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보한테 바보라고 놀리면 바보는 화를 낸다. 하지만 바보가 평범한 사람한테 바보라고 놀리면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탈모도 마찬가지다. 정상인(?)이 탈모인한테 탈모 관련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면 당사자는 매우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탈모인이라면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다. (같은 탈모인이라고 해도 이야기를 꺼려할 수 있다.) 그리고 탈모인들과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비 탈모인이 탈모인과 탈모 관련 농담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이 웃고 있다고 해서 그런 농담을 즐기고 있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탈모인이 되면 다른 탈모인들과 좀 더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다. (굳이 그럴 일이 많지 않겠지만) 그리고 나의 탈모 진행상태가 상대방보다 더 심한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면 더욱 편해진다. 그리고 덤으로 자학개그를 한다면 쿨해 보이기도 하고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효과도 있다.
탈모를 겪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외면하지는 않는다. 아, 소개팅을 해달라고 할 때는 외면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인간관계가 풍성해질 수 있다. 많은 탈모인들이 찾아와서 '탈밍아웃'을 하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고 상담을 해오기도 한다. 주변의 탈모인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도 있다.
서두에서 소개한 에피소드와 '2. 힘들어 보임'에서 설명한 것 같이 주변에서 챙겨준다. 이것저것 좋다는 음식들도 챙겨준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병은 주변에 알려야 빨리 낫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탈모는 주변에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알리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보고 여러 도움을 준다.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묻지 않아도 찾아와서 알려주기도 한다. 탈모와의 전쟁에서 혼자 싸울 필요가 없다. 주변에 같이 싸워주는 많은 아군들이 있다.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렵다. 물론 간접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순 있어도 깊게 공감하긴 어렵다. 아무리 세상의 반이 여자라도 남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가는 나는 여자를 이해하거나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탈모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탈모인들의 고충과 심적 상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향상된다. 탈모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깊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주 큰 축복이다.
책으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1리터의 눈물]이 있다. 척수 소뇌 변성증이란 희귀병에 걸려서 10년의 투병생활 끝에 25세의 나이로 숨진 키토 아야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렇게 웃기까지 나는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나도 말한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기까지 나는 2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