들어 설명한다. 하지만 그 역사‘His’tory는 인간Human의 것이다. 인간의 좁은 시야를 보여주는 장면.


*원작 소설에는 ‘페르미의 최소 시간 정리’가 아주 중요한 소재지만 영화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이들에겐 소설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빛이 공기와 물의 경계를 지나가면 굴절률이 바뀌어 진행방향이 바뀌는데 이때 빛은 항상 최단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선택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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