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고츠키(Vygotsky)의 근접발달영역(ZPD)
아이가 좋아하는 조각 퍼즐 맞추기 책이 있다. 첫 장은 곰돌이와 창문, 귤이 있는 네 조각짜리 그림이고, 두 번째 장은 엄마 돼지와 아기 돼지, 파리가 있는 여섯 조각짜리 그림, 세 번째 장은 코끼리와 기린, 차와 파도가 있는 아홉 조각짜리 그림, 그리고 마지막 퍼즐은 여우와 원숭이, 토끼와 쥐 등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는 열 두 조각 그림이 있다.
돌이 지날 무렵 아파트 입구에 나눔 하는 공간에서 다른 책들과 함께 가져왔는데, 아이는 이 책을 아주 좋아했다. 처음에는 아예 조각을 맞춘다는 개념이 없었다. 밑바탕에 그려진 그림을 똑같이 찾아야 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다만 완성한 퍼즐 조각이 책장을 살짝 넘겨(뒤집어) 톡 두드리면 쏟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재미있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서리를 맞추는 일과 조각과 조각의 들어간 부분과 움푹 나온 부분을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을 조금씩 알아가는 듯 보였다. 두 돌이 될 무렵이었을까? 아이는 그림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곰돌이, 귤, 창문. 그리고 내가 뒤집으라고 말하면 완벽하진 않지만 조각을 돌렸다.
그리고 최근에는 무려 바탕 그림과 조각을 비교하며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때론 억지로 맞지 않는 조각을 연결하기도 하고 아직 아홉 조각, 열 두 조각 짜리 퍼즐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진보였다. 인지 능력의 발달도 관찰할 수 있었지만 조각을 맞추는 손가락의 움직임도 더 세심해졌다.
학습과 발달이 계단식이라고 했던가? 바탕의 그림과 조각의 그림을 비교해야 한다는 원리를 알게 되면서 더 어려운 퍼즐도 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에 공수해 온 30 조각 정도 되는 뽀로로 기사(?) 그림을 나의 조력과 함께 완성해 냈다. 뽀로로와 크롱, 포비, 루피, 채피, 에디가 다 기사 복장을 하거나 공주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림인데, 작은 조각에 있는 그림을 보고 이건 뽀로로 눈 조각, 이건 크롱 조각, 포비 조각, 등을 말하며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동 인지발달에 관해 교육학 시간에 배웠던 이론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니. 인간이 자신의 지식과 세계를 스스로 구축한다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 이론은 크게 스위스의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Piaget)가 주장한 인지적 구성주의와 러시아의 비고츠키(Vygotsky)의 사회적 구성주의로 나뉜다고 한다. 피아제는 자신의 딸들을 관찰하며 아동의 인지적 발달에 공통된 단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감각구성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로 나눴다. 그의 이론은 아동을 교육할 때, 이 단계별 인지능력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중요한 교육학적 통찰을 제공했다.
피아제가 개인에 관심을 더 두었다면 러시아의 심리학자인 비고츠키는 인지발달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가진 역할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아동의 인지발달에 사회적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겼다. 상호작용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를 사회적 언어(public speech), 스스로 자신의 사고를 조절하는 사적 언어(private speech)로 나누며 언어와 사고 발달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그러나 비고츠키의 이론 중, 내가 가장 놀라웠던 지점은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ZPD)이란 개념에서였다. ZPD는 아동의 발달단계에서 당장 수행할 수 있는 과업보다 조금 더 어려운 과업을 자신보다 성숙한 이의 도움을 받아 성취할 수 있는 영역을 뜻한다. 그때 성인의 도움을 비계(scaffolding)라 하는데, 비계는 건물을 지을 때 설치했다가 건물이 완성되면 철거되는 발판을 뜻한다.
이제 30 조각짜리 뽀로로 조각 퍼즐은 아이가 나의 도움을 받고 완수할 수 있는 ZPD 영역 안에 들어온 과업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나의 도움도 필요치 않을테지. 또, 항상 손을 잡고 오르고 내리던 집 앞 낮은 계단도 나의 손을 잡지 않겠다고 선언하곤 조심스레 흔들거리며 혼자 오르고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수정해 주는 ‘조사’ 피드백도 받아 본인의 발화를 수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꾸꾸이는 안아줬어”라고 말한 경우, 내가 “꿀꿀이‘를’ 안아줬어?”라고 물으면 “꾸꾸이를 안아줬어”라고 말할 수 있다. 조금씩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이 늘어나며 실제 발달영역(actual developmental level)이 확장할 것이다. 나와 아내의 손도 덜 가게 된다는 뜻이겠지. 빨리 성인이 되어 독립했으면 좋겠다고 농담으로 말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성장은 신비로움과 동시에 아쉬움을 남긴다.
한 대학 선배가 명언을 남겼다.
Time flies like a rocket launcher.
(시간은 로켓런쳐처럼 빨리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