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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Aug 09. 2019

"오늘 첫 출근인데 정장 안 입고 오셨나요?"

예의는 옷에서 나오나?

  친구, 연인, 가족과 정치와 종교이야기는 하지 마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나눠봤자 가지고 있던 입장이 바뀌지도 않고 상대방의 생각 또한 바뀌지 않으며 의견이 다르면 서로 공감하기도 힘들고 결국엔 싸움이 나고 사이만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에 정치, 종교에는 못 미치고 싸움까지는 번지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생각이 잘 안 바뀌고 의견이 갈리는 이슈가 있는데 복장 관련 문제이다. 나의 사례를 통해서 복장 관련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CASE 1.

  "오늘 첫 출근인데 정장 안 입고 오셨나요?"

세 번째 첫 출근 날 근로계약서를 쓰고 있는데 비서실 과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그러고는 "회장님 인사는 다음에 해야겠네요."라며 그녀는 자리를 떴다. 나한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받아들인 느낌은 회장님한테 나를 인사시키려고 했는데 정장이 아니라서 인사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입사 전에 전달받은 사항은 출근복장은 '자율 복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첫날 정장을 입어야 한다던지 회장님과 인사가 있다던지 하는 말은 듣지를 못했다. 만약 회장님과 인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더라도 첫날 정장을 입으라는 요청이 없었다면 나는 정장이 아닌 회사 규정대로 '자율 복장'을 입었을 것이다. 물론 '자율 복장'에는 정장도 포함되지만 나의 '자율 복장'에는 정장이 포함되지 않는다. 모든 회사 직원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입었는데 회장님을 만날 수 있는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러면 직원들은 평상시에 회장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인지? 비서실의 조치가 회장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 아니면 비서실 담당자의 임의 판단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회사에서 말하는 '자율 복장'은 정장이 아닌 옷을 뜻하며, 직원들도 중요한 출장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 신입사원이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 이질감이 느껴지고 뭔가 거리감이 느껴졌다. 참고로 지금까지 내가 다닌 회사는 영업사원을 빼면 모두 정장을 입지 않는 회사였다. 근무복이 모두 자율복장이었다. 그래도 첫 출근 때는 많은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 나도 신입사원 첫 출근 때는 정장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리 회사 근무복이 자율 복장이라도 신입사원이 첫 출근에서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정장을 입어서 문제 될 것은 없지만(좋게 볼 수도 있다) 정장을 입지 않았을 때는 잘해야 본전이고, 혹여 누군가의 눈밖에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출근날 정장을 입을지 청바지를 입을지 망설여진다면 그냥 맘 편히 정장을 입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시 회사를 옮겨서 첫 출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회사의 출근복장이 정장이 아닌 자율복장인 이상 나는 정장을 입고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첫 만남에서 만큼은 정장을 입는 것이 예의인 것일까? 출근 복장이 '자율 복장'인 회사도 면접을 볼 때는 거의 대부분 정장을 요구한다. 면접 안내 메일에 복장을 '정장'으로 명기되어 있다. 지금껏 많은 면접을 봤고 거의 대부분이 '자율 복장'인 회사였지만 모두 면접 복장은 정장을 요구했다. 이렇게 보면 첫 만남에서의 '정장'이 예의인 것 같지만 면접장에 가면 면접 위원들은 모두 회사 규정대로 '자율 복장'을 입고 있다. 이 말은 첫 만남에 정장을 입어야 예의인 것은 아니거나 면접관들이 모두 무례하거나 이다. 내가 봤을 때는 전자다. 그리고 첫 만남에 정장을 입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면 학교 새 학기가 시작되면 대학 캠퍼스에는 모두 정장을 입고 소개팅에 나갈 때도 모두 정장을 입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정장 입은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복장 자체로 그 사람의 예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복장을 갖춰 입을 때의 마음가짐을 보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토익점수가 영어실력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중론이지만 회사에서는 여전히 토익 점수를 본다. 그것은 어쩌면 토익점수를 통해서 영어 실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토익 점수를 얻기까지의 노력과 성실함 혹은 적용력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회사의 업무에 잘 적응하고 발전하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일지도. 아니면 늘 해오던 절차다로 그냥 하고 있던가. 


CASE 2.

  "아무리 출근 복장이 '자율 복장'이라도 최소한 '칼라' 있는 옷은 입어야 하는 거 아니야?"

출근한 지 얼마 후 회식 자리에서 복장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느 팀장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평소의 출근 복장에 대한 그분의 의견이었다. 그때 그분의 복장을 보니 칼라 있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칼라 없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이후로 직장 내 동료들에게 칼라 있는 옷을 입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는데 반반 정도 됐던 것 같다. 내 생각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로 칼라 있는 옷이 필수라고 한다. 찾아보니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티셔츠나 트레이닝복 같은 칼라가 없는 셔츠는 속옷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보인다. 



CASE 3.

  한 손엔 담배를 들고 "출근할 땐 깔끔하고 단정한 옷을 입어야죠. 그게 예의죠."라고 말하며 내 앞에서 침을 뱉으며 껄렁하게 말하는 후배가 있었다. 그런 모습 별로 개의치 않지만 그 친구는 나에게 예의를 지킨 것일까? 옷만 번듯하게 입고 있으면 예의를 지키는 것일까?


한 번 던져보는 질문들

예의란 무엇인가?

예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장을 입으면 예의 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예의 없는 사람인가?

예의의 관점에서 정장 말고 다른 옷들은 어떤가? 

한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면?

옷차림에 예의의 등급이 있는가? 있다면 누가 어떻게 메기는가?

옷차림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가?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는 예의 없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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