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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23. 2023

아기의 옷을 버리다.


어제저녁 아이가 잠든 후, 아내는 지닌 여름 아이가 입었던 옷들을 정리했다. 아는 언니가 쌍둥이를 출산하여 우주복을 몇 벌 챙겼고, 아파트 현관에 나눔 할 옷과 버릴 옷 등을 분류했다.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버릴 옷을 정말 버려야 할지 확인해 보았다. 두 번의 겨울을 지나며 아이가 입었던 내복들, 아래가 똑딱이로 되어있어 기저귀 갈기 좋은 일체형 옷, 때론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옷 등이 있었다. 이미 아이가 커 더 이상 입기에도 힘든 옷이었다. 아이의 침이나 우유나 이유식이 묻어 노랗게 뜬 부분도 있고, 때로는 닳은 부분도 있어 누구에게 물려주기도 마음이 편치 않다. 어쩔 수 없이 버릴 수밖에. 그러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이가 그 옷들을 입고 있던 모습, 안았을 때 느꼈던 까끌하고 부드러운 옷의 촉감과 아이의 체중, 움직임 같은 것들이 여전히 느껴진다.


2021년 4월의 어느 밤 우리 아이는 태어났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라 우리 부모님도 장인, 장모님도 오실 수 없었다. 산모와 아이 모두 안정을 찾을 무렵, 양가 부모님께 아이 사진과 함께 소식을 알렸다. 밤 11시쯤 어머니께서 사진을 보내셨다. 나와 내 동생이 처음 입은 배냇저고리였다. 40년 가까이 된 배냇저고리를 아직도 보관하고 계셨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분명 첫 손주를 당장 품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나와 동생이 태어났을 때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계셨으리라. 이제 늙어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때 배냇저고리를 입었던 자그마한 아기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는 상상 속의 일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마 어머니의 손은 갖태어난 나와 동생을 안았던 촉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나처럼.


나와 동생이 신생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물론, 간직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지는 사람마다, 혹은 물건마다 다를지 모른다. 다만, 그중 어떤 것은 당시의 기억을 잊지 않고자 하는 우리의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좋아했던 가수의 음악 음원을 모아 다시 듣는 이유도, 책장에 다 읽은 책이며 영화 DVD를 여전히 꽂아둔 이유도, 어릴 때 친구들이나 교사가 된 후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나 롤링페이퍼를 모아둔 이유도 그래서이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우리가 간직하고 소유한 것들을 버려 나가야 한다. 그 빈 공간에 새로운 것을 채워갈 수도, 아니면 빈 채로 둬야만 할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께서 보내신 사진을 보아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도 아이가 처음 입은 배냇저고리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였다. 하얀 배냇저고리 속에 파묻혀 짧은 팔을 덮은 소매가 조금씩 꼬물거리는 모습이라던가, 속싸개 속에 고치처럼 폭 싸매인 모습 같은 것들이 아직 눈에 선하다. 아직도 어리고 귀여운 30개월 아이이긴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훨씬 거대하고 당당해진 모습이라 그 시절의 자그맣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앞으로 아이가 더 커가면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과 더불어 지금의 모습도 그리워질 테고, 지금 입고 있는 옷 중에서도 어떤 옷은 간직할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며 아이의 버릴 옷을 모아둔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우유를 마시는 아이와 식탁에 앉아 있던 아내는 그 옷들에 '빠이빠이'를 하였다.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아내의 모습이 약간은 서글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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