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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16. 2023

취미는 드럼, 어깨에 힘을 빼 (1)

나의 드럼 연주 - 입문


로저 테일러, 존 본햄, 링고 스타, 스티브 갯, 아트 블래키, 버디 리치, 데이브 웨클, 마이크 포트노이, 라스 울리히, 마이크 맨지니, 토마스 랭, 제프 포카로, 마르코 미네만, 조조 메이어, 데니스 챔버스, 토이 로이스터 주니어, 크리스 콜먼, 이수용, 강수호, 임용훈. 내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거나 이름을 알고 있는 드러머들이다. 한 때 잠깐 이들 옆에 내 이름을 나란히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음… 뭐, 음악을 업으로 삼기에는 재능도, 열정도, 용기도 없어 관뒀다.


처음 드럼을 접한 건, 2000년 대 초반,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던 때였다. 신입생이던 나는 남들처럼 공강시간엔 누구 놀 사람 없나, 밥 사줄 선배는 없나 하며 과방을 기웃기웃거렸다. 과방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과 사람들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중에 프로젝트 밴드를 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내가 입학하기 전 해에 과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난입하여 난리를 피우고 사라지는 풉스(PUFS)라는 전설적인 프로젝트 밴드였다. 안타깝게도 풉스는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한 선배의 입대로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였고, 음악에 관심이 있던 나와 야비한 미소의 5대 5 가르마 동기 한 놈은, 나머지 멤버였던 그 선배들과 가깝게 지내며 호시탐탐 합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과방에 낡은 세트드럼 하나가 설치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드럼을 쳐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풉스의 베이시스트이자 나와 같은 성을 가진 M선배는 내게 처음으로 8비트 리듬*을 가르쳐주셨다. 오른손으로 하이햇*을 여덟 번 칠 때 각각 1, 5번에는 오른발 킥*을, 3, 7번에는 왼손으로 스네어*를 치라고 하였고, 신기하게도 나는 별 노력 없이 손쉽게 연주할 수 있었다. '쿵치팍치 쿵치팍치.' 다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킥을 밟은 방법도, 스틱을 쥐는 법도 몰랐으니 소리는 개떡 같았을 거다.


여하튼 과방에서 몇 번 드럼을 치고 난 후에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드럼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떤 드럼, 어떤 심벌이 무슨 소리를 만드는지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여기선 이렇게 치고, 저기선 저렇게 치는구나 대충은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내 앞에 드럼이 있다 상상하며 손과 발로 일명 에어드럼을 치면서 백비트*를 쪼개거나 킥을 다양하게 밟거나 탐탐*을 연주할 수 있었다.

출처: https://m.spmi.co.kr/amp/board/read.html?board_no=13&no=1728


그러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 통하였는지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11월인가 12월인가 학과 홈커밍데이에 풉스가 다시 한번 난입하기로 결정하였고 나는 드럼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Nirvana의 Smells Like Teen’s Spirit이였는데, 백비트도 꽤나 많이 쪼개면서 킥도 복잡하게 밟으며 심벌도 아주 많이 치는 곡이었다. 지금 들어보면 상당히 어려운 곡이었는데, 그땐 멋도 모르고 내 마음대로 쳤던 거 같다. 이제라도 당시에 무모한 연주를 들어주었던 과 선배들과 졸업생 분들께 청각에 심대한 무리를 일으킨 점에 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 해에 윤도현 밴드의 ‘잊을게’라던가 ‘백두산으로 찾아가자’라는 민중가요를 개사한 ‘과쏭’-참고로 미친듯한 고음인데, 그걸 소화해 낸 풉스 보컬 형님이 대단했다-, 혹은 Radiohead의 Creep과 델리스파이스의 ‘항상 엔진을 켜둘게’ 같은 곡을 연습하고 연주했다. Radiohead의 Creep 같은 경우에 '퉁치팍치투퉁퉁팍치'의 리듬이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16분 음표 두 번을 오른발로 밟는 '두퉁'은 당시의 나에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 한 곡 안에서 백 번은 넘게 반복되는 이 리듬을 제대로 치는 마디는 단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3학년 초, 그러니까 내가 휴학하고 난 직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연주한 '항상 엔진을 켜둘게'는 중간에 기타 솔로 부분에서 두 손으로 하이햇을 쪼개며 급박하게 연주하는 구간을 연습하느라 집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베개를 수없이 두드린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그 소리는 하이햇이 아니라 다른 타악기-아마 탬버린- 소리였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나는 아주 가끔 합주실에서 진짜 드럼을, 대부분은 집에서 에어드럼을 연주하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당시 다음 카페에 있던 '악숭'이라던가 '뮬'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도 훑어보며 드럼에 빠져들었다.


2004년이 되며 풉스의 초기 멤버들은 입대와 취업준비로 일선에서 물러났고, 역시 군입대 직전이었던 야비한 미소의 동기 녀석이 기타를 사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른 여자 동기를 보컬로 섭외하고, 걸출한 신입생 보컬과 드러머를 영입하여 5월에 최초로 단독 공연을 열었다. 새로 영입된 드러머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연주를 한 구력이 높은 녀석이었고 심지어 당시에 더블 스트로크*를 할 줄 아는 어마어마한 드러머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당연히 드럼을 칠 수가 없었고 대신 베이스를 배워 연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학교에 있는 작은 강당을 예약하고, M형님의 지인을 엔지니어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수유리에 있는 작은 합주실에서 두 달 정도 연습을 한 후 공연을 열었다.


Stealheart의 'She's Gone,'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Avril Ravigne의 'Sk8ter Boi,' Cranberries의 'Zombie,' 윤밴의 '아리랑,' 크래쉬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4 Non Blondes의 'What's up,'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 자전거탄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등등. 연주는 형편 없었지만 아주 즐거운 공연이었다. 특히, 응원 차 들린 전 풉스 멤버들을 깜짝 초대하여 항상 하던 레퍼토리인 Nirvana의 'Smells Like Teen's Spirit'와 과쏭, Radiohead의 'Creep'도 연주하였다. 이때, 불편해하던 신입생 드러머를 옆에 두고 스멜과 과쏭을 내가 쳤었는데, 그 녹음파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 특급 흑역사다.


첫 단독공연에서 드럼을 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드럼세트를 구입하기가 너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2004년 가을,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낙원상가에서 기타를 샀다. 집에서 탱자탱자 놀며 기타 연습에 매진했다. 점점 드럼에서 멀어지던 나는 그러나, 2005년 입대 후 다시 스틱을 잡게 되었다. 갈굼이 심한 군악대에서도 특히 빡센 타악기 파트에 배치된 것이었다.








*8비트 리듬: 8비트(beat)는 8분 음표가 한 마디에 8개 들어 있다고 여기면 된다.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이고 리듬이다.
*하이햇(hi-hat): 드럼 리듬의 뼈대를 이루는 메트로놈 같은 연주를 하는 부분이며 왼발로 페달을 밞아 두 개의 심벌을 포개어 놓은 부분을 스틱으로 쳐 치치치치 소리를 낸다.
*킥(kick) 혹은 베이스 드럼(bass drum): 오른발로 페달을 비터로 큰 드럼을 때려 ‘쿵쿵‘ 소리를 내는 연주 혹은 소리가 나는 드럼이다.
*스네어 드럼(snare drum): 일명 마칭드럼이라고 하며 드러머에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드럼으로 아래 피에 와이어라 불리는 철망이 붙어 있어 뭉툭한 소리가 아닌 ‘촥’ 하는 감기는 소리를 낸다.
*백비트(backbeat): 드럼의 기본 리듬인 8비트 리듬에서 ‘쿵치팍치쿵치팍치’의 ‘팍‘에 해당하는 스네어 드럼 리듬이다.
*탐탐(tom-tom): 세트에 스네어 드럼과 베이스 드럼을 제외한 나머지 드럼을 뜻하며 ‘통통’이나 ‘퉁퉁‘ 소리가 난다. 드럼 크기가 클수록 음정이 낮아진다.
* 더블 스트로크(double stroke): 보통 한 손으로 한 번씩 치는 게 일반적인데 이를 싱글 스트로크(single stroke)라 한다. 이보다 좀 더 빠르고 복잡한 연주를 하기 위해 한 번에 두 번을 치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더블 스트로크라 한다. R(오른손), L(왼손)으로 표기한다면, 예를 들어 싱글 스트로크는 RLRLRLRL로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면서 치는데 반해, 더블 스트로크는 RRLLRRLL 이렇게 친다. 속도가 빠른 대신에 정확도가 떨어지므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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