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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오늘은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도슨트 해설이 12시에 있어서 11시 15분쯤 먼저 도착해 전시를 한 번 훑어보고, 해설과 함께 전시를 한 번 더 봤다.
-. 보통의 전시는 시간의 정방향으로 진행되며 작가의 초기작부터 후기 작품을 보여주는 식이지만, 박서보 전은 그 반대로 진행됐다. 강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가 수원지水源地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 그의 후기 묘법 작품은 직선과 공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색감도 좋았지만, 한지와 도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했을까?’라는 물음이 계속 남았다.
그 방법은 해설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닥종이를 물에 불린 뒤 캔버스에 붙이고 손과 도구를 이용하여 패턴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 중기 묘법 작품은 후기의 그것보다 각도가 좀 더 자유로웠고, 그 때문에 지그재그 묘법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후기의 작품보다는 색이 어두운데, 이 시기부터 색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각도의 다양성이 있어서, 특히 이 시기에 작가가 육체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후기 작품이 일직선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 초기로 향하면 느낌이 매우 달라지는데, 이 때는 연필을 이용해 반복적인 패턴을(하지만 조금씩 다 다른) 그려냈다고 한다. 그는 이 시기에 ‘비움’에 대해 고심했다고 했는데, 답을 얻은 것은 둘째 아들이 형의 공책에 글씨를 따라 쓰다가 그것이 어려워 체념의 마음으로 남긴 곡선이었다고 한다.
비움을 ‘그리는’ 행동 자체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체념과 포기의 ‘마음’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리고 해설에 의하면, 초기 묘법 작품은 일종의 습작 느낌이 강했다고.
-. 그보다 앞선 시기로 시간을 더 돌리면, 아예 다른 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이를 <유전질 시기>라고 한다. 전통과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됨에 따라 박서보는 오방색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서양에서 유행하던 팝아트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만든다. 올해는 달착륙 50주년 기념이기도 한데, 그 위대한 발걸음이 내디뎌졌던 1969년의 그도 ‘무중력’에 영감을 받아 스프레이를 사용하여 작품 제작을 했다.
-. 이제 시간을 전부 되감으면 <원형질 시기>로 간다. 1950년대인 그때는 박서보다 20대 중반~30대 초반이던 시절이다. 그는 앵포르멜(불어; 형식 없는) 작품을 그려냈고, 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이 전의 한국 미술은 일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박서보가 처음으로 이것을 탈피했다고 한다. 이때의 작품에는 전후의 불안과 고독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상처가 가라앉을 때 <유전질 시기>로 이어진다.
-. 1층과 지하 1층이 뻥 뚫린 공간은 큐레이션 순서에 따르면 중기 묘법과 초기 묘법의 작품이 왔어야 했지만, 후기 묘법의 그림으로 채워졌다. 천장이 높고 채광이 들어오기 때문에, 먹색으로 거대하게 제작한 이 시기의 작품이 제격이기 때문에 이루어진 배치였다고 했다.
검정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그의 초기 <원형질 시기>의 검정과 <후기 묘법 시기>의 검정은 그 느낌이 매우 다른데, 초기에는 어둠과 불안을 나타내야 했기 때문에 가슴이 막막해지는 짙은 검정이었다면, 후기의 검정은 선비들이 쓰던 먹의 색 또는 그가 어린 시절 기억하는 아궁이의 그을음의 색이라고 한다. 이 검정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끌려들어 가는 느낌.
-. 실제로 그의 후기 묘법 작품은 색감이 굉장히 좋은데, 각각의 색마다 그가 생각하는 자연적인 모티브가 있었다. 분홍은 벚꽃, 빨강은 단감 내지는 홍시. 공기의 색이라고 하는 옥색(?)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라고.
이렇게 미술관을 올 때마다 작가 한 명을 더 알아가고 배우게 된다. 단편적으로 흩어져서 섬처럼 나누어져 있는 것들이 시간순이나 사조 같은 것으로 묶이며 섬의 다리를 놓는다. 그러면서 얻는 재미들이 있다. E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