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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13. 2023

아이와 함께한 캠핑 비스므리한 것.

항아리 바베큐.


대학 선배 한 분과 동기 둘, 그리고 나까지 넷이 자주 함께하는 모임이 있다. 머리가 좋고 위트가 넘치며 때론 아방가르드한 C형님과 항상 티격태격하며 함께 대학에 입학해 결국 같은 직장에 나란히 입사한 D와 K. 그리고 0.7인분(몸무게가 아니다)인 나까지. 이 모임의 이름을 ‘무쓸모임’이라 정하고 나는 카톡방 이름도 바꿨다.


강아지 한 마리(원래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와 와이프와 함께 딩크로 살며 각양각색의 취미를 즐기는 K가 어느 날 캠핑을 제안했다. 다만, 나머지 멤버들은 캠핑장비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기에(나다) 본인 부부는 캠핑을 하고 나머지는 캠핑장 내에 있는 숙소를 예약하는 건 어떠냐고. 안타깝게도 일정이 있는 D는 빠졌고, C선배와 나는 바로 숙소를 예약했다. 좀 낡은 온돌방이었고 평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캠핑에 대한 호기심이 좀 더 강해서였을까. 나도 C선배도 선뜻 예약을 했다.


역할 분담은 이랬다. K는 캠핑 세팅 및 식사 준비, C형님은 술과 음료, 밑반찬, 간식을, 나는 고기와 햇반, 라면, 다음날 먹을 토스트를 위한 식빵과 계란을 준비하기로 했다. 의자가 부족해 아내와 나는 당근을 뒤졌다. 캠핑 일주일 전, 적당한 의자를 두 개 발견한 아내의 명에 따라 나는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피해 버스를 타고 당근 하러 갔다. 판매자를 만나 의자 상태를 확인하고 인수받았다.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튼튼했다. 만족스럽게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보슬비는 센 소나기로 바뀌었다. 비의 장막을 뚫고 집에 오니 신발은 다 젖어 있었고 비닐로 감싼 의자도 조금 젖었다. 그래도 아이는 접이식 의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앉아서 두 다리를 흔들흔들 노래를 불렀다.


캠핑 가기 전 구입한 접이식 의자를 펴 나를 앉히고 놀았다.


캠핑 전날 필요한 장을 봤다. 계란은 꼭 4개가 필요하다 하여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다 계란판의 두꺼운 종이와 플라스틱 덮개를 가위로 잘라 노끈으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캠핑 당일 오전에 돼지 등갈비를 길게 두 줄 사고 수육용 삼겹살도 두 덩이(두 근)를 샀다. 아이는 캠핑이 뭔지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서 “캠핑, 캠핑!” 외쳤다. 아내나 나도 아이처럼 외치진 않았지만, 두근거리긴 매 한 가지.


이걸 동뿡이 보조석 바닥에 고이 모셔 갔다.


구불구불 산길을 지나 약 한 시간. 우리는 제일 늦게 캠핑장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자갈길을 따라 천천히 숙소로 가는 데, 멀리서 텐트를 치고 있는 K와 그의 아내가 있었다. 나는 보조석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작은 오르막길을 오르자 한옥으로 된 숙소 건물이 나왔다. C형님의 차 옆에 주차를 하고 형님과 형님의 아들과 인사했다. 형수님은 급한 일이 있어 부자만 왔다고 했다. 두 아이는 낯을 가려선지 서로 대면대면했다.


우리는 적당히 짐을 풀고 K가 텐트를 세팅하고 있는 사이트로 내려갔다. 사이트 한쪽 구석에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준비할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K가 큰 마음먹고 꽤 비싸게 주고 산 아이템. 나는 K가 건네준 갈고리를 등갈비와 삼겹살에 적절히 걸었다. 아내와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그 외 작업에는 크게 도움 주지는 못했다. K가 그의 아내와 함께 세팅을 마치고 항아리 아래 숯을 피우는 등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두 아이와 함께 캠핑장을 둘러보았다. 트램펄린도 타고 여러 사람들과 차, 텐트를 구경했다.


오토캠핑장이어서 각 텐트 사이트에는 차가 한두 대 씩 있었다. 어떤 이는 차 트렁크를 텐트로 확장해서 차박을, 어떤 이는 간단한 원터치 텐트를, 또 누군 거의 작은 집 한 채 같은 에어펌프로 높이 올린 텐트를 치고 있었다. 장비들도 참으로 다양했다. 몇몇 가족이 함께 온 집 아이들은 까르르 왁자지껄 즐거워 보였고 소박한 커플은 소박하지 않은 모니터나 빔프로젝터 등을 놓고 있었다. 누구는 배드민턴도 치고 어떤 아이는 모래놀이도 하고. 모두들 익숙하게 캠핑의 시작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나와 아내, C형님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 입을 다물지 못한 즐거움은 따로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K의 항아리는 놀라운 성능으로 기름을 좌악 뺀 삼겹살과 등갈비를 선사했다. 기름기가 영롱하게 반짝이는 등갈비는 부드럽게 뜯겼다. 비계가 조금 두꺼워 걱정이던 삼겹살도 기대 이상의 고소함으로 입을 즐겁게 하였다. 아이는 특히 등갈비 뜯기에 재미가 들렸나 보다. 두 손과 양 볼에 기름을 잔뜩 묻힌 채 갈비를 입에 물고 살점을 베어 먹었다. 언제 또 저런 건 배웠을까. 바베큐를 기다리며 아이가 이것저것 주워 먹어 걱정을 좀 했는데 기우였다.



날이 어둑해지고 K와 그의 아내는 불멍을 위해 장작에 불을 붙였다. 우리에게 캠핑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고생이 많았다. 두 아이와 함께 마시멜로를 나무젓가락에 꽂아 모닥불에 조심스레 구웠다. 다이제가 있었으면 낭만적인 스모어(s’more)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무쓸모임 넷이 모이면 끊임없이 화제가 전개되고 전환되는데, 아내와 K의 아내, 두 아이가 있어 대화 분위기는 사뭇 다르긴 했다. 아이들이 있어 고요한 불멍은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C형님은 혼자 아들을 돌봐야 해서 더 정신이 없었을 거다.


그래도 숲 속에서의 밤과 모닥불은 아늑함을 선사했다. 영어 단어 adumbrate는 우리말 뜻이 두 가지다. 하나는 ‘어둡게 하다’란 뜻이고 다른 하나는 ‘흐릿하게 (윤곽을) 보이게 하다’란 의미다. 한 어휘 강사는 어두운 방에 촛불을 켜는 것으로 이 단어의 뜻은 하나라고 설명했다. 촛불 하나의 약한 불빛으로는 깜깜한 방을 밝힐 수 없으니 어둡겠지만, 그래도 촛불의 약한 빛은 주변의 흐릿한 모습, 윤곽 정도는 밝혀줄 수는 있다고. 어두운 숲을 자그맣게 밝히는 모닥불은 전체를 환하게 밝히진 못하지만 두 손으로 품을 정도의 공간은 밝힌다. 나도 딱 내 두 손으로 품을 정도만 되어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내가 K처럼 다양한 텐트 장비를 공부하고 사지는 못하겠지만, 가끔 이런 분위기를 흉내낼 여행은 떠나야겠다. 그래서 이번 주말 큰 마음 먹고 글램핑을 간다. 오예.




덧.

C형님은 최근 가족끼리 캐빈하우스 캠핑을 갔다 왔다 한다. 그 후, 당근으로 꽤 괜찮은 접이식 의자를 성인용 두 개, 아동용 한 개 구매했다. 내년이면 텐트도 구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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