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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17. 2023

취미는 드럼, 어깨에 힘을 빼 (2)

성장


누군가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어떤 방식으로 그 일에 익숙해지는지, 즉 어떻게 학습할 지에 관해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한다. 또 다른 이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욕구에 몸을 맡기고 일을 진행하는 자도 있다. 사람에 따라, 혹은 어떤 일이냐에 따라 이런 메타인지적 사고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나는 전반적으로 계획성이 좀 떨어지는 종류의 사람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별 계획 없이 시작했으니. 계획성 있게 드럼이란 악기에 접근하는 사람이라면 학원을 등록한다든지, 스틱을 구매하거나 했을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드럼 연주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8비트를 배운 이후에 군입대 전까지 드럼 이론을 배운 기억은 거의 없었다. 실제 세트드럼에 앉아 연주를 한 시간도 아마 10시간도 되지 않았다. 스틱을 쥐는 법조차 알지 못한 채 몇 번의 공연을 해왔던 것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면에서는 꽤나 무례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무례함을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군악대를 갔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드럼에 예의를 갖출 수 있었다.


대구에 있는 50사단 훈련소로 입대 후 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기수 전체 훈련병이 대강당에 모였다. 그리고 나는 당황스럽게도 군악병 특기를 받았다. 사건은 이랬다. 훈련을 받던 2~3주 차 때 생활관에서 특기가 있는 훈련병을 조사했는데, 고작 8개월 기타를 띵가띵가 쳤던 나는 손을 들어 2년 반을 쳤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군악병을 뽑겠냐고 코웃음 치며 지원한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으니. 참으로 난감한 동시에 한편으론 설레었다-사실 좋은 군악대는 악기 전공자들이 어려운 실기와 면접을 보고 뽑힌다, 내가 배치받은 군악대는 제대로 편제도 잡히지 않은 작은 동원사단의 군악대였다-.


어찌어찌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군악대장이 보기에 기타와 드럼을 조금 칠 줄 아는 나는 거의 쓸모없는 놈이었다. 당시 비었던 목관의 플루트/피콜로 파트와 드럼파트 중 고민하던 군악대장은 심벌 칠 녀석이 필요하단 이유로 드럼파트로 나를 집어넣었다. 난 스틱을 제대로 쥐는 법을 배우기 전에 의식곡과 행진곡을 입으로 외우고 심벌과 큰 북 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심벌도 기술이 필요했다. 한 짝을 손아귀로 단단히 고정하고 나머지 한 짝으로 비껴가듯 ‘타당’ 쳐야 멀리 서는 ‘촤앙’하는 예쁜 소리가 시원하게 울린다. 한 짝에 2킬로그램이 넘는 놈을 끊임없이 들고 박에 맞춰 치는 건 굉장한 노동이었다. 특히, 퍼레이드 할 때가 정말 곤욕이었는데, 팔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연주했던 기억이 있다. 큰 북이란 놈은 연주보다는 단연코 그 커다란 크기와 무게가 문제였다. 수자폰(Sousaphone)*과 더불어 군악대가 들고 연주하는 악기 중 가장 무거웠다. 수자폰은 그래도 어깨에 둘러매기라도 하지, 큰 북을 옮길 때 낀 옆구리는 걸을 때마다 통증을 유발했다. 퍼레이드라도 하는 날이면 배와 허리로 그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고 앞도 안 보이는데 군악대장의 지휘를 보고 한 박에 한 번 ‘쿵’ ’쿵‘ 끊임없이 쳐야 하니. 이거야 원 고문이 딴 게 아니었다.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수자폰


심벌을 어느 정도 치면서부터 파트 선임들은 내게 스틱을 쥐게 허락했다. 연습 패드도 없어 나무조각을 못으로 박고 위에 고무패드를 눌러 붙인 수재 패드를 두고 루디먼트(rudiment)*를 연습했다.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속도를 60으로 맞춰 싱글 스트로크로 1, 2, 3, 4, 5, 6, 7, 8 연음까지 지겹도록 올라갔다 내려갔다.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더블 스트로크도 연습하였다. 롤(roll)* 연습은 애국가나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같은 의식곡에서 특히 중요했는데 이게 소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파트 후임들이 들어오면서 나는 심벌을 치다 큰 북으로 옮기고, 다시 작은북(스네어 드럼)을 치게 되었다. 아직 세트드럼을 칠 정도의 계급은 아니었으나 스네어 드럼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연주법을 연습하였다. 그중 가장 신기했던 연주는 파라디들(paradiddle)*과 이를 응용한 거의 무한한 종류의 연주법들이었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스타 마치 등의 의식곡과 위대한 전진, 신아리랑, 타령, 브라부라, 워싱턴포스트 마치, 라데츠키 마치 등의 행진곡도 연주했다. 그 외에도 엘가의 위풍당당, 아메리칸 그라피티 8과 10, 엑소더스, 아랑훼즈 협주곡, 글렌밀러 메들리, 뉴욕뉴욕, 신세계교향곡 편곡버전, 글레디에이터 메들리, 크리스마스 캐럴 메들리 등 정말 많은 곡을 연주했다. 아차. 장윤정의 어머나와 짠짜라도 지역 행사 때 꽤나 우려먹었다. 물론 내가 세트드럼을 치진 않았다. 세트드럼이 있는 연주곡에서 나는 탬버린이나 큰 징인 공(gong), 트라이앵글, 봉고 같은 다양한 타악기를 연주했었다. 간혹 일과 중에 세트드럼을 칠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연습은 고사하고 악독한 선임에게 비웃음만 들었다-그 인간은 나중에 길에서 만나면 패버리고 싶은 종류의 쓰레기였다-.


https://youtu.be/mbjDc2gkeWw?si=1ATYhV2k9Zfzi_EI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행진곡으로 전역할 때 후임들이 연주해주었다.


내가 파트장이자 왕고가 될 무렵 재즈를 허발 나게 잘 치는 키가 조그만 친구 하나가 드럼파트의 막내로 배치되었다. 박정현이나 김장훈 씨의 공연에도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드러머였으니 뭐 할 말 다했지. 나는 한 4-5개월 정도 그 친구에게 무료 레슨을 받았는데, 루디먼트가 어느 정도 연습이 된 상태에서 시작해서인지 연주실력이 급격하게 늘었다. 기본적인 록비트 이전에 스윙을 배웠다. 현대 음악사적으로도 흑인 노예들이 부른 재즈와 블루스가 록이나 팝음악의 뿌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드디어 제대로 된 기본을 배우게 된 거라 할 수 있었다. 스윙의 2, 4에 들어가는 엑센트와 그 사이에 다른 연주에 귀를 기울이며 따라가는 컴핑(comping)*을 배웠다. 화려한 콤비네이션(combination)* 솔로 같은 것들을 연습했다. 16비트 리듬과 셔플리듬, 라틴 리듬 등도 알게 되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왼손 백비트의 중요함이나 그루브감, 드럼 연주자의 터치에 대한 감각이나 다른 파트와의 교감, 재즈 전반의 구성 등 참으로 알차게 배웠다-그 후임은 굉장히 시니컬했던 아이로 기억하는데 전역 후에 뉴욕에 드럼을 공부하러 갔다 왔고 현재는 부산에서 힙합 보컬에 독특한 연주를 하는 인디 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좀 더 일찍 입대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군대 내에서 계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수혜를 톡톡히 보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드럼 실력은 꽤 늘었으나 경험은 전무한 채로 전역했다. 군악대 행사를 할 때는 스네어 드럼이나 그 외 타악기를 연주할 뿐이었지, 세트드럼에 앉지는 못했으니. 복학을 하고 먹고살기 위해 학업에 전념했다. 책을 쌓고 시험준비에 파묻혔다. 드럼에 대한 욕망은 저기 한 구석에 가둬둔 채로.


그즈음 내 숨통을 틔울 자그마한 공간을 찾았다. 1971이란 이름의 바에서.




* 수자폰(Sousaphone): 행진곡의 제왕 존 필립 수자(John Phillip Sousa)가 주문하여 만든 악기로 퍼레이드가 힘든 튜바를 대신하여 저음을 연주하는 관악기이다.
* 루디먼트(rudiment): 원래 ‘기본, 기초’라는 뜻인데, 드럼연주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왼손과 오른손 연습을 뜻한다. 특히, 행진곡 같은 경우 스네어 드럼 하나만을 이용하여 연주하는데 그때 필요한 여러 가지 연주법을 익힌다.
*롤(roll): 더블 스트로크를 아주 빨리 고르게 연주(더블 스트로크 롤)하거나 엄지와 검지의 힘을 이용해 스틱을 눌러(프레스 롤) 드럼 소리가 ‘촤르르르’ 끊이지 않게 나게 하는 연주법이다. 시상식에서 대상 발표 직전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나오는 연주가 대표적이다.
* 파라디들(paradiddle): 거의 대부분 드럼연주자들이 연습하고 활용하고 응용하는 연주법이다. 싱글 스트로크와 더블스트로크를 합친 연주인데, 가장 기본적인 예는 RLRR LRLL을 같은 속도로 쳐 각 박의 첫 타가 오른손이 되기도 하고 왼손이 되기도 하게 만드는 법이다.
* 컴핑(comping): 구글에 따르면, 키보드 연주자(피아노 또는 오르간), 기타 연주자 또는 드러머가 음악가의 즉흥 솔로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코드, 리듬 및 페어링이라고 한다. 드럼은 보통 왼손으로 스네어를 작게 치고나 오른발로 킥을 부드럽게 쳐서 꾸며준다.
* 콤비네이션(combination): 손과 발을 다양하게 섞어 빠르게 연주하는 화려한 애드리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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