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포스트모던적인
-. 2012년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후 7년 만에 두산아트센터에 갔다. 처음에 <포스트 아파트>를 예매할 때 ‘연극’ 카테고리에 있어서 연극인 줄 알았는데, 도착하고 표를 받고 아파트 입주문을 받으니 전혀 새로운 형식(적어도 나에게)의 연극임을 알았다.
무대가 곧 객석이고 연극하는 동안 사람들은 자유롭게 몸을 옮길 수 있었다. 퍼포먼스/연기/비디오/노래 등 종합적인 예술이 펼쳐졌다. 무대 안의 각 공간은 아파트 안에 있는 여러 오브젝트로 구성됐다.
-. 다분히 포스트모던 적인
아파트는 도시 구성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무대의 벽면에는 4.16세대/유신세대/386세대가 각각 자라오면서 그들의 삶의 주기와 아파트에 대한 통계 데이터(강남/강북의 주요 아파트 건설 시점 및 매매가, 평당 가격 등)를 비교하는 게시판이 있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아파트’ 흐름(메타 담론)이다. 그리고 현재, 아파트는 어떻게 재해석되고 재생산될 것인가? 벽면에 붙어있는 게시물 중 흥미로웠던 것은 각 지역이 가계부채와 아파트 구매로 인한 총 시세차익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가계부채의 규모가 시세차익의 그것보다 훨씬 컸다.
-. 과거 : 건설붐이 일면서 1960년대 중반에 시멘트 공장이 대거 세워졌고, 1년에 180만 톤이 생산됐다. 아파트는 옆 면에 창문을 낼 수 없었는데, 그 공간을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처음 회사 로고로 채웠다. 그때부터 아파트 값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연 중간, 무대를 꾸민 공간 책임자(정이삭氏)가 직접 나와 아파트(주거공간)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경험 또한 말해주는 순서가 있었다. 예전 교수님을 만났을 때, “다들 어디에 사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제자들이 ‘삼성요.’ ‘현대요,’라고 하는 것을 듣고 애들이 모두 회사에 파묻혀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정이삭 씨의 설명을 좀 더 곁들이면, 아파트는 현대現代 이전에도 있었다. 터키에서 신석기시대에 아파트 같은 주거 형태의 유적이 복원되었고, 로마시대에도 적층 형태의 주거공간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에도 물건이 떨어지는 바람에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니, 현재의 상황과 매우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일종의 적층식 주거 형태가 말해주는 것은 인류에게 아파트 DNA가 있다는 것.
-. 현대의 아파트(주거형태)는 어떤가?
복도식 아파트는 이제 멸종 단계에 들어갔다. 이웃과의 단절은 심화된다. 아들이 같은 동에 사는 아버지의 죽음을 2주 뒤에나 알았다는 뉴스도 들린다.
원룸/반지하/오피스텔 등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형태의 공간에 산다. 홀로 사는 사람은 모두 잠재적 고독사의 집단에 속한다. 경기도 내지는 서울 입성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넘어 거의 불가능하다. 집을 사(살)려면 빚을 져야 한다. 이는 가계부채로 이어진다.
-. 아파트 외의 삶 (방금 문단에 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나도 그랬다. 공연 중간중간, 배우들의 퍼포먼스에 곁들여 내레이션이 있었는데 어떤 남자의 독백(어렸을 때 살던 골목에 대한 추억)이 들렸다.
나와 비슷했다. 옥수1동(지금의 매봉길)은 전형적인 80년대 골목의 풍경을 띄고 있었고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며 구슬치기 내지는 팽이를 치고 놀았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를 대담하게 뛰어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아파트에 산다. 편리하고 좋다.
-. 우리 앞에 산재해 있는 문제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초기 모더니즘적인 구라파의 아파트는 100여 년 전 독일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를 일본이 유럽의 문화를 동경하며 받아들였고, 한국까지 흘러 들어왔다. 한국의 문제를 외부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안에 문제가 있으니 답도 우리 안에 있다.
한국에는 ‘평상’이라는 것이 있다. 누가 어떻게 만들자, 라는 매뉴얼이 없었지만 비슷한 목재와 비슷한 크기 심지어 그 위를 덮는 누런 색의 덮개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어쩌면 이 땅(한반도)에 사는 이들이 맺은 암묵적인 합의일 것이다. 정이삭 씨는 또다시 말했다. 여기 이 지점에서부터 진화해 나가면 어떨까?
-. 막바지의 평상 퍼포먼스가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평상의 정확한 치수는 모르지만, 아마도 1평(3.3미터 제곱)이라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서 배우들이 3명일 때는 완벽히 분리되어 서로의 몸을 부딪치지 않고 안무를 한다. 그리고 6명이 되면, 서로의 몸을 잡고 평상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서로 의지한다.
-. 그래서, 이 연극의 주인공은 우리다. 무대 안엔 배우도 있었지만 관객도 있었다. 배우가 관객 옆에 앉아 말을 건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가 삶의 보금자리가 되고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연대를 해야 하는가?(청춘시대의 공동주거 형태와 독일의 WG가 떠오른다.) 집이 부족한 시대는 아니다. 남는 집이 없어 사람들이 같이 살아야 하는 비둘기 집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 나도 내년에 사업장이 바뀌게 되면 집을 구해야 한다. 서울도 아닌데, 집값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전세/월세 어느 쪽도 쉽지 않다. 집이라는 빚에 눌리지 않고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미 중력을 버티고 있는데, 다른 무게까지 느끼면서 살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생명력이 놀랍다.
그래서 분양이 되거나 자신의 집이 생기면 그렇게 축하를 해줬구나 싶었다. 의식주에서 ‘주’가 가장 뒤에 있는 것도 가장 이루기 힘들기 때문이었을까?
-. 내가 들어가게 될 집(들). 내가 (혹여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있다면 (언젠가) 아파트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살 가능성은 낮을 것 같다. 그럼 2년마다 전세를 옮겨가겠지. 언젠가 이사를 하게 되어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
“새집은 어때요?” 그러면 나는 “낡았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까. 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