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16 예술의 전당
-. 나는 보통 살아있는 것에서 우울을 느꼈다. 입과 눈꼬리가 내려간 사람의 울상과 슬퍼 보이는 동물의 눈 등. 하지만 뷔페의 그림에서 거의 처음으로 죽은 것과 무생물에서도 우울을 봤다. 죽어있는 생선과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접시 같은 것들.
-. 뷔페의 초창기 (10~20대) 그림은 어두웠다. 전쟁 후의 황폐함 속에 살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곧은 검은 선들. 그의 작품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채도가 낮은 색의 집합. 그리고 날카로운 외곽선 처리까지. 가늘고 길게 표현된 사람들은 말라 보였고, 날카로워 보이는 한편 결핍이 느껴졌다.
-. 천재는 이런 것일까? 올해 초 스페인에서 내가 피카소 미술관에서 느꼈던 비슷한 것을 여기서도 느꼈다. 일반적 회화를 그리는 방법은 이미 청소년기에 완성한 것 같다. 10대 후반부터 자신만의 기법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뷔페의 경우 그의 탁월한 미적 감각(색 선택과 드로잉 기법)을 이용해 인간 내부에 있는 근본적인 우울/무기력/슬픔을 그렸다.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보통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기술적으로 정말 훌륭한 그림이고 여기에는 눈이 즐겁고 예쁜 그림이 포함된다. 둘째는 보는 순간 넋 놓고 보게 되는 화가들의 그림이 있다.
-.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뷔페의 그림은 밝아졌다. 하지만 그 밝음도 한편엔 어두움을 담고 있다.
-.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들어서,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던 나는 전시 초반에 그가 젊은 나이에 죽은 줄 알았지만 1999년에 자살한 그는 노년이었다. 파킨슨 병을 얻어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다른 날과 똑같이 행동하고 작업실로 올라가서 그대로 내려오지 않았다. 평생을 예술에 바친 사람이었으니, 더 이상 그림을 그리는 주체로 행동할 수 없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거다. 세기말의 우울한 분위기도 한 축을 떠받고 있지 않았을까.
-. 오디오 가이드는 그의 부인인 아나벨 뷔페의 입장에서 진행됐다. 목소리는 배우 황보라가 맡았다. 아나벨이 직접 적은 베르나르 그림의 설명 또는 해제를 들으니 더 깊게 그의 그림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림이 걸린 순서도 동선도 잘 짜였다고 생각했다.
-. 그의 말기 작품 주제는 ‘죽음’이었다. 심장이 달린 해골이 망토를 걸치고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있지만, 그 옆에는 까마귀가 있고 배경은 거뭇하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봤단 고야의 말년 작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도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들. 뷔페의 작품도 그랬다. 젊은 시절 그렸던 온전히 우울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중년에 그린 피부가 벗겨진 채 근육과 뼈만 그린 작품(그러나 빨간색이 많았고 오히려 힘 있게 느껴졌다.)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은 근육마저 벗겨졌다.
-. 그를 자신이 무엇이라 기억될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 ‘광대’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 중엔 ‘광대’가 나오는 작품도 다수 있었다. 젊은 시절에 그린 광대는 슬픈 흑백의 모습이었는데, 그 속엔 광대 분장 안에 숨겨진 사람의 고독함이 있었다. 중년에 그린 광대의 모습은 무표정에 밝은 색체가 사용됐는데, 광대라는 존재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것 같았다.
-. 젊은 뷔페는 굉장한 미남이었다. 파리를 돌아다니며 다니는 그는 ‘셀레브리티’라는 단어를 유행시켰다고 했다. 그가 라 붐 저택으로 옮긴 노년의 모습은 통통한 옆 집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세기말, 파킨슨 병에 걸린 그의 모습은 조금은 슬퍼 보였다.
밝고 예쁜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지만, 어둡고 슬픈 그림은 (적어도 나에겐) 그 기저에 있는 것들 것 생각하게 한다.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20세기 안에서 살다 간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를 알게 되었고 또 한 명의 천재를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그의 우울을 보며 나의 우울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것이 오늘 전시를 보고 난 뒤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