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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Aug 07. 2019

탈모라서 좋은 점 6가지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재를 살려고 마트를 둘러보고 있는데 행사를 하고 있었다. 세재를 포함해서 3만 원 이상 구매하면 증정품을 준다는 것이다. 세재와 섬유유연제를 고르고 나니 27,000원 정도였다. 물티슈도 필요하고 해서 물티슈 3개를 더해서 3만 원을 채웠다. 그랬더니 직원분께서 증정품으로 이것저것 챙겨주시는데 카트를 가득 채울 기세다. 그렇게 증정품을 카트에 싣고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다른 물품들을 사다 보니 세재 코너 근처를 다시 지나가게 되었는데 아까 증정품을 챙겨주던 직원분께서 나에게 달려오더니 "이것도 한 번 써보세요."라며 또 다른 증정품을 나에게 건넸다. 뭔가 하고 보니 샴푸였는데 자세히 보니 탈모 샴푸였다. 나에게 탈모샴푸가 필요해 보였나 보다. 지나가는 나에게 달려와서 건네줄 만큼.  그렇다. 나는 누가 보더라도 탈모인이다. 근데 또 신기하게 내가 쓰고 있는 샴푸와 같은 제품이었다. 아마도 그분의 남편이나 아들, 형제 중에 탈모인이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증정품을 평소보다 많이 받은 나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다.  탈모로 인해서 수많은 안 좋은 점들이 많지만 탈모인으로 살다 보면 이번처럼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는 탈모로 인한 장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나이 들어 보임

  남들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 보통 10년은 먹고 들어간다. 나이가 계급인 우리나라에서 액면가 +10년은 굉장한 이득이다.   신입사원도 탈모를 장착하면 경력직처럼 보이고 과장, 차장처럼 보인다. 부장님까지도 본다. 말을 쉽게 놓지 못하며 함부로 대할 확률이 줄어든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회의를 할 때, 직급을 말하지 않는 이상 과, 차장으로 보기 때문에 회의가 수월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말을 많이 해서 실력이 탄로 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면접을 볼 때도 좀 더 실력 있어 보인다.


2. 힘들어 보임

  일을 할 때 머리가 조금만 헝클어져도 머리를 쥐어뜯은 것처럼 보인다. 누가 보면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것처럼 보인다. 머리숱마저 없으니 그 효과는 더 크다. 그냥 평소 모습인데도 '나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업무량을 조절해주기도 한다. 주변에서 힘드냐고 물어볼 때 웃으며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면 힘든데도 내색 안 하고 책임감 있게 맡은 일을 해나가는 사람처럼 비친다.


3. 농담할 수 있음

  바보한테 바보라고 놀리면 바보는  화를 낸다. 하지만 바보가 평범한 사람한테 바보라고 놀리면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탈모도 마찬가지다. 정상인(?)이 탈모인한테 탈모 관련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면 당사자는 매우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탈모인이라면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다. (같은 탈모인이라고 해도 이야기를 꺼려할 수 있다.) 그리고 탈모인들과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비 탈모인이 탈모인과 탈모 관련 농담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이 웃고 있다고 해서 그런 농담을 즐기고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탈모인이 되면 다른 탈모인들과 좀 더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 (굳이 그럴 일이 많지 않겠지만) 그리고 나의 탈모 진행상태가 상대방보다 더 심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면 더욱 편해진다. 그리고 덤으로 자학개그를 한다면 쿨해 보이기도 하고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효과도 있다.


4. 인간관계가 넓어짐

  탈모를 겪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외면하지는 않는다. 아, 소개팅을 해달라고 할 때는 외면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인간관계가 풍성해질 수 있다. 많은 탈모인들이 찾아와서 '탈밍아웃'을 하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고 상담을 해오기도 한다. 주변의 탈모인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도 있다.


5. 주변에서 챙겨줌

  서두에서 소개한 에피소드와 '2. 힘들어 보임'에서 설명한 것 같이 주변에서 챙겨준다. 이것저것 좋다는 음식들도 챙겨준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병은 주변에 알려야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탈모는 주변에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알리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보고 여러 도움을 준다.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묻지 않아도 찾아와서 알려주기도 한다. 탈모와의 전쟁에서 혼자 싸울 필요가 없다. 주변에 같이 싸워주는 많은 아군들이 있다.


6. 공감능력 향상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렵다. 물론 간접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순 있어도 깊게 공감하긴 어렵다. 아무리 세상의 반이 여자라도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가는 나는 여자를 이해하거나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탈모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탈모인들의 고충과 심적 상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탈모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깊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큰 축복이다.




  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1리터의 눈물]이 있다. 척수 소뇌 변성증이란 희귀병에 걸려서 10년의 투병생활 끝에 25세의 나이로 숨진 키토 아야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렇게 웃기까지 나는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나도 말한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기까지 나는 2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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