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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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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에서 우리는 오목도 둘 수 있다.

며칠 동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대국이 있는 날이면 그 날의 인터넷과 뉴스는 온통 바둑이야기뿐이었다. 이세돌이가 흰 돌을 어디에 뒀냐 느니, 알파고의 검은 돌이 인간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신의 한 수라니. 나는 바둑을 쥐뿔도 알지 못해서(오목은 좀 하는 줄 알았는데, 문학기행에서 대홍이 밖에 이기질 못했다.) 그 둘의 대국을 보면 누가 이기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마치 흰 점과 검은 점을 서로 하나씩 찍어가며 2인 합동 예술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바둑은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니, 각자의 색깔로 누가 더 많은 집을 지을까에 초점을 맞추어 봤다. 대국大國 속에는 자그마한 한 칸짜리 단칸방도 있었고 32평 주택도 있었다. 어느 순간은 촘촘하게 생긴 회색빛 아파트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깐 음, 어쩌면... 재작년에 유행했던 회사 드라마 ‘미생’에서 나온 대사 ‘인생은 바둑판과 같다.’라는 표현이 와 닿았다. 

나는 원래 옥수동의 달동네에서 살았다. 70년대에서 튀어나올 것 만 같은 골목길의 동네에서 나는 90년대와 00년대를 보냈다. 그래서 나는 아파트의 삶을 가늠하지 못했다. 겨울에도 집에서 반바지를 입는다고? 이런 말을 하며 잠시 아파트에서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4년 전, 재개발사업이 확정되고 나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는 단조로웠다. 마치 바둑판이 흰 돌과 검은 돌로 밖에 없는 것처럼. 머리가 돌처럼 굳어지는 것 같았다. 22층의 삼차원 입체 바둑판에서 우리 집은 ‘1103호’라는 것으로 명명되고, 유리되었다. 나는 가끔씩, 옥수동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진다. 조선시대, 오가작통제라는 제도에서 다섯 집이 묶어 서로를 보살폈듯이 옥수동에서는 앞집, 뒷집, 대각선 집과 서로 알음알음하며 지냈었다. 같은 바둑판 위에서도 바둑 대신 오목을 둘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늦은 밤, 술을 먹고 휘청거리며 나의 집이 ‘들어있는’ 201동 아파트를 지긋이 올려다본다. 열두 시가 된 시각이라 불은 대부분 꺼져있다. 순간, 나는 203 동부터 201동까지 사선으로 불 켜진 다섯 채의 집을 발견한다. 그것은 흰 돌도 아니며 검은 돌도 아니었다. 그것이 승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빛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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