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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Nov 19. 2017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

*영화 내용이 언급되니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신 후에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 (Battle of the sexes, 2017)


여성운동은 줄곧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오래되어 잊히거나 잘 알려지지 않기도 하고, 당시에 반향을 일으켰어도 곧 그것에 반하는 세력들에 의해 사건이 축소되는 것 같기도 하다.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다룬다. 



#8배

빌리 진 킹은 여자 테니스 선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먼저 ‘테니스 선수’이고 ‘여자로 태어났’다. 그녀는 새로 열린 테니스대회의 1등 상금이 남성부가 여성부보다 8배나 많은 것에 분노한다. WTA를 차리고 1달러에 계약을 한다. 1972년의 미국은 지금과는 달랐다. 어쩌면 지금도 변하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생물학적 이유를 들먹이며 ‘남자 테니스 경기가 여자의 것 보다 재밌다’고 주장한다. 



#여와 남

빌리 진 킹은 새로운 여자 테니스 경기 투어에 참가하고, 준우승을 한다. 한편, 도박에 빠진 55세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테니스 선수 ‘바비 릭스’가 제안을 해온다. 자신과 돈을 내기로 테니스 성性대결을 하자는 것. 빌리는 거절 하지만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이를 받아들이고 무참히 깨진다. 테니스코트 내외의 분위기는 급속히 남성우월주의 쪽으로 기운다. 



#쇼

하지만 영화를 보면, 여자와 성대결을 펼치는 바비 릭스(스티븐 카렐이 연기했다. 나는 근 몇 년 간 그의 연기를 보는 것이 즐겁다.)는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왕년의 테니스 선수다. 그는 그저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위해 여자선수와 테니스를 친다. 그에게 남성우월주의는 돈을 받고 쓴 가면과도 같다. 물론, 그 역시 여자선수를 깔보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에 있어서 진지하진 않다. 이 문제에 있어서 진지한 건 테니스 협회의 권력을 지고 있는 자들이다. 



#탑을 쓰러뜨리기 위해

그러나 이 ‘쇼’에 빌리는 참가 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쇼’를 그저 ‘성대결’로만 치부하지만 그녀는 이 ‘쇼’에 걸린 것이 너무나 많다. 게임에서 지면 불명예는 둘째치고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인식의 전환’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승패에 있어 얻거나 잃는 것의 간격이 너무나 큰 대결이다. 



#끝끝내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빌리 진 킹은 바비 릭스를 이겼다. 그 날 관중석에 있던 여러 여성들은 기립해 박수를 쳤다. 파티처럼 떠들썩하게 몸을 흔들었다. 어쩌면 그날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생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힘겹게 또 한 분야에서 평등을 조금씩 얻었기 때문이다. 이후 빌리 진 킹은 여성해방운동과 성 소수자를 위한 운동을 계속해나갔고, 운동선수 최초로 대통령 평화상을 받는다.  



#배구

영화를 본 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나는 여자 프로배구를 좋아한다. 2012년에 여자배구대표팀은 올림픽에서 투혼을 보여주었고 선수들은 울면서 ‘리그 많이 봐주시고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했다.(당시 남자대표팀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나는 그것을 관심으로 환원했고, 경기에서 눈여겨봤던 선수에 팬이 되어 지금까지 그 팀을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후 런던에서 한국으로 비행기가 도착하고 나면, 남녀의 위상은 정 반대가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부는 남자부의 경기가 끝난 뒤에 경기가 이어졌다. 남자부 표를 사면 여자부 경기까지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이번 시즌부터 남자부와 여자부를 따로 운영하고 있지만, 배구협회 언저리에서는 ‘재미없고, 관중 동원력 딸리는’ 여자배구경기를 따로 배정해도 되는지에 대한 찬반이 오갔었다. 현재, 주중 여자배구는 저녁 5시에 시작되며 남자부 경기는 저녁 7시에 시작된다. 이것 또한 불공평하다. 직장인을 생각한다면 여자부도 7시에 시작해야 되지 않은가. 중계가 겹친다는 이유로 여자부를 억지로 남자부 앞 시간대에 배치하면 당연히 관중 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스포츠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 문제는 갈 길이 멀다. 남자부와 여자부의 매력은 다르고 나는 여자부를 더 좋아할 뿐이다. 단순히 남자가 더 힘이 세니 여자부보다 더 재밌어!라고 말하는 건 저 1972년의 남성우월주의를 답습할 뿐이다. ENDE


<빌리 진 킹 : 세기의 대결> 별점 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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