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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18. 2023

취미는 드럼, 어깨에 힘을 빼 (3)

만개


2009년 그 바에 처음으로 갔다. 음악을 좋아하는 야비한 웃음의 동기 녀석이 K대 앞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죽이는 바가 있다 하여 함께 갔다. 1971이란 특이한 이름을 가진 그곳은 입구에서부터 “여기는 록을 위한 곳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의 큰 포스터와 너바나, 퀸, 비틀스, 데이비드 보위, 레드제플린 등의 포스터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내부는 검고 작은 라이브 무대와 기역자의 바, 몇몇의 테이블이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1970년 제니스 조플린과 지미 핸드릭스가 사망하고, 1971년 쓰리제이(3J)의 마지막 짐 모리슨이 사망했다. 바의 이름인 1971년에 태어난 사장님은 짐 모리슨을 추억하며 바 이름을 정했다고 했다. 바를 오픈하고 직장인 밴드의 보컬을 하면서 다양한 인디 밴드 공연 무대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과거 한때 종로에서 보컬로 음악활동을 하셨다고 한다. 드럼만 보면 몸이 근질근질하던 난 바에 간 첫날에 사장님께 간곡히 부탁하여 무대에 설치된 드럼세트를 쳐볼 수 있었다. 시커먼 배경에 조명을 받으며 연주해 보니 마치 공연을 하는 느낌도 들고 기분이 좋았다.


혼자서 바에 드나들며 사장님과 친해져 ‘형님, 형님’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님이 하시는 밴드 공연을 초대받았다. 난 설레는 마음으로 시간에 맞춰 갔고 그들은 데이비드 보위의 곡들을 중심으로 U2의 ‘One’이니 스타세일러의 ‘Poor Misguided Fool’ 같은 노래를 곁들였다. 밴드는 아직 이름이 없었지만, 형님의 걸걸하게 뚫고 나오는 보컬은 시원시원했다. 당시 밴드의 드러머는 본인의 심벌세트를 따로 가지고 다니며 연주하던 분이었는데, 리듬이 좀 불안했지만 좋은 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얼마 뒤 형님이 선뜻 밴드에서 드럼을 쳐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원래 멤버가 탈퇴를 하여 드러머가 공석이 되었다고. 나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크게 시간을 빼앗기거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을 것 같아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들의 레퍼토리를 받아 곡을 들어보았는데 아주 어렵지 않은 클래식한 록 음악들이었다. 형님이 좋아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Ziggy Stardust’와 ‘Space Oddity,’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와 ‘Stand by me,’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Sultans of Swing,’ U2의 곡과 스타세일러의 곡 등이었다. 오아시스와 U2의 곡을 빼곤 전부 들어본 적 없는 곡들이었는데 처음 들었어도 엄지를 치켜들만했다.


대략 1년 넘게 그 팀에서 공연하며 거의 처음으로 잼*이란 것도 해보며 내 드러밍에 대해 탐구하고 반성도 하였다. 솔직히 대학가에서 한물 간 하드록을 테마로 한 바가 그렇게 손님을 많이 끌 수는 없었다. 나처럼 술을 많이 팔아주지 못하는 놈을 포함해 단골이 몇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관객이 거의 없는 공연을 매주 했다. 그래도 즐거웠다. 가끔은 야비한 웃음의 동기도 함께 하며 리디오헤드의 'Creep'이나 'Just' 같은 곡도 연주했었다. 기타리스트였던 대학원생 형이 탈퇴하고 새로운 분을 영입했는데, 그분의 곡을 편곡해 밴드의 첫 자작곡도 연주했었다.


바에서 밴드 활동을 하던 중에 나는 어찌어찌 교사가 되었다. 처음 부임한 학교는 학생 오케스트라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던 곳이었다. 대략 60~70명의 단원이 있었고, 거기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었다. 단장은 바이올린, 색소폰을 연주하고 가르칠 줄 아시던 트럼펫주자 수학 선생님이셨고, 지휘는 음악 선생님께서 하셨다. 나는 뭐. 얄짤없이 오케스트라 드럼파트로 가게 되었고, 매주 토요일(당시에는 수업하는 토요일과 놀토가 번갈아가며 있었다) 연습을 했다. 때로 공연 전에는 매일 아침과 점심시간에도 연습을 강행하는, 아주아주 빡센 활동이었다.


현대 클래식이나 전통적인 클래식 중에서도 편곡이 된 경우에 세트드럼을 포함한 곡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의 연주는 현대음악과 사뭇 다르다. 군악대에서 윈드 오케스트라*를 경험한 나였지만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 등의 현악과 구경하기 쉽지 않은 바순이나 오보에 같은 목관도 갖춘 풀 오케스트라의 장엄함은 경이로웠다. 클래식 전공을 하면 이런 연주들이 업그레이드되는 거구나. 오케스트라의 타악 주자 또한 현대 실용음악의 드러머와는 다른 차원의 능력이 필요했다. 초견*에 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훨씬 정교한 연주가 필요했다. 또한, 드럼을 포함하여 심벌, 팀파니, 마림바, 글로켄슈필 등의 훨씬 다채로운 타악기를 섭렵해야 했다. 어머나. 팀파니와 마림바는 스틱을 잡고 치는 법부터가 달랐다.


젊은 신규 남교사가 왔으니 옳거니! 생활지도부로 갔을 것 같지만 나는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교과교실제 연구학교 운영 업무를 맡았고 담임을 병행하였다. 심지어 수업도 20시간이 넘었고 영어와 드럼 방과 후까지 했으니 참으로 개같이 굴렀다. 이 엿같은 학교에서의 첫 해에 관해선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하튼 나는 어느 순간부터 영어 교사인지 음악 교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올만큼 음악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다. 학교 축제에서 풀오케스트라와 함께, 교사 밴드에서, 그리고 일이 끝난 후에는 형님이 운영하는 바의 밴드에서, 드럼을 마구마구 쳤다.


군악대에서 기본기만 연습을 했다면 전역 후에는 거의 연주만 하였다. 메트로놈은 없었고 드럼만 주구장창 파지 않았다. 대신 다른 악기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지휘를 보며 함께 합주하는 경험은 악기 자체를 탐구하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이었다. 특히, 교사 2년 차 때부터 학생 밴드반을 가르치며 드럼뿐만 아니라 밴드 활동과 악기와 무대, 편곡 등에 관해서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기타 선생님과는 어떻게 연이 닿아 객원 멤버로 함께 무대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프로 밴드를 처음으로 접했고, 자신들의 사운드를 만들고 홍보하기 위한 밴드의 분투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를 보고 내린 결론은? 난 그냥 취미만 하는 걸로.


그러나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과 반작용 법칙은 과학적 현상 만을 뜻하지 않았다. 세상 모든 일에도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필히 따르는 법. 내 교사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고, 특히 중학교 수준의 영어만 쓰다 보니 나 자신의 영어능력에 회의가 급격하게 들기 시작했다. 음악 활동에 대한 부담감과 영어교육과 언어학에 대한 갈증이 동시에 온 나는 학교를 옮기고 나서 1년이 지난 후,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대학원으로 도망쳤다.





* 잼(jam): 간단하게 코드 진행을 정해 즉흥적으로 하는 합주이다. 잘 어울리는, 정형화된 코드 진행, 예컨대 시카고 블루스 패턴이라던가 텍사스 블루스 패턴도 있고 그냥 연주자들이 직접 정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연주의 분위기를 리드하면서,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이 돌아가며 솔로연주를 한다.
* 윈드 오케스트라: 목관 악기, 금관 악기, 타악기 파트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를 뜻한다. 현악과 그 외 다양한 악기를 가진 풀 오케스트라보다는 규모가 좀 작다고 할 수 있다. 마칭 밴드나 군악대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 초견: 악보를 보자마자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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