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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Feb 02. 2017

<컨텍트, Arrival 2016> 리뷰 - 中

의미편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 읽으면 더 좋습니다. 


배경 편(상편)에서 이어집니다. 

상편 : https://brunch.co.kr/@ods115/47


6. 이해, 소통과 화합


영화가 외적인 부분, 특히 사회와 연결시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표면적 주제는 이해와 화합에 대한 이야기다. 헵타포드와 교신을 하는 도중, 러시아와 중국 같은 ‘매파’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주인공이 소속된 미국 캠프 내부에서도 헵타포드를 위험한 존재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언어가 갖는 중의적인 표현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서로를 믿지 못한다. 냉전 이후 국제정세가 가장 혼란스러울 것이라도 예상되는 지금, <Arrival>은 ‘화합의 중요성’을 내포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비유는 루이스의 대사에서 나온다. 주머니에 새끼를 기르며 통통 뛰어다니는 동물을 보고 영국 선원이 원주민에게 ‘저게 뭐죠?’라고 물었을 때 ‘캥거루’라고 답했는데 실은 그것이 ‘나도 몰라.’라는 뜻이었다는 일화. 물론 이 일화는 사람들이 지어낸 거짓이지만 주인공 중 한 명인 웨버 대령은 그녀의 말에 ‘원주민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죠?’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죽음을 당할까 시종일관 불안에 떨고 있는 원주민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측은 편견과 자신이 피해자라는 의식에 사로잡혀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대화하려고 하는 ‘헵타포드’의 입장에서 생각한 루이스는 결국 그들과 대화에 성공하게 되고 그들의 언어 역시 습득하여 사고방식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헵타포드의 7지중 하나. 그것 역시 일곱갈래로 갈라진다. LUCKEY 7!


7. 헵타포드


지구인들은 외계인에게 헵타포드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헵타는 7을 뜻하고 포드는 발을 뜻한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칠발이’정도가 되겠다. 연체동물같이 외계인의 외형을 묘사한 것은 원작 소설의 탁월함이 있었다. 헵타포드의 문자가 어느 쪽으로 봐도 상관없는 ‘비선형적’ 문자의 특성을 가지는데, 헵타포드의 모습 역시 어느 쪽에서 봐도 대칭을 이루는 ‘방사산으로 대칭된’ 구조이다. 이를 통해 원작과 영화 모두 그들의 외형, 문자의 통일성을 통해 ‘헵타포드의 의식’을 설득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다른 창작물의 외계인은 이족보행을 하고 눈코 입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는 명백히 ‘인간’의 관점에서 생각한 ‘인간적인’ 외계인의 모습인 것이다. 외계인이 있다면 이족보행을 하고 두 눈과 한 개의 입을 가질 확률보다 우리가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모습일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더 크지 않겠는가? 강조하지만, 원작 소설과 영화 두 쪽 모두 제대로 음미하려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인공 3인방. 좌측부터 웨버대령, 루이스(언어학자), 이안(이론물리학자)


8. 중의적 표현


헵타포드는 인간의 물음 “너희들은 여기에 왜 왔니?”에 “Use weapon”이라고 답한다. 이해 캠프 안에 있던 매파의 사람들은 헵타포드가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온 것이 확실하다며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 문장이 중의적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헵타포드의 문자언어에 weapon과 대치되는 문자가 없을 런지도 모르고, 반대로 그들에게 ‘무엇’이 영어로는 weapon이라고 밖에 대체할 문자가 없다던가 하는 의미로 말이다.


나 역시 외국어를 배울 때 이런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 한국어에 없는 표현을 배우곤 할 때 적절한 한국식 번역을 떠올릴 수 없어 발생하는 당혹감. 해당 언어의 사용자만이 느낌을 알고있을 단어들. 월러드 콰인은 이를 ‘번역 불확정성’의 원리로 표현한다. 동일한 헵타포드의 문자언어라도 영화상에서 중국은 “give weapon”이라고 해석한다. 


한편 원작 소설에서는 문장의 해석 차이에서 오는 중의성을 알려주는 재미있는 문구가 있다. 

“The rabbit is ready to eat.” 

eat의 목적어를 rabbit으로 본다면 저녁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말이 되고 eat의 주어를 rabbit으로 본다면 애완용 토끼 사료를 뜯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완벽히 같은 문장도 해석하는 사람이 어디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완벽히 달라진다. 



9. 시작과 끝, 삶과 죽음


Arrival의 사전적 의미는 ‘도착’이다. 처음 우주선이 지구에 ‘도착’하고 난 뒤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있듯, 우주선은 종단에는 지구를 떠나간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루이스는 딸을 임신하게 되는데, 이는 딸이라는 존재가 그녀에게 ‘도착’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도착을 삶에 비유했을 때 그 반대편에 있는 말은 죽음이다. 영화에서 몇몇 인물들이 죽음에 의한 상실을 겪는다. 딸이 희귀병에 걸려 죽는 루이스, 아내를 잃은 중국 인민군 사령관.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에 입각한다면 죽음은 상실감을 가져오고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다. 죽은 자와 남겨진 자 모두가 고통받는 제로섬 게임인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그녀는 그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인다. 상실에 대한 대처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딸은 비록 죽지만, 그렇다고 딸을 낳지 않을 것인가? 딸과 보낼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을 다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제로로 향해가는 것보다 그녀는 기쁨과 슬픔을 둘 다 느끼는 쪽을 택한다. 인간이 외계 생물체의 도착에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이것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 하지만 이것은 결론적인 물음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같은 질문을 하자면 이것은 ‘인간은 왜 사는가? 우리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실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의미 편(중편) 끝, 마지막 해석 편(하편)으로 이어집니다.

상편 : https://brunch.co.kr/@ods115/47

하편 : https://brunch.co.kr/@ods1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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