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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03. 2019

기생충 단상들

* 글 내용은 모두 스포일러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영화를 보고 느낀 것과 라이브톡(이동진/봉준호)에서 들은 내용을 조합.


-. 설국열차에서 기차 뒷 칸에서 앞 칸으로 가는 수평적으로 움직이는 계급사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현실의 사회를 SF로 비유했다면, 기생충에서는 현실의 가족을 가져와 수평이 아닌 수직적인 구조에서 서사를 풀어나간다. 



-. 조화로운 소재들; 모스 부호가 극 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는 데, 이것을 컵스카우트와 연결하고 또 그것이 인디언과 연결된 것이 좋았다. 

특히 모스 부호는 비슷한 영태로 영상에서 반복되는데 

1) 기정이 박사장 네 집에서 소리칠 때 번개가 치고 가정부가 벨을 누르는 장면 

2) 밑에 살고 있었던 가정부의 남편이 전등으로 모스 부호를 눌렀던 것 

3) 비가 많이 온 날 기택(송강호)의 집이 침수되는 상황에서 전기가 불안정해 깜빡이는 장면 등으로 변주된다. on/off로 표현되는 것은 빛이 될 수도 있고 소리가 될 수도 있는데, 이런 시각적/청각적 표현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 기정의 죽음에 대해; 상황을 보면 당연히 머리에 돌을 두 번이나 맞은 기우가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결국 죽은 것은 오히려 누르니까 더 아프다고 소리치고 정신을 차리고 있던 기정이었다. 

영화에서는 총 4명이 죽음에 이르는데, 가정부(문광)와 그의 남편(근세) / 기정 / 박 사장이다. 여기에서 기택의 집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1) 대체 : 기택 가족의 구성원이 박사장의 집으로 침투되는 과정은 아들 -> 딸 -> 아버지 -> 어머니의 순서다. 여기에서 세 명은 원래 있던 사람들을 대체한다. 

하지만 여기서 딸(기정)은 아무 누구도 대체하지 않은 새로운 존재다. 물론 그녀가 기택과 충숙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에 관여를 하지만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대체하는 존재는 아니다. 


 2) 죄 :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갔을 때 기택의 가족 네 명과 가정부 가족 두 명이 싸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충숙이 가정부를 죽인다.(정확히는 올라오던 문광을 발로 차 떨어뜨리고 뇌진탕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지만). 그 결과 그녀의 남편인 근세가 앙심을 품고 기정을 공격한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충숙의 손에 죽는다. 그리고 기택은 박사장을 죽인다. 영화에서 죽은 4명의 인물 중 기택의 가족이 아닌 3명은 모두 기택과 충숙의 손에 죽는다. 

파티가 있기 전, 돌을 가져온 기우는 전날에 있었던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모든 시작이 자신이기 때문에) 지하실로 간다. 아마 기우는 가정부 부부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정은 달랐다. 비가 억수로 왔던 날에도 지하실에 있던 사람들을 걱정했고, 파티 당일에도 음식을 가지고 내려가 대화를 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기정의 죽음은 기택 가족에게 가장 큰 슬픔을 줄 수 있는 장치였을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 중 하나가 내가 잘못한 것을 다른 사람(특히 가족)이 받는 것이 아닐까. 

앞선 두 관점에서 보면 기정의 죽음이 서사적으로 있어 가장 슬프고, 남은 가족들에게 죄를 지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 입에서 항문까지; 가장 재미있던 장면은 영화 초반 제시카로 위장한 기정이 ‘독도는 우리 땅’에 맞춰 자신의 이름과 관계를 외우는 장면.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충숙을 뺀 나머지 세 명이 박사장의 집에서부터 자신의 집으로 가는 장면이었다. 

수직적인 두 집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물이 아래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침수된 반지하(기택 가족의 삶터)를 보여준다. 나는 마치 그 여정이 인체로 따졌을 때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지는 길이라고 느껴졌다. 


구불구불한 터널과 길을 가는 보며 꼬불꼬불한 장을 따라가는 기생충들의 모습이 보였다. 박사장의 집을 ‘입’으로, 기택의 집을 ‘항문’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가정부의 행위에서 보이기도 하는데, 정신을 겨우 차린 문광이 비밀의 방에서 변기에 무언가를 뱉는 순간 기택의 집에서 변기는 똥물을 역류한다. 마치 입으로 들어간 것이 항문으로 나오듯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한편 ‘입’은 욕망을 상징한다. 식욕과 성욕 같은 것들. 영화에서 박사장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거의 ‘입’과 연관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로 수업을 한다. 



욕망의 차원에서 보면 박사장 부부가 상류층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상스러운 말로 표현하고, 거실 소파에서는 성욕을 발산한다. 


박사장의 집에서는 화장실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목욕 장면이 두 번 나오지만, 목욕이라는 행위 역시 더러운 것을 씻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기택이 집은 다르다. 곱등이가 나오고 구운 고기 냄새가 진동한다. 화장실은 거의 매번 비친다. 와이파이를 잡을 때, 핸드폰 동영상을 볼 때 담배를 피울 때까지. 그리고 그 반지하 앞에는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이 있다. 



-. 반복적 작업들 : 
 1) 민혁은 기우에게 자신이 박사장의 딸인 다혜와 사랑하는 관계며, 대학교에 들어가면 정식으로 사귈 거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다혜는 기우와도 이러한 관계를 형성한다. 


 2) 다솜(박사장의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경기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케이크를 먹다가 지하에서 올라온 근세를 보고 놀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다솜의 생일 케이크 앞에서 다시 벌어진다. 그것도 더 큰 비극으로


 3) 자잘한 설정들; 기택과 근세 모두 대만 왕 카스텔라 사업을 하다 망한 이력이 있다. 


-. 가족들의 싸움 : 계급 문제를 다루지만, 영화에서는 오히려 하급 계층의 가정들이 싸운다. 박사장의 가족과는 큰 대립이 없었고 오히려 ‘Respect!’ ‘그 좋으신 분들이…’ ‘박 사장님 죄송해요…’라는 표현을 한다. 결국 위의 존재는 건들지 못하고 비슷한 위치에 있는 집단의 싸움을 마주한다. 그것이 위에 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내지는 슬픈 장면.




-. 그들은 정말 기생충이었을까?
 기생과 공생은 숙주에게 해를 입히느냐, 이익을 주느냐에 따라 나뉜다. 최소한 기사와 가정부 역할은 잘한 것으로 비친다. 충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짜파구리를 끓여내는 모습에서 결승전에 나가 경기에 집중하는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기택은 코너링을 하는 순간에도 커피 잔의 수위를 유지한다. 오히려 의심스러운 것은 학력을 위조해서 과외를 하는 기우와 기정이다. 하지만 어쨌든, 네 번의 수능 경험의 기우도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다솜을 단 번에 휘어잡은 기정도 무조건 해를 입히는 존재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 유전? : 빈익빈 부익부의 대물림 현상. 그리고 특성에 대한 유전. 박사장의 부인인 연교는 사람을 잘 믿는, 순수하면서 멍청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녀의 딸인 다혜가 남자 과외 선생과 연달아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거짓말과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기우와 기정. 그리고 역시나 그들의 부모 역시 능청스럽다. 서사를 진행시켜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기택 가족의 전반적인 연기 실력 또한 가족적인 특성이라고 느껴졌다. 



-. 그래서; 감독과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특정한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주변부 서사를 가지고 계급 사회에 대한 묘사를 탁월하게 해낸 작품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짜파구리에 한우 채끝살을 넣어 먹고 싶어 졌고 박소담이 좋아졌다. 

다예 역을 맡은 배우는 예전 백수 시절 봤던 아침드라마 ‘삼생이’에 나왔던 아역임을 알았다. 

봉준호 감독이 이선균의 왼쪽 얼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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