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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09. 2017

<신 고지라 シン・ゴジラ 2016>

脫核을 하자

앙증맞은 손이 포인트다.



괴수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인 고지라가 이번에는 <신 고지라>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감독은 에반게리온 시리즈로 유명한 안노 히데야키가 맡았다. 그래서 그랬을 까, 영화 중간중간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떠오르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영화 중간에 사용되는 음악 / 군대가 고지라를 때리는 장면의 구성 / 고지라가 등에서 빛을 뿜는 장면 등)



1954년에 개봉한 오리지널 <고지라>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을 고지라라는 큰 괴수에 비유한 작품이었다. 원폭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고 그 참혹함을 보여준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괴수영화’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액션 혹은 오락영화로 이어져왔지만 그 원류에는 인간이 만든 가장 무서운 무기 중 하나인 ‘원자폭탄’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에반게리온>에서 사도와의 첫 전투 신을 그대로 오마쥬했다.


그런 점에서 <신 고지라>의 고지라는 1954년의 그것과 유사하다. 영화가 나오기 몇 년 전, 우리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았다.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오고, 원전은 타격을 입어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바다로, 공기 중으로, 땅속으로 퍼졌다. 체르노빌 사고에 비견되는 21세기 최대의 원전 사고였다. 아직도 원전 주위는 사람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다. 


작중에서 고지라는 생물학자들에 의해 자세히 정보가 밝혀진다. 꽤나 과학적인 논증을 통해, 먹지 않고도 계속 움직이려면 고지라의 몸속에서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설정. 이는 앞서 말한 후쿠시마의 원전을 곧바로 떠오르게 한다. 


미국측 인물로 나온 이시하라 사토미


그리고 고지라는 천천히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며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물을 범람시키고, 닥치는 대로 건물을 부순다. 인명피해가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부분은 없었지만, 작중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라는 대사도 들을 수 있다. 고지라가 재해에 비유가 된다면, 이러한 피해는 최소 수백 명이 죽고 나라 전체가 비상체제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재앙災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적인 재해가 아니었다. 인재人災이고, 핵발전소가 있는 나라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였다. 


<신 고지라>의 2, 3단 변신


과거의 고지라 시리즈와 차이가 있다면, <신 고지라>에서 고지라는 4단 변신을 한다. 조금씩 진화를 거치며 강해진다. 나는 그것이 마치 원전사고의 심각성이 증가하여 결국 멜트다운(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되어 내부열 상승으로 인해 원자로의 노심부가 녹아버리는 일)에 이르는 단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실제 세상과의 차이점을 보았다. 사고가 났을 때,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멜트다운을 부정했지만, 조사 결과 이미 멜트다운이 이루어진 것으로 발표가 났다. 또한, 일본 정부는 ‘심각하지 않다.’, ‘금방 처리할 것이다.’라고 미루고 은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신 고지라>의 고지라는 감출 수가 없는 존재다. 거대한 괴수는 숨으려야 숨을 수가 없다. 누구든지 그 포악함과 파괴성을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재해의 심각성을 시각적으로 알 수 있다면, 좀 더 직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악마도 한 사람 나온다.


영화가 또 한 가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본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관료주의’였다. 영화는 재난영화지만,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영화의 시점이 ‘시민’이 아닌 정부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서술된다. 영화 대사의 대부분은 ‘보고’와 ‘명령’으로 이루어진다. 정부의 사람들은 고지라와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회의를 가지며 대책을 강구한다.



 물론, 일본이라는 나라가 원체 지진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피시설과 매뉴얼이 잘 준비되어있고 재난 자체에 대처하는 자세는 일사불란하고 냉철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관료주의. 하나의 보고를 위해 수십 개의 결제라인을 거치고, 정부의 각료들은 어떤 의견을 들으면 법이나 소재를 따져가기 일쑤였다. 빠른 선택을 해야 할 때 지지부진하고, 그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은 목숨을 잃는다. 일본의 옛날 드라마 <춤추는 대 수사선>에서 말했었던 현장과 회의장 사이의 온도차. 그래도 주인공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고지라를 제압하는 대 성공했다는 것에서 제대로 된 행정시스템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웅 서사가 아니었던 점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이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두 정부 인사가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나라를 잘 재건해보자. 일본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그래 왔으니깐.” 그러면서 다음 컷신에 대피소에 있었던 아이들을 클로즈업한다. 결국 나라는 국민들로 이루어져 있고, 나라의 미래는 다음 세대가 이끌어나갈 것이다. 어렸을 때 쌓았던 경험들을 중심으로 미래의 재해도 예방하고,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잘 대처하길 바란다, 라는 메시지 정도가 아니었을까. 




* 그 외 느낀 점


일본의 핵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낄 수 있었다. 도쿄에 핵을 터뜨리는 것만이 고지라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의견이 나왔을 때,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에 통탄해한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것과는 별개로, 핵을 사용해 민간인 수 천 명이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조금 불편했던 점이 있다면, 일본의 자위대에 대한 정보가 아주 상세하게 나온다. 아직 제국주의의 향수를 버리지 못한 모습이 보여서 그 점을 경계했다. 


고지라의 입 속에 피를 굳게 하는 응집제를 주사하기 위해 뽑은 사람들은 마치 원전사고 때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원전에 들어간 지원자들을 생각나게 했다. 


대부분의 괴수영화들은 괴수가 죽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결말을 맞는데(제압에 성공하고) <신 고지라>에서는 응집제로 고지라가 ‘얼어버리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언젠가는 저 고지라가 다시 깨어나고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재해에도 해당되지만 아직 일본 전역에 남아있는 다른 원전, 또한 후쿠시마에서 가동이 중지된 원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곡성'에서 '외지인'역할로 나온 쿠니무라 준도 나오고,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인 이시하라 사토미도 나와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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