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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ug 28. 2019

<체르노빌, CHERNOBYL 2018>

단상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에 <체르노빌>이 올라왔다. 
최고의 드라마 시리즈라는 카피에 눈이 갔고, 과학 주제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토요일 하루에 다섯 에피소드를 전부 봤다. 재밌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고, 수작이라는 표현이 좋을 것 같다. 왓챠에서는 오랜만에 별 다섯 개를 줬다. 


이 글엔 <체르노빌>을 보면서 느낀 단상들을 적었다. 


 


# 20세기 최악의 방사능 사고


체르노빌 사고는 유명하다. 원자력 발전소 주제가 나오면 꼭 나오곤 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교과서에는 이 사고로 인하여 몇 명이 죽고, 아직까지 금지 구역이라는 몇 줄의 코멘트만 있었고, 나도 딱 그 정도까지만 알고 있었다. 사고 역시 그저 기계적 결함으로 일어난 것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내용 중 상당수가 진실이라면, 그것은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드라마는 주인공들을 따라가며 서사와 사고의 진위를 밝히는 식으로 진행됐다. 나에게 특히 좋았던 장면은 에피소드 5의 재판 장면. 사고가 일어난 원리를 명확한 설명과 간략한 비유로 설명했다. 그래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실화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 감독의 숙명이었겠지만, 놀랍도록 현실과 비슷하게 촬영한 장면이 많았다. 원전의 모습은 물론, 도시의 모습과 대피 방송까지.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 체제에 관한 담론


유럽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이전에 동독의 모습을 다룬 [타인의 삶] 이후 간만! 서로를 동무(commute)라고 칭하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월말/연말에 바빠지는 모습 도한 엿볼 수 있었다. (마치 과제 종료를 앞두고 속도를 올리는 나의 모습이 아닌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발전소에 격납 벽을 설치하지 않고 제어봉의 표면을 흑연으로 된 것으로 사용한 것. 그리고 재판 장면에서 레가소프가 '싸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체제를 비꼬는(혹은 부정적으로 대하는) 장면이 통쾌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그에게 너무 크기도. 



# 사고 수습 및 고통의 현실화


폭발은 한순간이지만, 수습은 수 백 수 천 년이 걸린다. 체르노빌 원전은 드라마에서 나온 대로 광부들에 의해 보강공사가 진행됐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공사를 한 번 더 했으며, 먼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공사를 해야 한다. 세대가 지나가도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인 거다. 


인터넷에서 피폭자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지만, 허구의 드라마라도 그 모습은 참혹했다. 방사능이라는 총은 맞으면 돌이킬 수 없다. 일정 수준 이상의 피폭을 당한 순간부터 남은 인생의 시계는 바닥에 내팽개쳐서 산산조각 나고 멈춰버린다. 짧으면 수 일만에 사망하고, 또 다른 주인공인 세르비나 처럼 암에 걸려 천천히 죽어간다. 사고를 해결하는 것도 세대로 이어지지만, 상처 또한 기형아를 낳으며 흔적이 남는다. 




# 결국은 사람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빌런과 영웅의 이야기였다. 마블 시리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영화를 통해 명확한 영웅과 빌런을 인식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참사를 일으킨 빌런들은 겨우 10년의 형랑을 선고받았지만 그 마저도 채우지 못하고 나온다. 심지어 한 명은 원자력 발전소로 복직한다. 


한 편 영웅은 사고 후 정확히 2년 뒤 같은 날짜에 자살한다. 레가소프나 세르비나와 같은 인물을 말고도 드라마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희생한다. 수백수천 만 명의 피해를 막기 위해 사고 직후부터 자신의 몸을 방사능의 바다에 던진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너무나 어떤 일의 탓을 기계(컴퓨터?)로 돌린다. 나 역시 회사에서 시뮬레이션 업무를 하고 있다. 결괏값이 잘못 나올 때가 있는데, 이것은 대게 나의 탓이다. 내가 입력 인자를 잘못 넣었거나, 계산식이나 코딩을 좀 더 자세하게 짜지 않았거나. 체르노빌 사고 역시 그렇다. 특정 상황에 노심과 제어봉이 장시간 놓였을 때 미치게 될 영향을 미리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결국 본질은 인간에게 있음을 느낀다. 



# 일본


내년이면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아베 총리는 마리오 코스프레까지 해가며 올림픽 유치를 자축했다. 하지만 그가 올림픽 선수단에게 후쿠시마 산 쌀을 제공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가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후쿠시마 이후의 일본을 '보기 좋은 것'으로 포장하려는 것 같아 두렵다. 


방사능 오염수 배출 문제도 그렇고, 몇몇 경기장을 후쿠시마 근처로 잡는 행동을 보면 아베의 행보는 <체르노빌>의 댜틀로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희생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 끝으로


난 실화 바탕으로 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체르노빌>처럼 우리가 알지 못한 장면을 보여주는 작품을 더더욱 좋아한다. 실시간으로는 알 수 없었던 많은 장면(또는 진실)을 알 수 있으니까. 


<체르노빌>을 보며 떠올렸던 인물은 몇 년 전 과학 다큐 <코스모스>에서 언급됐던 지질학자 패터슨이었다. 그는 지구의 나이를 운석을 이용해 밝혀낸 사람임과 동시에, 미국에서 납의 오용을 막은 사람이기도 하다. 


잘못된 것을 고치려 진실을 파헤치고 거대 권력에 맞서는 그의 모습과 레가소프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내가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되지는 못해도 최소한 그들이 이룬 일들을 새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NDE



모든 사진 출처 : https://www.imdb.com/title/tt7366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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