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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Sep 09. 2023

속초여행 3일

되돌아옴.



지금까지 얼마 되지 않는 여행을 할 때면 나는 항상 되돌아옴을 생각했다. 집으로 향하는 교통편을 생각하기도 하고 집에 도착해 짐을 푸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때로는 여행 중에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바라기도 하였다. 그런 태도가 여행의 즐거움을 앗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간혹 여행의 몰입을 방해하기는 하였다. 여행 마지막 아침에도 나는 되돌아옴을 생각했다. 이번엔 2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는 부담감이었다. 벌써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초보운전자의 때를 벗지 못한 듯하다.


여행 마지막 아침이었다. 우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7시 즈음 일어났다. 특별히 어딜 가거나 무엇을 볼 생각 없이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빵이나 브런치를 먹고 출발할 계획이었다. 아이는 우유를 먹고 나지막한 볼륨의 티브이를 보았고 우리는 숙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떠난 자리가 깨끗한 사람이었다. 처음 들어올 때 그대로가 그녀의 지향점이었다. 내가 아이 옷을 입히고 선크림을 바르는 동안 아내는 많은 일을 하였다. 흰 이불들을 반듯하게 정리하여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았다. 바닥에 머리카락과 먼지는 물티슈로 꼼꼼히 닦고 테이블과 스탠드 등을 원래 위치로 옮겼다. 2박 동안 사용한 타월들은 싱크대 옆 세탁기에 넣고 아이 손이 안 닿게 올려놓았던 칼이나 가위, 냄비 등은 다시 싱크대 밑 장에 넣었다. 쓰레기는 일반과 분리수거용으로 분리하여 문 앞에 두고 우리 짐도 캐리어에 넣을 것과 차에 가지고 탈 것으로 나눴다. 아내는 의식 같은 거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방과 베란다, 서랍과 냉장고, 화장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우리는 숙소를 나왔다. 짐을 차에 싣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안고 근처에 봐둔 카페로 갔다. 적당히 아이와 우리가 먹을 빵을 고르고 카페라테 하나를 시켰다. 5층까지 있는 꽤나 높은 건물이었는데, 꼭대기 층은 통유리에 좌식이었다. 손님이 없는 이른 아침이라 우리는 꼭대기 층을 통으로 전세 낼 수 있었다. 작고 동그란 낮은 테이블과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빈백소파가 있었다. 아. 편했다. 몸도 마음도. 그래도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다. 이제 곧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에이. 포털 같은 게 열려서 바로 집으로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는 햄이 사이사이 끼인 빵을 먹었다. 부스러기가 좀 나와 먹는 와중에도 몇 번씩 아내와 나는 아이의 입을 닦고 옷을 털고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웠다. 아이는 사진 포즈를 잡는다며 어설프게 “븨”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지난번 영종도에서 찍은 동영상 속 자신을 따라 한다며 물을 마시고 “맛있어요!” 외치기도 하고 컵 가장자리를 코에 대며 “입이 콧구멍!”이라고 장난치기도 했다.


마치 집 거실에서 바다 뷰를 즐기는 듯했다.


내 새끼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웠다. 아이를 바라보면 아내에게 느끼는 사랑과는 좀 다른 가슴떨림이 있다. 이 가슴떨림에는 설렘보다는 벅차오름이 좀 더 어울리는 표현인 듯하다. 찡긋 눈웃음칠 때나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할 때 뭔지 모를 감동이나 뿌듯함, 대견함 같은 감정이 잔잔하게 떠오른다. 동시에 이미 내가 경험해 왔던 좌절이나 슬픔을 알기에, 앞으로 아이가 겪을 인생에서 느낄 고통과 마음고생도 희미하지만 분명히 느껴진다. 그래서 때로는 안타깝고 미안하기도 한 걸까? 아이가 유일하게 1절을 따라 부를 수 있는 팝송이 있다-물론 그 노래의 가사를 이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Ben Folds의 Still Fighting it이다. 그는 이 곡을 쓴 이유가 자신이 처음 인생을 겪을 때 느낀 고통을 아들 역시도 처음 겪을 거란 사실이 미안해서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이가 이 곡을 좋아해서 다행이고 또 미안하다.


Ben Folds - Still Fighting it

(근데 내가 듣기론 이 사람 자식이 이란성쌍둥이라는데… 왜 아들에게만 곡을 써준 걸까?)



카페를 나와 다시 숙소가 있는 건물 로비로 가 체크아웃을 하였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동뿡이에 탔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구나. 내비게이션을 켜고 출발하였다. 속초 해변을 훑고 차는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굴곡진 도로를 달렸다. 출발할 때 보슬보슬 내리던 비는 이내 주적주적 오기 시작했다. 장마의 끝에서 운 좋게 얻은 비 없는 날들이었는데 이제 그 운도 다 한듯했다. 그래도 도로는 한적했다.


거의 3시간이 걸렸다.


아뿔싸. 왜 빵을 먹고 바로 출발했을까? 고속도로를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토하였다. 카시트에서 내려달라고, 힘들다고 짜증을 냈는데. 우리 둘은 눈치채지 못하였다. 아주 어릴 때는 거의 멀미를 하지 않는데 몸에서 균형을 담당하는 기관이 발달하면서 멀미를 앓는 아이들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미 한번 경험이 있었는데. 아내는 두 손으로 아이의 토사물을 들고 있었고 나는 정신없이 넓은 갓길을 찾았다. 왜 이리 터널이 많을까. 어쩔 수 없이 조금 공간이 있는 갓길에 동뿡이를 세우고 차에 있던 봉지에 아내가 받은 토사물을 넣고 물티슈로 아이와 아내를 닦았다. 그때 뒤에서 고속도로 관리하는 차량으로 생각되는 차가 멈춰 서서 우리에게 몇 킬로 앞을 가면 정차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방송했다. 대충 정리하고 신중히 사이드미러를 보며 출발했다.


다행히 곧 터널 입구 쪽에 고속도로 관련 건물과 앞에 큰 공터를 발견했다. 그 차량도 우리 뒤를 따라와 공터로 들어왔다. 고속도로 관리 직원으로 보이는 운전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내와 함께 아이가 토한 것을 치웠다. 아이는 당황했음에 틀림없었다. 울지도 않고 멍하니 카시트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우선 아이 옷을 벗겼고 나는 비를 맞으며 트렁크로 가 캐리어에서 아이 옷을 챙겼다. 우리는 아이를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카시트와 바닥을 닦았다. 아내는 아이에게 물을 먹이고 본인의 옷가지에 묻은 잔여물도 닦아 내었다. 에구. 둘 다 얼마나 힘들고 놀랬을까.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사용한 물티슈와 토사물이 담긴 봉지 등은 다른 검은 봉지에 넣어 꽁꽁 묶었다. 아이는 카시트가 아니라 아내의 품에 안겼다. 나는 사이드미러를 확인하고 풀액셀로 동뿡이를 출발시켰다. 엑셀의 감각이 조금 이상했다. 속도감에서 위화감이 들었다. 나도 적잖이 놀랐나 보다. 빨리 집에 도착했으면 했다. 터널은 여전히 우리 앞에 계속 나타났다.


아내는 아이가 토한 것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어서 손에 쥐가 날뻔했다고 했다. 차 안에 맴돌던 긴장감이 조금은 녹아내렸다. 토 냄새는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였지만 참을만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 창문을 내리지 못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는 아침에 먹은 소시지 빵을 다 게워내었나 보다. 토하느라 지쳤는지 아내의 품에서 이내 잠이 들었다. 나는 신중히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나는 되돌아옴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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