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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16. 2017

<토니 에드만, Toni Erdmann>



종단에, 나는 완전히 털로 뒤덮이고 너는 홀딱 벗은 채로 서있는구나


그러니깐 처음부터 너와 나의 조화라는 건 없었던 거야


서로를 모방하는 행위만 존재했을 뿐



- 유머와 개그로 '가족영화'로 포장된 영화였다. 겉으로 보면 아버지와 딸이 화해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영화 내내 몇몇 웃긴 대사를 제외하곤 영화가 너무나 슬펐다. 특히 포스터의 장면에서 나는 울컥했다. 휴머니즘으로 표상되는 68세대의 아버지와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80년대생의 딸. 그 둘의 관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영화 전체를 수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저 장면에서, 아버지는 현생인류의 전 모습인 털북숭이 유인원이 되고, 딸은 발가벗은 채 그를 응시하는 신생 인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언어를 할 줄 모른다. 포옹을 한 번 하고 그 자리에 누워서 죽음과 같은 이미지를 내뿜는다. 내가 시종일관 영화에서 보았던 것은 '죽음'에 대한 이미지였다. 첫 장면에서 아버지가 달고 있는 혈압계, 그가 키우던 개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 그의 어머니의 죽음 까지. 루마니아에서 딸과 아버지의 서사를 액자 안을 이루고 있다면 죽음은 그 프레임 바깥을 나타낸다. 즉, 우리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던 시작과 끝엔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 40분인 것을 알려주듯, 액자 안의 서사가 2시간에 이른다. 순간을 즐기던, 목표를 잡고 나아가던 그것은 오롯이 그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으로 끝이 정해져 있더라도 삶의 전체를 코스요리처럼 하나씩 음미해나갈 필요가 있다.


-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잭 니콜슨이 주연으로 리메이크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보고 싶어 지는 건 사실이다.


- Erdmann [에드만]에서  Erd는 독일어로 지구/땅을 뜻하고, Mann은 사람/인간을 뜻한다. 그러니깐 [에드만]은 자체로서 '지구인' 혹은 '토착민'이라는 뜻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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