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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Sep 04. 2023

아빠가 사라졌다 (4)


이 글은 소설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등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교문을 나와 500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작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 밑으로 하천의 양쪽 뚝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늦여름 주말 오전을 보내고 있었다. 운동기구에서 운동하는 사람. 배드민턴 치는 가족.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 하천에 발 담근 아이.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 몇 마리의 오리. 그녀가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마을버스가 바로 왔다. 마을버스는 두 정거장을 지나 전철역 앞 정류장에 섰다. 버스에서 내려 그녀는 집에 바로 갈지 근처 카페에서 아빠 노트북을 훑어볼지 고민했다. 시간을 확인하려 스마트폰을 꺼냈는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방금 헤어진 아빠 학교 교무부장이었다. 혹시 아빠랑 연락이 닿으셨나? 그녀는 교무부장에게 전화했다.


“네, 부장님. 제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어 놔서 전화 온 줄 몰랐어요.”

[어. 집에 가는 길이지? 혹시 어디니? 벌써 전철 탄 건 아니지?]

“아, 이제 막 마을버스 내렸어요.”

[잘됐다. 나 지금 나가니까 역 앞에서 기다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바래다줄게.]


교무부장은 의정부에 살고 있었다. 퇴근 길이 그녀가 사는 곳을 지나쳐서 전 학교에 함께 근무할 때도 자주 신세를 졌었다.


“안 그러셔도 돼요.”

[아냐, 아냐. 뭐 어차피 가는 길인데. 한 5분만 기다려.]

“아, 그럼 4번 출구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어, 어. 그래. 좀 있다 봐.]


그녀는 전화를 끊고 4번 출구 앞쪽으로 갔다. 처음에 예의상 거절하긴 했지만 그녀는 교무부장의 제안이 내심 반가웠다.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전철을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꽤나 번거로웠다. 교무부장의 차는 5분이 되지 않아 역에 도착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고 보조석에 탔다.


“아니, 지원청에 보고할게 오늘까지여서 출근했는데 기획 선생님이 이미 해서 보냈더라고. 고맙게도.”

“아, 그래서 일찍 나오셨군요?”

“어, 집에 가서 좀 쉬어야지. 이번 여름방학 때도 휴가 3일 빼고 매일 나왔잖아.”

“어휴,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곧 교감연수받으실 거라고 아빠한테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뭐 때 되면 다 나오는 건데 뭐. 그나저나 교감샘은 아직 연락 없으신 거지?”

“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본가나 경찰서에는 알아봤어?”

“어제 본가 다녀가셨다더라고요. 경찰서에서는 뭐 실종신고가 안 된다고 하고요.”


잠깐의 침묵. 교무부장에게도 그녀에게도 아빠가 사라졌다는 상황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지금까지 가족에게, 그리고 직장 동료에게 이런 걱정을 끼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그녀는 아직 아빠와 연락이 끊긴 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아 대외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민망하기도 하였다.


“아, 그나저나 최근에 학교에서 뉴스에 나올 법한 일이 하나 있었어.”

“진짜요? 무슨 일인데요?”

“중1짜리 남자애 하나가 교사를 때렸어.”

“허.. 정말요? 그 선생님 괜찮으세요?”

“안 괜찮지. 여자 선생님 두 분인데. 애가 등을 발로 차고 커터칼 들고 쫓아왔거든.”

“커터칼이요?”

“응. 다행히 바로 교무실로 피해서 문 잠그고 교감샘이랑 생지부장한테 인터폰 했다더라고. 1학년 교실이 4층에 있거든. 다행히 둘 다 자리 지키고 있었어. 교감샘이랑 생지부장 바로 뛰어 올라와서 커터칼 뺏고 애 잡고 다른 교무실로 데려갔고. 애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지 미친 듯이 발악을 하더라고. 나도 3층에서 수업하고 있었는데 애 고함소리가 계단으로 아래층까지 들려서 나가봤을 정도니까.”

“와, 경찰 안 불렀어요?”

“불렀지. 그 애가. 교감샘이랑 생지부장이 자기 폭행했다고.”

“헐. 정말요? 어이가 없네요?”

“내 말이. 경찰도 교감샘 옷 찢어지고 생지부장 목에 스크래치 난 것 보고 무슨 상황인지 바로 파악했지. 바로 아빠 연락해서 집으로 데려가고 등교중지 때려버렸어.”

“아, 지난주였나? 엄마, 아빠가 옷 찢어졌다 뭐 이런 얘기 나누시는 것 들었어요. 근데 무슨 일인지 몰랐는데 장난이 아니었네요.”

“그렇지. 교감샘 결재한 공문에 그거 관련된 게 있을 거니까 한 번 봐봐. 아, 맞다. 그 일 있고 며칠 뒤에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거든. 더 가관이었던 건 교권에서 위원들 앞에서 애가 자기 아버지 뒤통수를 때려버렸다는 거야.”

“네?”

“아빠가 자기편 안 들어준다고 책상 뒤집어엎고 뒤통수를 그냥 날려버렸데. 근데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애 아빠는 무기력하게 맞고만 있었다는 거지.”

“뭔가 집에서도 아이 폭력이 계속 있거나 그런 거 같은데요?”

“애는 연세 많은 할머니랑 같이 살고 아빠가 따로 살면서 막노동으로 돈 벌어다 준다고 하더라고. 아빠가 나이가 꽤 많나 봐. 집에서도 난리도 아닌가 봐.”

“에휴. 그 선생님 두 분은 정말 엄청 충격받으셨겠어요.”

“다행히 바로 병가 쓰고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어. 그나마 다행히 잘 마음 추스르고 있대.”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혹은 거리에서 그러한 사람을 언제든 만날 수 있고 그들로부터 위협받을 수도 있었다. 그녀도 4년 정도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이상한 동료, 이상한 학생, 이상한 학부모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상대방의 이야기는 전혀 듣지 않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는 상식과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본인의 주장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의 피해와 고통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은근히 본인을 숨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손해 앞에서는 본인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에 없었다. 대부분 본인이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무서웠다. 물리적 폭력을 제외하고는 그들을 제압할 방법은 없는 듯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부득이하게 그들과 마주치게 된다면 -언제까지 결코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니- 그들을 달래고 받아주거나 본인의 피해를 감수하고 많은 것을 내놓아야 했다. 아니면 스스로를 내려놓고 그들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어 개싸움을 해야 했다. 같은 존재가 되거나 그렇게 된 척해야 했다. 그녀는 그런 이들에 관해 듣기도 하고 직접 겪기도 하면서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혹시 아빠도 그런 사람을 만난 건 아니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한 영화에서 ‘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데는 운 나쁜 하루면 족하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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