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게 남긴 것.
이 글은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의 일대기를 다루거나 그의 음악에 관해 심도 있게 비평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까지 제 인생의 선에 굵은 점을 여러 개 남겼던 인물에 대해 추억하는 가벼운 글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에 관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4.
긴 조문객의 행렬이 이어졌다. 사망한 다음날 나는 검은 코트를 입고 방과 후에 혼자 그를 찾았다. 생전 그의 콘서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내가 사랑한 가수를 콘서트장이 아니라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으로 마주함에 더욱 고개가 숙여졌다. 그나마 내가 찾았을 때, 그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했다는 게 위안일까. 그는 나를 포함해 엄청나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며칠 뒤, 당시 자주 가던 회기역 근처 바에서 사장님께 그의 음악을 크게 틀어달라 요청했다. 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좋은 시절은 언제나 빨리 사라져 간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즐거워하고 분노하고 위로받은 시절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에겐 그저 수많은 팬 중에 하나일 테지만 그럼 어떠랴. 내가 그 음악을 듣는 순간 그는 나에게만 노래하였다. 음정이 떨어지고 목이 쉬어도 상관없었다. 음악적인 평가는 놓고서라도 그는 가슴을 울리는 시인이자 운동가였다.
가끔 대한민국 100대 명반 선정 순위에 넥스트 2집이나 1집이 눈에 띈다. 나는 굉장히 박한 평가라 여기며 상당히 기분이 나빠진 상태로 음악평론가의 이름을 찾아 노려본다. 취향의 문제니까 뭐 이해한다고 넘어가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규모의 사운드와 연주력을 갖추고 그렇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며 영향력 있고 사랑받은 뮤지션, 밴드는 신해철과 넥스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고작 앨범 한 두 개라니. 이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라고 생각하면 너무 욕심인 걸까?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팬심 때문이라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내가 근무한 첫 학교는 학생오케스트라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2015년 2학기 학교 축제에서 나는 작은 사고를 하나 쳤다. 당시 오케스트라 동아리 전체 운영을 도맡아 했던 2년 차 음악 선생님께 축제준비로 바쁜 와중에 ‘그대에게’ 오케스트라 버전의 스코어 편곡과 오케스트라 학생들 연습을 의뢰했다. 스카이 출신의 성격 좋고 잘 생긴 동갑내기 체육교사 친구에게는 노래를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기타 선생님과 밴드반 아이들을 연습시켰다. 드럼도 직접 쳤다. 70여 명의 학생과 교사가 동원되어 축제의 오프닝 무대에서 ‘그대에게’를 연주해 버렸다. 오로지 사심 가득하게 선택한 곡을 연주해 준 당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https://youtu.be/eaHmPgvXC20?si=j6_9fsHxUO9GIA4u
그리고 축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같은 해 12월에 덩치 큰 동기와 5대 5 야비한 웃음의 동기와 셋이 홍대에서 하는 신해철 추모 1주기 콘서트에 갔다. 그는 없었지만 그의 노래를 라이브로 듣고 함께 뛰며 따라 불렀다. 거의 모든 곡을 목이 쉬어라 부를 수 있었고, 그의 영상이 나올 때에는 눈물도 좀 훔쳤다. 인터미션 때 신해철의 아내 윤원희 씨를 1층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우리는 모두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내가 몇 년 전부터 매년 참여하는 어떤 평가 문항 출제 모임에 있는 선생님 한 분이 윤원희 씨의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심지어 같은 반이었다고 해서 놀란 기억도 있다.
1989년 무한궤도 당시 20대 초반이던 신해철은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를 썼다. 노래에서 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그리고 약 25년 뒤 그는 ‘단 하나의 약속’이란 노래를 발표하며 소중한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의 아내와 두 아이에게 아프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조그만 20대 청년이 물었던 우리 삶의 의미에 중년의 철학자는 가족이라 답한다. 나는 그렇게 그 두 곡을 이해했다. 그리고 나 역시 자신의 가족이 생긴 지금, 나는 내가 이해한 바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중)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내 소중한 사람아
그것만은 대신해 줄 수도 없어 아프지 말아요
그거면 돼 난 너만 있으면 돼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t’s You.
(‘단 하나의 약속’ 중)
https://youtu.be/lN651hIvUwk?si=nETltQFy9TtqhDNZ
덧.
신해철이 했던 라디오 방송인 음악도시, 고스트스테이션, 고스트네이션은 핫했던 당시에는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 천추의 한이다. 몇 년 전에 유튜브나 한 팟캐스트 어플에 일부 방송이 업로드되어 꽤나 즐겁게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공자, 맹자에 비견되는 사상가 ‘놀자’에 관한 그의 애정에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