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금정과 영금정해돋이정자를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우리 셋은 곧바로 뻗었다. 볼륨을 줄여 티브이를 틀어놓고 아침에 개지 않은 이불을 그대로 덮고 모두 잠들었다. 잠에서 깼은 때 나는 두통과 더부룩함과 오한을 느꼈다. 아. 또 시작이다. 나는 평소에 편두통이 자주 있다. 때로는 급체로 인한 몸살기가 함께 와서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이럴 땐 한숨 더 자면서 몸에 땀을 충분히 내야 몸살기가 풀린다. 경험상 그랬다. 바로 두통약을 두 알 먹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사람마다 고통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아내는 진통을 이틀 밤을 참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자궁이 6센티미터나 열려 있다고 의사가 놀라 말했다. 또, 어떤 친구는 평생 두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에게 숙취란 약간 어지러운 머리와 뒤집힌 속, 그 정도라고 한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정도도 사람마다 다름에 틀림없다. 몇 년 전 진상 학부모 민원을 받은 어떤 선생님은 끝끝내 병가를 쓰셨다. 다음 해 같은 학부모의 자녀를 맡은 나는 때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찌어찌 민원을 다 받아내었다. 누군가는 그 정도 민원인에게서 아예 고통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에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는 게 더 조심스럽다.
잠에서 깬 아내도 나의 상태를 바로 눈치챘다. 짐짓 실망한 분위기가 느껴져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빨리 몸 상태가 나아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아이도 잠에서 깼지만 나가고 싶지 않은지 다리를 죽 펴고 앉아 있는 엄마를 뒹굴뒹굴 타 넘으며 티브이만 보고 있었다. 1시간 정도 누워 있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있어서 반팔티는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안 되겠다. 나는 일어나 웃옷을 갈아입고 미친 듯이 스트레칭을 하고 목과 어깨를 마사지했다.
"나가자."
나가기 싫다는 아이를 다독여 유모차에 태우고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어제보다 바람이 셌지만 해변의 분위기는 그래도 생기가 넘쳤다. 그 덕에 내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는 듯했다. 속초해변에 들어선 어제부터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거대한 것. 대관람차 속초아이를 타러 갔다. 우선 아이가 속초아이의 모습을 눈앞에서 관찰할 수 있게 매표소를 지나 해변으로 갔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탈 게 이거야! 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도 그 말을 이해한 듯이 신나 했다. 매표소에 줄은 길지 않아 우리는 곧바로 표를 끊고 건물을 통과하였다. 유모차를 놓는 곳에 큰 파라솔이 하나 쳐져 있었는데 대관람차에서 물이 주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유모차에서 아이를 안아 들어 계단을 통해 플랫폼에 올랐다. 눈앞에서 본 동그란 관람차는 꽤나 큼직했고 채도가 높았다.
우리는 초록색 관람차에 탑승했다. 와. 깔끔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 오히려 추위를 느꼈다. 중간에 작은 테이블이 있고 양쪽으로 긴 의자가 둥글게 놓여 있었다. 자동문 반대편으로 대관람차를 홍보하는 영상이 반복되는 작은 스크린이 위에 달려 있었고 그 밑으로 블루투스 연결기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 관람차는 멈춤 없이 서서히 우리 시야를 높였다. 뻥 뚫린 유리창으로 파스텔 톤의 푸른 바다와 같은 색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작은 섬과 몇몇 배들, 그리고 수평선의 전경은 아름다웠다. 반대편 창문으로는 설악산의 장엄한 모습과 아래로 속초 시내의 작은 건물들과 차, 사람들이 역시나 푸른 하늘 아래 펼쳐졌다. 아이는 풍경도 신기하고 관람차 내부도 신기한지 의자에서 무릎으로 일어나 창밖을 봤다가 블루투스 연결 기기를 봤다가 엄마와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가 옆에 붙은 작은 스크린을 보았다. 어느새 앞에 가던 관람차가 우리 위에 위치하고 그러다 슬며시 우리 뒤로 향했다.
관람차는 정상을 찍고 서서히 내려왔다. 그냥 이대로 내리지 않고 한번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새 지상으로 내려와 자동문이 열렸다. 약간의 흥분과 아쉬움 같은 게 느껴졌는데 안아 올린 아이의 온기에도 그런 기분이 있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온 후 우리는 다시 한번 속초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어제 걸었던 해변을 따라 아이와 함께 걷다가 아내가 숙소로 가서 모래놀이 장난감과 돗자리를 챙겨 오기로 하였다. 아내는 유모차를 끌고 이내 사라졌고 나는 아이와 사람들을 보도블록을 얕게 덮고 있는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어제보다 거센 바람으로 파도가 올라오는 모래사장 끝에 검은 줄을 세워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펼쳐진 파라솔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채워져 있었다. 세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벤치 길이의 흔들의자가 비어 있어 아이와 앉았다.
원래 그네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앞 뒤로 흔들리는 의자 끄트머리에 앉았다.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라고 해 봤자 보통 내가 아이가 이해할 정도의 짧은 질문, 예컨대 '우리 방금 뭐 타고 왔지?, ' '(바다를 가리키며) 저게 뭐야?' 같은 질문을 하고, 아이는 가끔은 맞는 대답을, 보통은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때로 아이가 발화하는 문장에 내가 과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예컨대 '암마랑(엄마랑) 아빠랑 OO이랑 밥! 먹었지!' 라든가, '그예서(그래서) 외하버지(외할아버지) 외하머니(외할머니) 부천에 갔지!' 같이 말하면 나는 그 문장들을 따라 하며 아이와 눈을 맞췄다. 주부와 술어부를 어느 정도 연결하거나 접속사 같은 것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어학을, 그중에서도 응용언어학을 전공하였고 거기엔 언어 습득에 관한 파트도 있다. 교육심리학자인 피아제(Piaget)는 두 딸이 성장하는 매일매일의 변화를 기록하면서 아동의 발달에 관해 연구했다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 정도 학문에 대한 열정은 없었나 보다. 적어도 아이가 처음 하는 말 정도는 기록해 둘걸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다.
아내가 장난감과 돗자리를 가지고 왔지만 흔들의자가 너무 편안하여 우리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기를 재울 때 왜 천천히 흔들어 주는지, 요람은 또 왜 흔들리는지 좀 알 것도 같았다. 아이는 '퀸(Queen)'의 'We Will Rock You!'를 부르며, 무릎과 손뼉을 쳤다. 아. '위위, 위위, 라큐!' 오직 이 가사만 부를 줄 안다. '곰 세 마리'를 부르고 '아기상어'를 부르고 '타요타요'를 불렀다. 음악을 좋아하는 나와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의 영향인지 아이는 곧잘 노래를 배웠다. 가사의 어떤 부분을 바꿔 부른다거나 혹은 특정 멜로디에 자기만의 가사를 넣어 부를 때도 있어 놀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기를 나와 아내는 바랐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떡갈비와 육회비빔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해변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작은 식당이 있어 걸어가기로 하였다. 젊은 남자가 운영하는 식당은 딱 두 테이블 밖에 없었는데 매장 내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다고 하였다. 우리는 음식을 포장해서 숙소에 가 먹기로 하고 주문을 하였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아이가 갑자기 기저귀에 응가를 해버렸다. 통화 때문에 잠깐 식당 밖에 나가 있던 아내에게 포장을 부탁하고 아이와 먼저 숙소로 출발했다. 식당이 위치한 곳은 해변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의 골목이었다. 응가를 한 아이를 안고 오는 길에는 몇 명의 노인들과 조금 큰 개 한 마리가 작은 집 앞에 앉아, 엎드려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다른 골목에 접어들면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작은 마당이 있는 펜션이 좌우에 있었다. 이런 펜션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행객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일상의 풍경과 사뭇 다르고,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해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새로 입혔다. 잠깐 티브이를 틀어 보고 있자니 아내가 숙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빨리 음식이 준비되었구나. 지난 저녁 막국수와 감자전, 오늘 아침 순댓국이 맛있어서인지, 떡갈비와 육회비빔밥은 분명 나쁘지 않았지만… 뭔가 아쉬운 평범함이 있었다. 아내는 냉동 떡갈비 맛이라고 평했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는 맛있게 잘 먹어 주었다.
저녁 식사 후,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제 아내 혼자 걸었던 길을 셋이서 함께 걸었다. 음영으로 여기저기 검게 그을린 갈색의 모래사장과 어둠에 물들어 이젠 쏴아아아 소리만 남은 파도는 낮의 바다보다 더 낭만이 있었다. 파도치는 아슬아슬한 바다 위가 아니라 그래도 땅을 딛고서 깜깜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위로가 되는 듯했다. 삶도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작은 흔들림에도 힘들어하며 허덕이는 마음이 아니라, 조금은 느긋하게 관조하며 무던하게. 바람도 시원해 여행 마지막 밤이 더 아쉬웠나 보다. 바다 풍경을 찍고 가족 셀카도 많이도 찍었다. 아이는 2018년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인 수오랑과 반다비를 보고 “곰돌이”라고 외쳤다.
많은 여행을 다니진 않았지만 나의 여행은 움직임이 적은 여행이었다. 남들처럼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거나, 유명한 절경을 구경하거나, 긴 웨이팅 후에 핫한 맛집에서 맛난 음식을 먹거나, 럭셔리한 리조트나 호텔에서 여유를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내향적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여행은 항상 소박한 여행이다. 부디 아내와 아이에게 이 소박함이 부족함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여행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