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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21. 2019

<애드 아스트라, Ad Astra 2019>

Toward Star but Toward Human

※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를 보고 느낀 단상


-. <에드 아스트라> 우주 배경을 빌린 한 남자의 귀환 이야기다. 애석하게도 인터넷의 예고편처럼 영화가 블록버스터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를 바랐다면 실망할 수 있다. 


-. 초반의 주인공의 아버지(토미 리 존스)는 영웅으로 묘사된다. 아들인 로이(브래드 피트)는 자신이 우주 항공 쪽에 일하는 것을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말하고,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지적 생명체를 찾는 임무인 리마 프로젝트로 인해 해왕성으로 떠난 것도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믿는다. 


-. McBride 부자의 공통점 : 두 사람 모두 모두 시키는 대로, 감정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업무를 해낸다. 한 편 두 명 모두 인간관계에 어색하다. 목적(대의)을 위해 소모되는 것(도구)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 

아버지 클리포드는 지적 생명체 발견이라는 목적을 위해 지구로 귀환하려는 대원들을 살해하는 선택을 하고,

아들 로이는 화성으로 가능 도중 그의 비밀 미션의 진행을 위해 다른 선박에서 온 신호를 무시하려고 한다. 


-. 영화는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취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눈을 가린 채 아집으로 계속 갈 것인가? 혹은 인정하고 포기할 줄 알 것 인가?



-. 조금 다른 뒤틀린 버전의 ‘노인과 바다’(해왕성이 Neptune이란 것을 생각하면 재밌다.)라고 생각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노인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고, 그 행위가 고결하게 표현되지만 <애드 아스트라>의 클리포드는 목적에 목이 맨 노인이었다. 결국 그는 아집을 부리며 우주 공간 속으로 파묻혀 버린다.


-. 현실적인 우주개척시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켓을 타고 도착한 달의 모습은 여느 공항과 같고, 티셔츠를 판매한다. 자원 경쟁 때문에 달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 지구 – 달 – 화성 – 해왕성 – 지구로 돌아오는 여정은 지구 - 달 - 목성으로 향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여정과 비슷하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히 다르다는 것이 재밌다. 


-. 예의 여정을 통해 로이의 심리 변화가 느껴진다. 

달로 가면서 아버지가 영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 -> 화성으로 가면서는 버려진 우주선의 화난 유인원들을 맞닥뜨리며 자신 안의 분노를 감지 -> 화성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며 심리 적 동요 -> 해왕성 행 선박에서 선원들을 죽이며 고독의 고통을 느낌 -> 해왕성에 도착하고 아버지를 만나면서 폭발. 


-. 그래서 해피엔딩인가? 해피엔딩이라기 보단, 목적만을 추구하던 로이가 아버지에 대한 존재를 다시 되새기며 자신이 모르던 것(아버지는 영웅이 아니다)을 깨닫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이전보다는 나은 관계의 삶을 꾸려갈 것.


-. 인물을 담는 모습은 <퍼스트 맨>과 비슷했다. 화면에 인물의 얼굴을 꽉 차게 담음으로써 인물이 내면에서 느끼는 것을 최대한 표현. 음악도 너무나 좋았다. 이제는 우주 배경이 나올 때 소리가 없고 대신 클래식이나 잔잔한 노래(혹은 적절한 음악)를 사용하는 것은 국룰이 된 것 같다.



# 이동진의 라이브톡 내용


-. 제임스 그레이 식 sf : 영화 예술 자체에 대한 탐미.


-. 이야기의 시작은 엔리코 페르미의 핵실험 실패 보고서 내용 : 핵실험 시 미국 남서부가 날아갈 확률은 10% 

제임스 그레이 : 만약 우주 항해 기술이 발달된 상태에서, 미친 과학자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구의 멸망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을 낸다면? (영화 속에서는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아버지 맥브라이드가 해왕성에서 반물질 입자를 발사하면서 지구에서 ‘써지’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구현)


-. 이렇게 짜인 배경위에서 <애드 아스트라>는 기존의 SF 장르와는 정 반대의 노선을 걷는다. 다른 SF영화들이 낯선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무’에 대해 논의한다. 우주에서 ‘무’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우주에 우리밖에 없어도 무섭고, 그것이 아니어도 무섭다. <아서 클라크>


-. 사실적 연출

과학적 자문을 충분히 받았다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달에서의 총격전. 하지만 신기술이 나오지는 않음. 애초에 영화에서 신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 그리고 감독의 특유의 고전적인 성향이 있다. (70~80년대 영화에 대한 오마쥬)

 

-. 각 여정마다 겪은 주인공의 심리상태 표현이 탁월하다. (인간은 소우주)


-. 로이가 겪는 상황  : 지구의 아들을 미끼로 해왕성의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우주사령부에 의한 각본. 그리고 로이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서사는 전형적인 신화적 화법이다. 


-. <애드 아스트라>의 표면적 이야기 : 자기 내면에 대한 발견, 그리고 구원 (익숙한 이야기)

내면에는 ‘무’를 견디는 이야기. (삶의 의미와 같은 것에 대한 근원적 물음.)

로이는 여정이 갈수록 모르는 것이 쌓여감. 그는 자신이 고독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해왕성까지의 여정에서 고독이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것은, 로이가 자신의 관계 부적응을 자신의 특성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자기를 만나는 것(자신과 비슷한 사람) 혹은 자신의 근원을 만나는 것 혹은 신을 만나는 것. (숭배의 대상, 원망하는 대상)

영화에서 일어나는 써지라는 현상은 전력이 차단되어 통신장애가 일어나는 것 이는 소통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음. 따라서, 로이가 아버지에게 다가갈 때 종단에 어떤 소통이 이루어질 것인가가 흥미로운 포인트가 된다. 


-. Computer를 이용한 심리진단 장면이 많았고, 중요하다. 그가 화성에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말하며 울었을 때 컴퓨터는 부적격 판단을 낸다. (해당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제거 대상에 대한 분노가 필요함) 

반대로, 화성으로 가는 길에서 유인원의 습격을 당한 후 자기 자신에게 분노가 내재됨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Pass 판정. 이것은 자연스럽게 영화가 다루는 주제인 목적론과 이어진다. 



-. 목적론에 대해.

로이는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과 죄, 상처가 있었지만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숨기고 있었음. (=자기 마음을 모르고 있었음) 관계 무능력에 대하 고독을 자신의 고유 특성으로 이해함.


결국,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타노스적 철학을 가진 목적론적 존재. 타노스가 우주의 절반을 없애서 우주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과 비슷하게, 아버지 클리포드는 지적 생명체 발견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선상 반란을 일으키거나 지구로 귀환하려는 선원들을 죽인다.


식탁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밥을 먹기 위한 것’은 목적론적 의미. 인간 중심. 이와 다르게 ‘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기계론 적 의미이고 이 기반으로 근대철학이 발전했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 : 해왕성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없다는 것’ 그때, 귀환을 선택하느냐, 아집으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체하느냐. 존재에 대한 이유도 비슷하다. (인생의 의미) 인생의 의미도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살지 말아야 하는가? 의미가 없어도 관계에 의해 살아갈 수 있다. 

무를 견디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아버지를 신으로 보았을 때 처음의 로이는 그를 ‘죽은 신’으로 생각. 하지만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안 뒤로는 아버지를 ‘사라진 신’ 혹은 ‘침묵한 신’으로 받아들임 (이는 창조된 자의 입장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것) 인간이 신을 찾아왔는데, 신이 인간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을 때 느끼는 배신감. 


감독의 미래관은 비관적이다. 인간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음. 해묵은 문제가 반복될 뿐. 서부개척시대처럼 표현된 달의 모습. 지구적인 공항의 모습이 보인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모노리스를 동한 인류의 진보를 논의했다면 <애드 아스트라>는 그것과 정 반대의 것에 대해 논의한다.  


-. Ad Astra라는 의미는 라틴어로 ‘별 쪽으로’라는 의미. Toward Star



#나가며 


라이브 톡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내 개인적 삶을 돌아보면, 나는 목적론 적인 삶을 살았다. 미래에 내가 이루고 싶은 바를 위해 현재의 나를 갈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 목적이 흐려지거나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공허함을 느끼곤 했었다. 

결국 나도 주인공처럼 관계에 미숙했었고, 그 때문에 공허함의 상태의 나를 견디기 힘들었었다. 목적론적 생각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삶의 동력으로 쓰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혼자인 상태를 즐기는 나도 있지만, 반대로 외로움에 사무치는 나를 마주할 땐 컨택트가 필요함을 알았다는 점이 오늘의 영화를 보고 느낀 소득이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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