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 어때?" 옆팀의 팀장님이 나에게 서류를 내밀며 물어본다. 서류를 들여다보니 누군가의 이력서다. 이번에 사람을 뽑는데 어느 정도 맘에 들어한 것 같다. 건네받은 이력서를 대충 훑어보는데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특기: 고기 굽기
사람들 중엔 고기를 남들보다 맛있게 잘 굽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충분히 특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특기들 보다 고기 굽는 능력을 어필하고 싶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신입사원은 고기를 잘(?) 구워야 한다', '고기를 잘 구우면 선배들로부터 이쁨 받는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깔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 회식 때 고기를 먹으러 가면 그 테이블에서 막내가 고기를 구워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들을 느낄 수 있다. 대놓고 강요하기도 한다. 회식 자리에 앉으면 다른 누군가가 고기를 굽기 전에 막내가 집게를 들고 고기 구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막내가 고기를 굽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고기 뒤집어라. 고기 탄다. 고기 덜 익었다. 너무 익히지 마라. 바짝 구워라. 고기가 너무 크다. 고기 천천히 구워라. 고기 빨리 구워라. 고기를 너무 잘게 썰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고기를 굽던 막내가 고기 굽던 집게를 내던져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고기를 먹는 취향이 모두 제각각이라 모두의 취향을 맞추기도 싶지 않다. 그러다가 상급자가 막내에게서 집게를 가져와서 고기를 구우려고 하면 옆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애초에 집게를 뺏겨서도 안되는 거였고 한순간 방심해서 뺏겼다고 하더라도 바로 다시 탈취해와서 고기를 구워야 한다. 그렇게 고기를 계속 굽다 보면 실력이 늘어난다. 고기 잘 구우면 어디 가서도 사랑받으니 후배 사원들을 위한 선배 사원들의 배려(?)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입 사원 때도 고기를 많이 굽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 고기를 구우면 굳이 집게를 뺏어오거나 안절부절못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탄 고기도 덜 익은 고기도 고기가 커든 작든, 상관없이 잘 먹는다. 그 어떤 고기라도 그들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먹고 싶은 대로 입맛대로 구워 먹으면 좋지 않을까? 그들이 고기를 어떻게 굽던지 나는 고기가 맛있으니까. 그리고 신입사원이 고기를 못 굽는다면 굳이 못 굽는 고기를 먹을 필요가 있을까? 잘 굽는 사람이 굽고 모두 맛있게 먹으면 되지.
그래도 지금까지 고기 잘 안 굽고도 별 탈 없었던 것 보니 막내에게 고기 굽게 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강압적이진 않은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너무 눈치 없고 둔하거나. 그렇게 고기를 많이 안 굽다 보니 고기 굽는 실력이 안 늘어서 별로인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구운 고기를 맛있게 먹어주는 그녀가 있으니 그게 어딘가. 덕분에 요즘 들어 그동안 제자리였던 고기 굽는 실력이 늘고 있다.
- 나이, 직급 따지지 말고 고기 잘 굽는 사람이 굽자.
- 다른 사람이 고기를 구웠으면 불평하지 말고 감사히 맛있게 먹자.
- 그게 싫다면 직접 구워 먹자.
- 그냥 고기 맛있게 구워주는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